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업/SKZ 세계관(2020)

제1막 5장 CITY JUNGLE [꿈의 미로, 꿈의 하이라이트](2020.09.06)

sonoregret 2024. 6. 20. 14:07

"독 덫 독버섯 어디 한번 깔아 봐라
결국에 난 살아남아 어떻게든 살아남아
나는 알아 함정 따위 깔아 봤자 난 더 세게 밟아
답은 하나 뭐든 까고 보면 돼"
 
-Stray Kids, MIROH-
 

 
끌레 시리즈의 첫 타이틀곡인 'MIROH' 뮤직비디오는 흥겨운 개선 행진곡과 함께 시작합니다. 커다란 광장에서 사람들이 음악에 맞춰 단체로 행진을 하고 있습니다.


오픈카에 타고 있는 남자들에게 사람들은 박수와 환호를 보냅니다. 남자들 뒤편으로 보이는 플래카드에는 사자의 얼굴이 선명합니다. 맨 앞에서 걸어가는 남자는 쇠사슬에 묶인 큰 개를 데리고 있습니다.


 
환호하는 여성이 들고 있는 슬로건에 THERE IS NO TARZAN IN CITY JUNGLE시티 정글에 타잔은 존재하지 않는다. 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이 도시의 이름은 CITY JUNGLE. 현재 이곳은 사진 속 남자들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빨간 오픈카를 타고 지나가는 지배자들은 사람들에게 돈을 뿌리면서 찬사를 받습니다.

 
다시 한번 스포츠카 뒤에 있는 사람이 거꾸로 들고 있는 슬로건에 주목하시길 바랍니다. 이 슬로건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SOMETHING HAPPENED, BUT NOTHING CHANGED. 어떤 일인가 벌어지지만,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장면이 전환되면서 행진 장면이 여러 개의 지직거리는 CCTV 화면으로 녹화되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누군가 이들의 행진을 지켜보고 있는 겁니다.

 
그 사람은 바로 빨간 머리를 한 아이엔입니다. 아이엔은 심각한 표정으로 누군가에게 무전을 보내고 있습니다.
 

 
I am YOU의 옥상에서 바라보던 꿈의 도시인 CITY JUNGLE로 들어온 스키즈는 지금 모피를 입은 지배자들을 끌어내리기 위한 반란을 모의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 반란 모의에서 아이엔의 역할은 현장에 나가 있는 다른 멤버들을 위해 개선 행진을 살피는 것입니다. 항상 CCTV로 감시를 당하던 스키즈가 이번에는 다른 사람들을 감시하고 있는 셈입니다.

 
다른 아이들은 광장에 나와 있습니다. 행진하는 사람들 속에 자연스럽게 섞여 들어가면서 스키즈는 축제 분위기가 가장 고조되었을 때 지배자들을 끌어내리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립니다.

 
그러나 아이들 뒷편에서 행진하는 사람이 치켜든 플래카드에는 ODER-DISODER라는 문구가 쓰여있습니다. 질서-무질서. 아무리 봐도 개선 행진을 하면서 들고 있을 슬로건은 아닙니다.


이처럼 사람들이 들고 있는 슬로건을 통해 도시는 스키즈에게 끊임없이 이곳이 부조리하고 비현실적인 꿈의 공간이라는 신호를 보냅니다. 하지만 
물론 아이들은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행진의 끝에는 커다란 단상이 있습니다. 사자 갈기 같은 모피를 두르고 호피 무늬 목도리를 한 지배자들이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연설을 시작합니다. 그들의 뒤에는 거대한 사자 가면 모양의 풍선이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즉, 사자와 호랑이는 이 도시를 휘어잡고 있는 지배자들을 뜻하는 상징입니다.
 

 
검은 옷을 입고 복면을 쓴 사람들을 거느리고 있는 필릭스. 이들은 아이들을 따르는 반란군입니다. 필릭스의 신호를 받은 반란군은 이제 곧 연단을 향해 달려갈 예정입니다. 도시를 뒤집어 놓을 스키즈의 반란이 시작되는 겁니다.
 

 
이때 갑자기 필릭스의 뒤로 화면이 깨지며 글자들과 이미지들이 지나갑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걸까요?


앞서 3장에서 차원이 무너지는 듯한 기이한 화면 전환과 잡음은 스키즈가 꿈을 꾸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습니다. 
필릭스 뒤로 지나가는 글자들과 이미지들 역시 이런 잡음의 일종입니다. 이 현상은 아이들이 CITY JUNGLE이라는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조작된 꿈에 불과한 MY PACE의 공간에서 잡음은 조잡하고 어색한 형태를 띠고 있었습니다.

위, 아래-인셉션의 미로

 
하지만 이번 꿈은 다릅니다. 인셉션 이야기를 다시 빌려와 보자면 영어로 미로를 의미하는 메이즈는 설계자가 꿈꾸는 사람들을 속이기 위해서 만들어낸 꿈의 설계도입니다. 꿈의 주인이 조작된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는 설계자가 최대한 정교하고 복잡한 설계도를 만들어야 합니다. 자연스러운 꿈을 설계해야만 꿈꾸는 사람이 이상함을 느끼지 않을 테니까요.

 
스키즈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깊은 잠을 자면서 꿈속으로 깊숙히 들어와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지금 들어와 있는 이 도시 CITY JUNGLE은 MY PACE의 터널 입구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정교하게 만들어진 꿈의 공간입니다. MY PACE의 터널이 허술하게 조작된 꿈이라면, CITY JUNGLE은 섬세하게 설계된 꿈인 셈입니다.

 
도시의 모습을 한 배경 위에 빨간 글씨로 MIROH라는 글자가 나타나는 미로 뮤비의 로고는 이 설명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아이엔이 바라보고 있는 CCTV 화면 역시 시스템 지배자들이 설계한 미로에 스키즈가 갇히고 말았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장치입니다. 처음에 분명 화면에는 행진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순간 CCTV 화면이 지직거리더니 미로 모양으로 변합니다. 쇠창살 뒤에 있는 미로. 이 장면은 스키즈가 현재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알려줍니다. 잠이라는 철장에 갇혀 시스템 설계자들이 설계한 꿈의 미로를 헤매는 것이 지금 아이들의 모습입니다.
 
 

 

 거울 속에 비친 난 미로 (난 미로) eh
내 안을 비춰줄 my mirror (my mirror) no
어디서 찾아야 할까


CCTV가 있는 방 안에는 유리 문이 달린 수납장이 여러 개 있습니다. 언뜻 보면 거울처럼 생겼지만, 거울이 아니라 시스템 지배자들이 이용하는 기계 장치를 넣어놓는 수납장입니다. 유리문에 비치는 것도 아이들의 모습이 아닌 미로입니다.


아이들이 자기(self) 탐구를 하는데 사용하는 수단인 거울마저도 설계된 도시에서는 미로를 담는 장치에 불과
한 겁니다.


 
정교하게 설계된 깊은 꿈 속인 CITY JUNGLE에서는 화면 잡음의 퀄러티도 훨씬 높아졌습니다. MY PACE 때처럼 어설프고 조악한 노이즈가 아닌, 다양한 이미지와 단어들로 이루어진 복잡한 화면이 지나갑니다. 아이들이 지금 도시를 꿈꾸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라도 하듯 도시의 이미지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꿈을 의미하는 이런 잡음이 필릭스가 등장할 때만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스키즈 세계관에서 필릭스가 아이들의 마음/정신(mind)을 의미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은 꿈이 이루어지는 배경이자, 아이들이 꿈의 세계에서 따라가야 할 나침반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필릭스와 나침반은 항상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승전가 안무에서는 인간 나침반이 되어서 360도로 돌려지기까지 합니다. 이에 관한 자세한 설명은 7장에서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릭스 뒤로 순식간에 지나가는 글자들과 이미지들 속에서 'property'라는 단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단어는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지배자들이 스키즈를 자신들의 소유물이나 재산으로 여기고 있다는 뜻인 한편, CITY JUNGLE이라는 꿈을 꾸는 사람은 아이들이지만 그 꿈의 설계도인 MOROH를 만들어내 아이들을 꿈속에 가두고 있는 것은 시스템 지배자들이라는 뜻으로도 볼 수 있겠습니다.

 
로켓 이미지 역시 선명하게 보입니다. 이번 장에서 처음 등장하는 로켓은 위로 치고 올라가 꿈에서 깨어나고 싶은 아이들의 의지를 나타내는 상징입니다. 'MIROH' 노래 가사에서도 이런 의지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곡의 후렴구에서 스키즈는 마치 주문을 외는 것처럼 위로 올라가겠다는 말을 반복합니다.
 

워어오 워어오 워오
Higher 저 위로 갈래
워어오 워어오 워오
Higher 더 높이 날래


 

일부러 CG를 어색하게 만든 거겠지 제왑삐가 설마 돈이 없겠어

 
하지만 스키즈가 올라간 곳은 겨우 CITY JUNGLE의 옥상입니다. 아이들 뒤에 펼쳐진 금속 느낌의 회색빛 도시는 마치 CG처럼 인공적이고 부자연스럽습니다. 빌딩에 걸린 거대한 빨간 현수막에는 지배자를 의미하는 사자의 얼굴이 선명합니다.
 

 
옥상 왼편에는 물탱크가 보이는데, 이 물탱크는 로켓과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하지만 로켓과 비슷한 모양이라고 해서 물탱크가 로켓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즉, 꿈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스키즈의 의지를 상징하는 모습이 로켓이라면 그 의지는 아직 제대로 발현되지 못한 물탱크에 불과
한 겁니다.


 
게다가 아이들이 춤추는 장소 오른편 비상구 옆에는 CCTV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스키즈는 자신들이 드디어 감시당하는 입장에서 벗어나 도시를 감시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여전히 시스템에게 감시당하는 처지입니다.

 
화면이 전환되어, 방찬과 승민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들은 CITY JUNGLE 한가운데 있는 빌딩 안에서 도시를 뒤집을 반란 계획을 짜고 있습니다. 여기서 계획을 짜는 사람 중 하나가 승민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지난 장에서도 설명했지만, 승민은 아이들 중에서 시스템의 세뇌에 가장 깊이 빠진 인물입니다.
 

 
그런 승민이 반란 계획서를 짜고 있다는 건 스키즈의 모든 생각과 행동이 꿈속 도시의 진짜 지배자, 즉 시스템 설계자들에게 계속해서 전달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옥상에서 스키즈의 행동을 지켜보는 CCTV와 아이들의 계획을 감시자들에게 전달하는 승민. 정교하게 만든 미로이자 꿈의 하이라이트인 CITY JUNGLE에서 스키즈는 그 어느 때보다도 지배자들의 손아귀 안에 깊이 들어가 있습니다.


 
물론 아이들은 이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 채 패기 넘치는 모습으로 반란을 모의하며 신나는 춤판을 벌입니다.

'헬리베이터' 뮤직비디오
'District 9' 트레일러
'I am YOU' 뮤직비디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1장에서 헬리베이터에 올라탄 스키즈가 백일몽의 공간인 보라색 벌판에서 발견한 것은 거대한 도시였습니다. 이들이 'District 9' 뮤직비디오 에 등장하는 수용소에 갇혀 무감각한 삶을 살았던 것도 그곳이 화려한 도시의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전의식의 공간인 옥상에서도 꿈을 쫓는 아이인 한은 빌딩 숲처럼 보이는 스피커들 사이에 앉아 노래를 불렀습니다. 즉 아이들은 처음부터 대도시라는 꿈을 추구해 왔던 것입니다.


 
CITY JUNGLE은 설계된 꿈이지 조작된 꿈이 아닙니다. 꿈을 설계하는 사람은 미로라는 설계도를 만들 뿐이며, 그 내용을 채우는 것은 꿈을 꾸는 스키즈 자신입니다.

 
'I am YOU'의 옥상에서 아이들은 스피커를 쌓아서 직접 이 도시를 만들었습니다. 즉 CITY JUNGLE은 시스템 지배자들이 기획에 맞춰서 아이들이 직접 구성해낸 꿈의 공간입니다. 만약 스키즈가 다른 꿈을 마음 속에 꾸었다면 CITY JUNGLE이 사라지고 다른 꿈의 장이 그 자리를 채웠을 것입니다.


"네가 꿈의 세상을 설계하면, 우린 표적을 그 꿈속에 데려가고 표적의 무의식이 그 꿈속을 채우지"

-영화 <인셉션>의 주인공 코브가 설계자 아리아드네에게 한 말

 

'싹 다 뒤집어 놔'를 외치며 도시 정복이라는 꿈을 꿔온 스키즈의 눈앞에 나타난 꿈의 미로는 CITY JUNGLE이라는 대도시에서 펼쳐지는 한 편의 블록버스터 영화와도 같은 반란입니다. 자신이 꿈이 눈앞에서 이루어지려고 하는 순간이 너무나 달콤하기에 아이들은 설계된 꿈의 이상함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 도시가 가짜에 불과하다는 것을 'MIROH'의 커플링 곡인 '승전가' 뮤직비디오는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뮤직비디오 속에서 스키즈는 자신들이 비행기가 되었다고 착각하고 패기 넘치는 모습을 한 채 승리의 노래를 부르며 까마득한 빌딩 숲 속으로 뛰어듭니다. 
 


절대 후퇴는 없어
패기와 객기로 자신감 넘쳐 다 던져

승자의 함성 Oh
Listen to this 승전가

 

 
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아이들이 뛰어든 도시는 고작 플래카드에 인쇄된 사진에 불과했던 것으로 밝혀집니다. 아이들이 되어야 하는 것 역시 비행기가 아니라 로켓입니다.

 
그렇다면 '승전가'는 가짜 꿈속에 갇힌 아이들이 부르는 공허한 승리의 노래에 불과할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음악방송 인터뷰에서 방찬은 승전가가 '미로 속에 갇힌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곡'이라는 취지의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또한 승전가 가사에서 스키즈는 자신들이 언젠가 
땅에서 날아올라 비상(飛翔, take-off)할 것이며, 아나콘다가 되어서 정글의 왕인 호랑이를 잡아먹을 거라고 말합니다.

 

돌진해 막 위로 Fly high
누가 나를 막아 감히 날
정글의 왕 Tiger 잡아먹는 아나콘다
목표를 향해 질주해 난 더 높이 가 비상


 

 
따라서 승전가는 예언의 노래입니다. 스키즈가 언젠가 꿈에서 깨어나 인생을 찾고 꿈을 설계한 사람들을 상대로 진정한 승리를 거둘 거라는 사실을 승전가는 암시합니다. 비록 지금은 꿈 속에서 속고 또 속으면서 미로를 헤매고 있지만 아이들은 언젠가 꿈에서 깨어날 것이며 STAY를 향한 모험은 그 이후에도 계속될 것입니다.
 

 
장면이 전환되어 무기를 보관하는 지하 창고 같은 공간을 보여줍니다. 벽에는 개 머리 모양의 가면이 걸려 있고, 모래 속에는 빨간 장난감 총이 박혀 있습니다.

 
스키즈는 벽에 걸린 개 머리 모양 가면을 각자 하나씩 챙기면서 모래 속에서 빨간색 장난감 총을 뽑아 듭니다. 가면과 총은 모두 이들이 CITY JUNGLE을 정복할 사용할 무기들입니다.

 
하지만 잘 살펴보면 이것들 중에서 진짜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가면은 가면일 뿐이고, 총은 장난감일 뿐입니다. 아이들이 총을 꺼내는 곳도 발로 차면 흩어질 모래 더미에 불과하죠.


이처럼 설계된 꿈은 앞뒤가 맞지 않고 허술한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CITY JUNGLE의 화려한 외관에 마음을 빼앗긴 아이들이 아무것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을 뿐이죠.


 
무기도 챙겼겠다, 반란군도 모였겠다, 마침내 CITY JUNGLE을 뒤집어놓을 스키즈의 반란이 시작되었습니다. 아이들은 결의에 가득 찬 표정을 하고 연단을 향해서 달려갑니다. 검은 복면을 쓴 남자들이 아이들의 뒤를 따라갑니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입니다.

 
스키즈의 등장에 화들짝 놀란 도시의 지배자들은 호들갑을 떨며 단상에서 내려와 꽁무니를 뺍니다.

 
순식간에 모피 입은 지배자들을 몰아낸 아이들은 연단 위에 서서 사람들의 환호를 받습니다. 이들의 반란은 놀라울 만큼 허무하게 끝났습니다. 현실이라면 이렇게 쉽게 성공할 리가 없겠죠. CITY JUNGLE이 스키즈 맞춤형으로 만들어진 정교한 미로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마치 영화와도 같은 가짜 모험을 제공해 아이들을 현혹시키는 것이 시스템 지배자들이 꿈을 설계한 목적이니까요.
 

 
CITY JUNGLE은 꿈이라는 영화가 펼쳐지는 세트장입니다. 'MIROH' 뮤직비디오 도입부가 영화처럼 보이는 화면 비율과 오프닝 크레딧으로 시작되었던 건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고작 꼬마들 몇 명이 몰려왔다고 줄행랑을 쳐버리는 이 도시의 권력자들 역시 꿈을 설계한 진짜 시스템 지배자가 아니라 세트장에서 스키즈를 상대로 연기를 펼치는 배우들일 뿐입니다. 이들은 웃음을 머금은 얼굴로 자신의 배역을 충실하게 수행하며 아이들을 농락하고 있습니다.
 

 
반란에 성공하고 도시를 손에 넣었다고 굳게 믿고 있는 스키즈는 복면을 쓴 사람들과 함께 신명 나는 춤판을 벌입니다. 그러나 지배자를 의미하는 사자 가면은 여전히 건물 꼭대기에 걸려서 텅 빈 눈으로 아이들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옷 여기저기에도 호피 무늬가 보입니다.
 

 
장면이 전환되는 순간에도 화면에는 포효하는 호랑이의 얼굴이 스쳐 지나갑니다. 본인들만 모를 뿐 사자와 호랑이로 상징되는 지배자들의 감시와 통제에 스키즈가 완전히 사로잡혀 있음을 'MIROH' 뮤직비디오는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게다가 'MIROH' 노래의 가사 또한 스키즈가 시스템의 세뇌에 점점 깊게 물들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장치입니다.

 

 

힘들지 않아 거친 정글속에
뛰어든 건 나니까 I'm okay

 
코러스에서 방찬은 마치 암시라도 거는 것처럼 이 가사를 반복해서 부릅니다. I'm okay라는 구절을 부르면서 그는 손으로 OK 사인을 만드는 안무를 취합니다.

 
언뜻 보기에 I'm okay라는 가사와 OK사인 안무는 자신감 넘치는 아이들의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실 OK 사인은 스키즈가 시스템 지배자들이 놓은 덫에 완전히 걸려들어 독 안의 쥐가 되고 말았다는 사실을 가장 잘 보여주는 소름끼치는 상징입니다.


 
앞서 3장 MY PACE의 터널 안에는 시스템 지배자들이 보낸 스포츠카가 등장했습니다. 이 스포츠카의 앞부분에는 OK 모양을 취하는 손 모양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었습니다. OK 사인이 시스템 지배자들의 상징이었던 겁니다.

 
따라서 방찬이 I'm ok라는 말을 반복하며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미로에 갇힌 스키즈가 시스템 지배자들에게 점점 세뇌되어 가고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도시를 점령했다고 믿으면서 흥겹게 춤추는 아이들과 그 뒤를 따르는 복면을 쓴 사람들. 그들의 뒤로 짙은 안개가 피어오릅니다.  앞에서 여러 번 설명했듯이 안개는 꿈을 의미합니다. 스키즈는 지금 CITY JUNGLE이라는 꿈속에서 호화로운 영화 한 편 제대로 찍고 있는 중입니다.

 
복면을 쓴 사람들은 스키즈를 조력하는 반란군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반란이 끝난 지금, 이들은 승민을 가리키면서 엄지손가락을 추켜올립니다. 시스템 지배자들을 도와 아이들을 감쪽같이 속여 넘긴 승민을 칭찬해주고 있는 겁니다. 이들의 가면은 더 이상 검은색이 아니라 괴이한 형광색으로 빛나고 있습니다.
 

 
승리의 기쁨을 마음껏 만끽하는 아이들 사이에서 유난스러울 만큼 환하게 웃으며 즐거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막내 아이엔입니다.


7장에서 더 자세히 나오겠지만, 아이엔은 꿈에 더 머무르고 싶어 하는 아이입니다. 그는 시스템 지배자들이 자신을 감시하건 말건 관심이 없습니다. 그저 신나고 화려한 꿈속 세상에서 사는 것이 행복할 뿐입니다. 그래서 I am YOU의 티저 사진에서 혼자 환하게 웃고 있었던 것입니다.


위-I am YOU 뮤비 속 승민, 아래-부작용 뮤비 속 아이엔

 
승민이 자신도 모르게 시스템에 세뇌당해 지배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인물이라면, 아이엔은 자신의 의지로 시스템이 제공하는 달콤한 환상들을 즐기면서 행복해하는 인물입니다. 이번 장에서 슬슬 본색을 드러내더니 다음 장인 YELLOW WOODS에서부터는 아예 대놓고 꿈에서 깨고 싶지 않다는 티를 팍팍 내고 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해가 지고 도심의 하늘 위로 노을이 걸립니다. 드디어 도시 점령이라는 목표를 이룬 스키즈는 마천루 꼭대기에서 성공을 자축합니다. 하지만 사자가 그려진 CITY JUNGLE 플래카드는 저물어가는 햇빛을 받아 더욱 선명해진 모습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을 내려다봅니다. 로켓 모양 물탱크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습니다.
 

We goin' higher 다음 도시 속에
빌딩들 내려보며 fly all day



마침내 자신들이 비행기가 되어 CITY JUNGLE의 하늘을 정복했다고 착각한 아이들은 이렇게 노래를 부릅니다. 하지만 도시 꼭대기로 올라온 스키즈는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시스템 지배자들이 설계한 화려한 꿈속에 완전히 사로잡혀 길을 잃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이때 선명한 울음소리와 함께 처음으로 가 등장합니다. 스키즈 세계관에서 새는 빨간 포인세티아가 상징하는 LIFE, 즉 인생으로 향하는 길을 안내하는 살아있는 나침반입니다. 이 새가 'MIROH' 뮤직비디오에서 처음 등장하는 것은 아이들이 가장 깊은 꿈속으로 들어와 CITY JUNGLE이라는 꿈의 하이라이트를 맛봤기 때문입니다.
 

의식의 끝을 맛본 아이들은 이제 깊은 무의식 속으로 들어가 꿈에서 깰 준비를 할 수 있는 자격이 생겼습니다. 새는 그런 아이들에게 보내진 안내자이자 정령입니다.
 

 
아까 필릭스가 아이들의 마음(mind)을 의미하는 인물이라고 설명했었죠. 새가 지나간 직후 필릭스가 손짓을 보내자 아이들은 모두 필릭스의 손짓에 맞춰 고개를 움직입니다. 실제 안무와도 연결되는 이 장면은 필릭스 역시 아이들이 따라가야 할 나침반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신나는 연극이 끝난 CITY JUNGLE의 밤은 허무합니다. 분명 어떤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세상을 뒤집어엎었다고 생각했지만 모든 것이 그대로입니다. 

 
그래도 스키즈는 헬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면서 품었던 꿈의 하이라이트를 경험했습니다. CITY JUNGLE의 옥상인 이곳은 아이들이 마음속에 품은 꿈의 꼭대기이자 절정입니다. 여행을 하는 아이들도, 지켜보는 우리도 모두 그렇게 믿어버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반전이 숨겨져 있습니다. 
 

 
반전은 'MIROH' 다음 활동곡인 '부작용' 뮤직비디오 티저에서 밝혀집니다. CITY JUNGLE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층이라고 생각한 스키즈는 도시를 떠나 맨 아래층으로 가보기 위해서 L, 즉 LOWER 버튼을 누릅니다.

 
그런데 L층에서 문이 열리고 나타난 것은 또다른 CITY JUNGLE입니다. 자신들이 반란을 일으켜 뒤집었던 그 도시가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채 고장난 비디오처럼 반복 상영되고 있는 장면이 나타나자 아이들은 당황합니다. 이들이 꿈의 꼭대기라고 믿었던 대도시가 사실은 꿈의 가장 아래층에 위치한 곳이었던 겁니다.

 
이 반전이 가진 진짜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이들이 헬리베이터를 타고 보라색 벌판으로 올라오던 시점으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한은 7층이자 hell이라고 쓰여 있는 곳으로 올라가 보라색 벌판에 도착합니다. 이 곳이 헬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높은 장소였습니다. 여기
서 아이들은 아직 잠들어 있지 않았습니다. 


 
3장에서 스키즈가 꾸는 꿈의 층을 의미하는 용어로 Deck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고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여기서 꿈이란 실제로 잠들어서 꾸는 꿈을 의미합니다). 꿈의 층은 숫자가 높아질수록 위로 올라가지 않고 아래로 내려갑니다.
 
 

 

2장에서 아이들은 수용소를 탈출하려고 시도하지만 버스라는 함정에 빠져 잠이 들고 맙니다. 잠이 든 스키즈가 도착해서 자신들만의 왕국인 DISTRICT 9을 세웠던 버려진 공장이 바로 Deck1입니다. 헬리베이터에서 이곳은 6층에 해당합니다.
 
 

 
그 다음에 등장한 공간이 바로 Deck2, MY PACE의 터널 입구입니다. 헬리베이터에서 이곳은 5층입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지금 도달해 있는 CITY JUNGLE은 Deck3이자, 헬리베이터의 4층입니다. 열쇠 없이 갈 수 있는 마지막 층인 이곳은 L층이라고도 불립니다. 의식의 밑바닥을 뜻하는 층이기 때문입니다. 이곳보다 더 밑으로 내려가려면 무의식의 문을 여는 열쇠가 있어야 합니다.

 
스키즈는 자신들이 헬리베이터를 탔을 때 꼭대기 층인 hell로 가는 버튼을 눌렀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꿈속 모험이 깊어지면서 아이들은 자신들이 점점 더 높은 층으로, 한이 말하던 펜트하우스로 올라가고 있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나는 올라탔지 내 손을 잡고
펜트하우스로 데려다 줄
My Hellevator

 

하지만 사실 그들은 계속해서 꿈의 밑바닥으로 내려가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아이들이 경험한 CITY JUNGLE이라는 꿈의 하이라이트는 사실 아주 깊은 잠을 자야만 도달할 수 있는, 의식의 맨 아래층에 위치한 장소였던 겁니다.

 
시스템 지배자들의 감시를 피하고 자신들의 진짜 꿈을 찾기 위해 의식의 맨 아래층까지 내려간 스키즈. 하지만 감시자들은 그곳까지 아이들을 쫓아와, MY PACE의 조악한 터널 입구와는 비교할 수조차 없이 정교한 미로를 만들어 아이들을 가두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CITY JUNGLE을 마지막으로 설계자들이 스키즈를 잡아두기 위해 만든 화려하고 흥미진진한 꿈은 끝이 났습니다. 이제 아이들의 마음이 보낸 신호인 새가 나타났습니다. 시스템 지배자들이 장악하고 있는 꿈에서 깨어나 빨간 포인세티아가 상징하는 LIFE로 향하기 위해서는 이 신호를 따라가야 합니다.

 
새는 아이들을 L층보다 더 깊은 곳, 무의식이라는 심연 속으로 인도합니다. 하지만 이 영역은 그냥 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무의식의 문을 열기 위해서는 열쇠가 필요합니다. 아이들은 과연 무사히 열쇠를 획득해 더 깊은 마음속을 탐험하고 꿈에서 깨어나는 길을 찾을 수 있을까요.

 
이제 이야기는 5.5장 '대합실'로 이어집니다.

5장의 배경이 되는 영상

"MIROH" M/V - 2019.03.24 공개
<Clé 1 : MIROH> UNVEIL : TRACK "승전가(Victory Song)" - 2019.03.24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