제1막 2장 District 9 [준비된 버스](2020.09.06)
"인간이란 태어날 때부터
서로 다른 존재라고, 그들은 말했다.
하지만 왜 우리는 모두
동일하게 느껴질까?
똑같은 시스템에 세뇌당한 우리.
그들은 우리에게 완벽함을 기대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서로 다른 사람이 될 수 있겠는가?"
-Stray Kids-
지하세계를 떠돌던 부랑아 스키즈가 헬리베이터를 타고 지상으로 올라온 후 얼마간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 이야기는 아이들이 들판에서 발견한 대도시를 배경으로 펼쳐집니다.
이 도시는 스키즈가 백일몽 속에서 꿈꾸던 바로 그 장소처럼 보입니다. 거대한 마천루가 하늘을 찌르고, 밤에도 쉬지 않고 번쩍이는 조명들이 도심의 밤을 밝힙니다. 하지만 이 도시는 어딘가 이상하고 황량합니다. 빌딩에 달린 네온사인에 커다란 대문자로 'FAKE'라고 적힌 것이 그 사인입니다. 하늘을 향해 쏘아 올리는 조명은 어딘가를 향해 구조 신호를 보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스키즈는 자신들이 꿈의 도시에 도달했다고 믿었지만, 사실 이곳은 아이들이 꿈꾸던 진짜 도시가 아니었습니다. 이곳은 도시의 모습을 한 수용소에 불과했던 겁니다.
처음에 아이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들은 떠돌이 시절의 활기조차 모두 잃어버린 채 똑같은 하얀 유니폼을 입고 시스템 속에서 똑같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될 바에야 차라리 지하 밑바닥에서 불안하지만 자유로운 부랑아로 사는 게 났지 않았을까요.
이 도시는 분명 나의 꿈인데 이곳의 삶은 왜 이렇게 황량하고 황폐한 걸까. 시스템에 완전히 세뇌당한 아이들은 이런 질문조차 던지지 못합니다.
하얀 옷을 입고 걸어가는 한 무리의 사람들. 그중에는 스키즈의 리더 방찬도 끼어있습니다. 방찬 역시 자신의 진짜 꿈을 잃어버린 채 시스템이 시키는 역할을 수행하며 매일매일 똑같은 하루를 보내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오늘은 좀 다릅니다. 탁하게만 보였던 평범한 하늘에 갑자기 균열이 나타납니다. 마치 진짜 하늘이 아닌 것처럼 잡음들이 잠깐 동안 지직거리며 떠있다가 사라집니다.
하나의 신호, 하나의 조짐, 하나의 작은 결함.
시스템에 결함이 나타난 겁니다.
그 모습을 본 방찬은 쓰고 있던 두건을 벗습니다. 두건을 벗음으로써 그는 시스템의 노예로 살아가는 익명의 존재들 속에서 자신을 되찾게 됩니다.
방찬은 스키즈의 리더입니다. 방찬이 균열을 발견한 순간, 다른 아이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무엇인가를 눈치채고 작은 신호를 보내옵니다. 앞으로 나오는 장면들은 그 신호를 보여줍니다.
리노는 칠판 앞에 서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칠판에 무의미한 글자들을 적는 것이 수용소에서 리노가 하는 일입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는 남들과 똑같이 아무 의미 없는 글씨들을 적으며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오늘 리노는 분필을 들어서 모두가 알아볼 수 있는 문장 하나를 적습니다.
I AM NOT. 나는 아니다. 칠판을 자세히 보면 수많은 낙서들 속에 리노가 적은 글씨와 함께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가 또 하나 있습니다. ALONE 이라는 글자입니다.
ALONE, I AM NOT. 혼자 있을 때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혹은 I AM NOT ALONE. 나는 혼자가 아니다. 수용소에서 탈출하려면 함께 모여야 합니다.
창빈은 TV 앞에 있습니다. 지직거리는 화면 속에서 억지스러운 웃음을 짓는 자신의 모습을 하루 종일 바라보는 것이 시스템이 창빈에게 부여한 역할입니다. 지금까지 창빈은 그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해 왔습니다.
하지만 오늘 창빈은 손을 들어 자신의 눈을 가립니다. 그가 눈을 가리는 것은 시스템이 억지로 보게 만든 것을 보지 않겠다는 저항의 몸짓입니다. 하지만 창빈은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들에서도 눈을 가리는 제스처를 자주 취하게 됩니다. 과연 창빈과 이 동작은 어떤 연관이 있는 걸까요.
필릭스는 옥상 위에 있습니다. 매일 밤 거울 앞에서 춤을 추는 것이 필릭스에게 주어진 역할입니다. 어두운 도시 꼭대기에 설치된 거울. 거울은 자기 탐구의 수단입니다. 필릭스는 날마다 거울 앞에서 춤을 추면서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지만, 도시의 모습을 한 수용소에서는 그 답을 절대 찾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밤 필릭스는 발을 들어 아무 의미 없이 자신을 비추는 거울을 깨트립니다. 작은 저항의 몸짓입니다.
아이엔은 버스를 타고 있습니다. 지친 표정을 한 그는 힘든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직장인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버스가 정거장에 들어서는 순간, 아이엔은 이상한 것을 발견합니다.
정류장에 미소를 지으며 앉아 있는 저 사람은 또 다른 아이엔입니다. 나는 분명 여기에 있는데 왜 저기에 내가 또 있는 걸까?
깜짝 놀란 아이엔은 황급히 버스에서 내립니다. 하지만 정류장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승민은 칠판 앞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승민이 그림을 그리는 넓은 방 안에는 수많은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지만 모두 다 똑같은 그림들 뿐입니다. 그림들 속 인간은 이상하게 일그러지고 비참한, 헐벗은 모습입니다.
그림 속 인간은 왜 이런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시스템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그림 속에서처럼 나약한 모습이라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고, 어쩌면 시스템을 지배하는 지배자들의 실체가 저렇게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는지도 모릅니다.
지금까지 얌전하게 그림을 그려왔던 승민은 문득 자신이 하고 있는 행위에 이상함을 느낍니다. 그리고 붓을 들어 그리고 있던 그림에 줄을 그어버립니다.
한은 연단 위에 서 있습니다. 두건을 쓴 사람들이 한을 에워싸고 마치 예배라도 드리는 것처럼 고개를 조아리고 있습니다. 한은 그런 그들의 머리 너머로 쏟아져 내리는 밝은 빛을 바라봅니다.
눈부시도록 밝은 빛 뒤에는 한의 그림자가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그걸 보지 못합니다. 한도 지금까지는 그림자를 깨닫지 못하고 멍하게 빛을 바라보면서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오늘 시스템의 균열을 느낀 한은 빛을 등지고 어두운 그림자를 향해서 몸을 돌립니다.
현진은 VR 기계를 쓰고 있습니다. 제복을 입은 덩치 큰 남자들이 무언가를 설명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현진에게 주어진 역할입니다.
이 사람들이 바로 아이들이 생각하는 시스템 지배자의 모습입니다. 현진은 매일매일 이들이 주입하는 지식을 머릿속으로 집어넣어야 합니다.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이상함을 느낀 현진은 VR 기계를 거칠게 얼굴에서 떼어내서 벗어버립니다.
이때 주목해야 할 것은 아이들 중에서 가장 큰 동작으로 저항의 신호를 보낸 것이 현진이라는 사실입니다. 현진은 스키즈 세계관에서 가장 능동적인 캐릭터입니다. 시스템 지배자들을 VR 기계를 통해 가장 가까운 곳에서 목격했던 사람이기도 합니다. 현진은 앞으로 펼쳐진 이야기들에서 방찬과 함께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뮤직비디오에는 사람들을 관리하는 듯한 장치도 나옵니다. 장치의 화면에는 시스템이 제시하는 다양한 직업들이 쓰여있습니다. 나는 정치인이다. 나는 의사다. 나는 회계사다. 나는 물리학자다. 나는 판사다. 나는 심리학자다.
그런데 진짜 나는 누구일까. 마지막 문장에는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습니다.
시스템의 균열을 깨달은 아이들. 이들은 드디어 함께 모이게 되었습니다. I AM NOT ALONE. 앞만 보며 걸어가는 익명의 존재들 사이에서 스키즈는 두건을 벗고 뒤를 돌아보면서 탈출의 각오를 다집니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은 지직거리는 TV 화면입니다. 이 장면은 소름 끼치게도 시스템 지배자들이 모든 걸 지켜보고 있으며 스키즈의 탈출 모의가 결국 그들의 감시 아래에 있다는 사실을 암시합니다.
이제 이야기는 DISTRICT 9 뮤직비디오와 연결됩니다.
깊은 밤, 수용소를 비추는 감시 카메라에 버스 한 대가 포착됩니다. 누가 운전하는지 알 수 없는 버스는 수용소의 철제문을 뚫고 수용소 안으로 들어옵니다.
스키즈는 농장처럼 보이는 곳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방찬이 작업반장 역할을 하며 아이들을 감시합니다.
농장이긴 하지만 진짜 식물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회색빛 가짜 식물과, 똑같은 하얀 작업복을 입은 스키즈는 모두 생명력을 잃고 자신들을 가둬놓은 시스템에 종속되어버린 상태입니다.
이 생기 없는 공간에서 스키즈의 리더 방찬은 한 송이 빨간 꽃, 포인세티아를 발견합니다. 중요한 스포일러를 하나 하자면, 이 꽃은 생(生)을 의미합니다. 포인세티아의 꽃말을 '축복'이죠. 이 꽃이 예수가 탄생한 마굿간으로 동방박사들을 인도한 베들레헴의 별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스키즈의 세계관 제1막이 모두 꿈속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라는 건 1장에서 설명했습니다. 아이들의 꿈 속 모험을 하면서 찾게 될 진정한 현실, REAL LIFE를 이 꽃은 암시하고 있습니다.
생기 없는 공간에서 한 송이의 진짜 꽃을 발견한 방찬은 문득 자신이 사는 공간에 의문을 느끼고 농장 바깥으로 나갑니다.
바깥으로 뛰쳐나온 방찬의 눈앞에는 무대 조명 같기도 하고 환풍기 같기도 한 장치가 유리 조각과 함께 바닥에 떨어져 있습니다. 방찬은 유리 조각을 집어 듭니다.
이 장면은 영화 <트루먼 쇼> 중 주인공 트루먼이 우연히 하늘에서 떨어진 조명을 보고 자신이 사는 세계가 진짜가 아닌 스튜디오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 유명한 장면을 오마주한 것입니다.
떨어진 부품을 보고 이상함을 느낀 방찬은 앞으로 손을 뻗어보고, 빈 공간이라고 생각했던 곳에 보이지 않는 벽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아이들은 분명 꿈을 쫒아 이 도시에 들어와서 자신의 의지로 살아가고 있다고 믿었지만, 사실 도시의 모습을 한 수용소에 갇혀 있었던 겁니다. 보이지 않는 벽이 아이들이 나가지 못하도록 도시를 에워싸고 있었습니다.
다음 날, 스키즈는 마치 교도소에서 아침 점호를 하듯이 일렬로 늘어서 있습니다. 그들을 관리하는 매니저인 방찬은 카트를 끌고 지나가면서 아이들의 손목에 바코드를 찍습니다. 언뜻 보기에 아이들은 생기 없는 인형 같은 모습입니다.
하지만 방찬은 아이들에게 바코드를 찍으면서 그들의 손에 몰래 돌돌 감긴 빨간 쪽지를 쥐어줍니다.
이 장면은 영화 <매트릭스>에서 빨간 약과 파란 약을 선택하는 유명한 장면을 연상시킵니다. 매트릭스에서 빨간 약은 현실세계를 뜻합니다. 빨간색은 포인세티아의 색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방찬이 아이들에게 빨간 쪽지를 건네는 건 아이들이 시스템이 만든 거짓 세상을 거부하고 진실된 현실의 삶, 인생을 선택한다는 뜻입니다.
Oh, oh
Better watch out
Oh, oh
위험하니까
쪽지를 받은 아이들은 이 쪽지가 위험하며, 조심해야 한다고 노래합니다. 아이들이 살고 있는 거짓 세상에는 자유가 없지만 시키는 대로만 산다면 안전하고 편안하게 지낼 수 있습니다. 반면 방찬이 아이들에게 알린 이 세계의 진실은 위험한 것입니다.
쪽지를 받은 아이들은 이제 위험한 진실을 찾아 떠날 준비가 되었습니다.
탈출을 약속한 밤이 찾아옵니다. 스키즈는 수용소의 밝은 조명을 피해 몰래 달아납니다.
그런 그들의 눈앞에 기다렸다는 듯이 버스 한 대가 나타납니다. 아까 수용소 문을 뚫고 들어온 바로 그 버스입니다. 버스에서는 뿌연 안개가 끊임없이 흘러나옵니다. 이 안개에 주목해주시기 바랍니다. 스키즈 세계관에서 안개는 항상 꿈을 나타내는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안개가 끼어 있으면 우리는 아이들이 꿈속에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지난 장에서 헬리베이터가 영화 <인셉션>에서 꿈으로 가는 장치인 드림머신 역할을 한다고 말했습니다. 아이들 앞에 나타난 버스는 헬리베이터에 이은 두 번째 드림머신입니다.
다만 헬리베이터가 아이들이 마음 깊은 곳에 품은 진정한 '꿈'을 탐험하는 데 사용하는 근원적인 꿈의 이동 장치라면, 버스는 시스템 지배자들이 아이들을 속이고 잠재우는 데 사용하는 인공 요람 역할을 합니다.
즉 스키즈 세계관에서 버스는 아이들을 붙잡는 함정입니다. 꿈을 의미하는 짙은 안개를 뿜어내는 버스에 탑승한다는 것은 아이들이 지배자들이 보낸 함정에 빠져서 잠이 들고 만다는 뜻입니다.
버스 안에는 누군가 준비라도 해놓은 것처럼 아이들이 1장의 부랑아 시절 입었던 낡은 옷들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자신들이 덫에 걸린 줄도 모르는 아이들은 신이 나서 하얀 수용소 유니폼을 벗어던지고 낡은 옷으로 갈아입습니다.
탈출의 꿈에 부풀어 신명나게 춤을 추면서 랩을 하고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 싹 다 뒤집어놓으라는 패기 넘치는 가사에 맞춰 카메라도 위아래가 어지럽게 뒤집히며 마치 혁명이라도 일어날 듯 흥분된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다음 장면은 버스가 방찬이 손으로 느꼈던 수용소의 투명한 벽을 힘차게 뚫고 나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의미심장하게도 버스 안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아이들이 정말로 수용소 밖으로 탈출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암시하는 장면입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버스가 벽을 뚫을 때 화면이 무너지면서 현실에서는 볼 수 없는, 지직거리는 잡음이 나타난다는 거죠. 스키즈는 수용소에서 현실 세계로 탈출한 것이 아니라, 시스템 지배자들이 보낸 버스라는 덫에 걸려 잠에 빠진 상태입니다.
버스가 들어가는 곳은 현실이 아닌 꿈의 세계입니다. 텅 빈 버스와 벽이 뚫릴 때 나타나는 잡음이 이를 암시합니다. 하지만 물론 스키즈는 이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합니다. 아이들이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는 걸 알게 되는 건 한참 뒤의 일이니까요.
버스를 타고 바깥세상처럼 보이는 곳에 도착한 스키즈. 아이들은 호기심과 불안감이 뒤섞인 표정으로 버스에서 내려서 주변을 탐색합니다.
스키즈가 도착한 공간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조차 어려울 만큼 두터운 안개에 뒤덮여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안개는 꿈을 상징합니다. 아이들이 있는 장소가 현실이 아니라 꿈속 세상이라는 뜻이겠죠.
안개를 뚫고 걸어가던 스키즈는 버려진 공장 건물을 발견합니다. 아이들이 수용소에 갇히기 전 부랑아 시절에 살았던 지하세계를 연상시키는 황량한 공간입니다.
스키즈는 이 공간에 예전처럼 자신들만의 왕국을 건설하려고 합니다. 그 왕국의 이름이 바로 Distirct 9입니다.
스프레이를 든 승민이 District 9을 상징하는 깃발을 그립니다.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시스템에서 시키는 그림을 따라 그릴 때와는 달리 잔뜩 신이 나서 생기가 넘치는 표정입니다.
스키즈는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탈출의 기쁨을 만끽합니다. 폐허가 된 공장 곳곳에는 온통 불이 타오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바닥에는 물이 잔뜩 고여 있습니다.
불과 물은 상극으로, 원래라면 서로 같이 있을 수 없습니다. 불과 물이 함께 있는 모습은 이 공간이 현실이 아닌 부조리하고 비정상적인 가짜 꿈속 세상이라는 것을 암시합니다. 또는 헬리베이터 뮤비에서 불이라는 상징으로 표현된 아이들의 청춘이 이제 물이라는 위협에 노출되어 있다는 뜻일 수도 있겠습니다.
또한 아이들이 춤추는 공간에는 자동차가 있습니다. 앞으로도 자주 등장하게 될 상징물인 자동차는 스키즈가 꿈을 향해 질주하고자 하는 열정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폐허가 된 공장에 놓인 자동차는 당장이라도 폐차장으로 가야 할 듯 망가지고 부서진 모습입니다.
싹 다 뒤집어 놓으라는 신명나는 노래 후렴부가 지나가고, 분명 처음 시작할 때는 힘차게 펄럭거렸던 District 9 깃발이 노래가 끝날 무렵에는 축 늘어져 있습니다. 황폐한 공장 안에서 아이들은 함께 있음에도 불구하고 멍한 표정으로 서로 다른 방향을 응시합니다.
Oh oh Better watch out
여긴 우리 구역 District 9
어딘가 찝찝하긴 하지만, 그래도 스키즈는 자신들이 수용소를 성공적으로 탈출해 아무도 없는 폐허에 우리만의 왕국을 건설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노래가 끝나는 순간까지도 패기롭게 여긴 우리 구역이라고 외치면서 철문을 닫고 나갑니다. 아이들은 아직 자신들이 시스템의 함정에 빠져서 잠들었다는 사실을 조금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뮤직비디오가 끝나기 직전, 분명 디스트릭 나인이라고 쓰여있던 화면이 지직거리며 잡음이 생기더니 순식간에 I AM NOT이라는 글자로 전환됩니다.
I am NOT은 시스템 속에서 살아가는 나약하고 보잘것없는 인간상을 상징하는 문장입니다. 인생을 의미하는 빨간 포인세티아를 발견한 스키즈는 자신들이 살아가고 있는 도시의 균열을 깨닫고 수용소를 탈출하려고 시도했지만, 버스라는 함정에 빠져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마지막 장면에 나타나는 I am NOT이라는 문장은 아이들이 아직도 시스템 지배자들에게 종속되어 있으며 이들의 탈출이 조작된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District 9 '은 2009년에 개봉한 SF 영화에서 가져온 설정입니다. 이 영화에서 District 9 이라는 구역은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은신처가 아니라 지구에 적응하지 못하는 외계인들을 수용하려는 용도로 정부에 의해 건설된 격리 구역입니다.
스키즈는 수용소를 탈출해 자신들만의 왕국을 세웠다고 믿고 있지만, 사실 시스템 지배자들이 부적응자라고 판별된 아이들을 또 다른 수용소로 보내 격리하기 위해 일부러 버스를 보내 아이들이 탈출에 성공한 것처럼 눈속임을 하고 있다는 것을 원작 영화의 설정을 통해 눈치챌 수 있습니다.
이야기는 2장 '터널'로 이어집니다.
2장의 배경이 된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