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웹툰 <저무는 해, 시린 눈>의 중/후반부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3. 마음의 전쟁을 끝내는 방법: 기사의 용기와 평민의 용기

테리온이 쏜 화살은 마녀에게 명중한다 - 사실 이 말은 상황을 설명하기에 충분한 문장이 아니다. 속사정은 이렇다. "마녀가 테리온의 화살 앞에 몸을 대줬다."
한때의 친구가 그녀의 정체를 알고 적으로 돌변하는 것. 힐데가르는 그런 일에 익숙하다. 8년 전 평원 대전투에서 형제자매를 잃었다고 테리온이 말했던 순간부터 그녀는 이 순간을 예상했을지 모른다. 한 번은 테리온의 화살에 맞아줘야 한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화살에 맞으면 죽을 만큼 아프지만, 그래도 죽지는 않는다. 죽지 않는 몸을 전쟁으로 상처받은 친구의 화살 앞에 내어주는 건 신의 힘을 가진 그녀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저무는 해, 시린 눈>의 배경은 전쟁이 끝난 왕국이다. 전쟁은 왕이 일으키고 귀족이 일으킨다. 사람들을 전쟁터로 끌어들이기 위해 왕과 귀족은 이념의 씨앗을 퍼트린다. 산 너머 이웃이 어느 날 도깨비의 얼굴을 한 악마로 변한다. 평범한 소녀가 소름 끼치는 마녀가 된다. 왕과 귀족이 퍼트려 심어놓은 증오의 이념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난다. 그 씨앗이 어디에서 온 건지는 누구도 묻지 않는다.

전쟁을 시작하는 건 왕, 전쟁을 끝내는 것도 왕이다. 억울하지만 세상 일이란 게 그렇다. 어느 날 왕은 종전을 선언한다.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에 자리 잡은 증오의 싹은 사라지지 않는다. 씨를 뿌린 사람들은 결과물을 거둬갈 생각이 없다. 오히려 그들은 그 증오에서 이익만을 취해간다. 그래서 평범한 사람들은 여전히 왕과 귀족이 적이라고 명명한 자들을 증오한다.

명분 없는 증오는 아니다. 전쟁으로 사람들은 가족을 잃고 친구를 잃고 일상을 잃었다. 명분이 충분한 증오는 전염성이 짙다. 그렇게 증오가 공기 중을 떠돈다. 증오가 증오를 낳고, 복수가 복수를 낳는다. 전쟁은 끝났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속에서는 전쟁이 계속된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렇기에 더욱 끈질긴 마음의 전쟁이 계속된다.

이쯤에서 다시 처음의 질문을 던진다. 전쟁이 끝난 땅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조금 더 나아가 보자. 몸의 전쟁은 끝났지만 마음의 전쟁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땅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남부는 기사들의 땅이다. 기사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물러서지 않고 싸울 용기’다. 전투를 앞두고 겁쟁이처럼 도망치지 않을 용기. 공동체를 위해 죽음을 각오할 용기. 다수의 평화를 위해 잔인함을 감내하는 소수가 될 용기.

그러나 전쟁이 끝난 땅에서 이 용기는 효력을 잃는다. 물론 전시가 아닌 때에도 사람들은 기사의 용기를 찬양한다. 많은 이들이 기사의 용기를 원한다. 하지만 만약 모두가 기사의 용기를 가지고 서로에게 적이 되어 싸운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전쟁이 다시 시작된다. 평화는 영원히 찾아오지 않는다.
전쟁이 끝난 땅에 필요한 용기는 맞서 싸울 용기가 아니다. 그 반대다.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는 ‘싸움에서 물러설 용기’가 필요하다. 적 앞에서 등을 돌려 피할 용기, 겁쟁이라고 손가락질당할 용기.

이것은 기사의 용기가 아니라 평민의 용기다. 역사에 남지 않는 용기다. 사람들이 알아주기는커녕 무시하고 비웃는 용기다.
<저무는 해, 시린 눈>의 두 주인공이 보여주는 용기가 바로 이것이다. 알브레히트와 테리온 와이드헨이 아닌 에르킨과 힐데가르(카야)가 이 작품의 주인공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남자 주인공이지만 가난하고 울보에 고아인 에르킨. 그런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남부의 용맹한 기사인 테리온은 있는 힘껏 싸움을 건다. 야만적인 북부인이 당연히 자신에게 맞설 거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에르킨은 조용히 등을 돌려 자리를 떠난다. 테리온은 그런 그를 겁쟁이라고 비웃지만 남은 거라곤 씁쓸한 뒷맛밖에 없다. 테리온이 만들어낸 작은 전쟁터에서 에르킨이 빠져나가 버렸기 때문이다. 이렇듯 마음의 전쟁은 몸의 전쟁과는 다르다. 한쪽에서 아무리 싸움을 걸어도 상대에게 싸울 의지가 없다면 마음의 전쟁은 벌어지지 않는다. 왕과 귀족의 전쟁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전쟁이기에 그렇다.

작품의 후반부에서 알브레히트와 힐데가르가 만났을 때도 같은 일이 벌어진다. 2부 46화에는 알브레히트가 조카들의 죽음을 자세하게 묘사하는 장면이 있다.

8년 전에 있었던 일인데도 그는 열띤 어투로 평원 대전투에서 조카들이 얼마나 처참하게 짓밟혀 죽었는지 이야기한다. 지나치게 생생하다. 마치 어제 일어난 일이기라도 한 양. 이 장면은 알브레히트의 마음이 여전히 그 전투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준다. 8년이라는 세월이 지나 군대는 이미 모두 철수했건만 그는 여전히 평원에서 혼자만의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그렇기에 알브레히트는 힐데가르를 끌어내리는 일에 자신의 전부를 건다. 그녀의 눈에서 처참한 눈물이 흘러내리는 모습을 볼 때까지 멈추지 않고 전진한다. 눈물을 목격한 그는 마침내 만족한다. 힐데가르를 화형대에 올려 불태울 때보다 더 큰 만족감을 그 순간 느꼈음이 분명하다. 그의 전쟁은 마음의 전쟁이기 때문이다.

알브레히트는 마음의 전쟁에서 1승을 거뒀다. 그래서 화형대에서 풀려난 마녀의 칼에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그는 기꺼이 운명을 받아들인다. 내심으로는 그녀가 자신을 찔러주기를 바랐을 수도 있다. 자신이 죽으면 친인척 중 누군가가 복수의 굴레를 이어받아 마녀를 사냥해 줄 테니까. 그를 대신해 마음의 전쟁을 계속해줄 테니까. 조카들을 아끼고 사랑하던 마음을 이미 오래전에 잃고 복수와 증오의 화신이 된 기사는 그런 식으로밖에 생각하지 못한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마녀는 칼을 내리고 그에게서 등을 돌린다. 알브레히트는 절규한다. 돌아와서 자신을 죽이라고 소리친다. 전쟁을 계속하라는 외침이다. 어림없는 소리다. 힐데가르는 이 작품의 주인공이다. 알브레히트의 증오가 테리온에게 전염병처럼 옮겨간 걸 알고 일부러 그의 화살에 맞아주기까지 한 그녀가 이런 시시한 도발에 넘어갈 리 없다.
그녀는 알브레히트를 두고 가버린다. 전쟁이 끝난 줄도 모르고 혼자만의 전쟁을 치르는 중인 미친 기사가 불구덩이 속에서 괴로워하도록 내버려 둔 채.

"... 그것이 그녀가 그에게 행한 최고의 복수였다." 이런 뒷이야기는 필요하지 않다. 힐데가르에겐 복수할 마음이 조금도 없었으니까. 그녀가 원하는 건 오로지 전쟁을 끝내는 일이었으므로.
태양의 힘을 담은 그릇이던 시절, 그녀는 죽어도 죽여도 죽지 않는 몸으로 전쟁에 상처 입은 사람들의 무수한 증오를 받아냈다. 탑에서 떨어지고, 칼에 찔리고, 화살에 맞고, 화형대에서 불탔다. 그렇게라도 그녀는 온 나라를 뒤덮고 있는 전쟁의 잔해 - 증오의 굴레를 끊어내고 싶었다.
에르킨이 힐데가르를 부모의 원수로 여기며 원망을 쏟아낼 때 그녀는 자신의 결백을 호소면서도 한편으로는 인정한다. 그의 부모를 직접 죽이진 않았어도 자신은 북부인인 그의 원수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모든 건 잔혹한 우연이었다. 힐데가르는 태양의 힘을 탐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사람들을 구하고 싶었다. 전쟁터를 전전하며 성장한 소녀는 세상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도 배우지 못했다. 그녀가 아는 좋은 것이라곤 기사의 용기밖에 없었다. 그 용기를 발휘해서 끝까지 싸웠다. 도망치지 않고 싸웠다. 기사답게 싸웠다.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싸웠다.

모든 건 잔혹한 운명이었다. 평범한 기사인 테리온과 달리 힐데가르는 난세의 영웅이다. 영웅은 역사를 선택할 수 있다. 북부와 남부, 하나가 이기면 하나는 진다. 하나가 살면 하나는 죽는다.
사람들을 구하고 싶다. 하지만 모두를 구할 수는 없다. 힐데가르는 얼굴도 모르는 북부인을 선택할 수 없었다. 그녀의 어깨에는 그리운 고향민들의 운명과 친구 레나드의 안위가 걸려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남부의 편에 섰다. 전쟁을 끝낼 수 있는 존재는 '태양의 기사'뿐이라는 모르모데스 왕의 믿음에 부응했다. 자신이 구할 수 있는 사람들을 선택했다.

영웅은 역사를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에게 선택을 요구하다니. 그래놓고 고통은 알아서 감당하라니. 얼마나 잔인한가. 잔인함의 대가로 남부는 승리를 거뒀다. 고로 쓸모 있는 잔인함이었다고 왕국의 위정자들은 생각했을 것이다.
힐데가르는 잔인했던 선택이 남긴 상처를 받아들인다. 꼬마였던 자신이 왜 선택을 해야만 했는지에 대한 억울함은 가슴 깊숙이 밀어놓은 채. 영웅인 그녀는 묵묵히 짐을 짊어진다. 모두를 원망할 수 있지만 아무도 원망하지 않는다. 원망해 봤자 마음의 전쟁은 끝나지 않으니.

이 점이 알브레히트와 힐데가르의 근본적인 차이다. 조카들의 죽음에는 분명 알브레히트의 책임도 있었다. 비록 그에게 악의는 없었을지라도, 그 역시 용감한 기사였고 조카들도 그렇게 키우고 싶었을 뿐이라도. 아이들을 전쟁터로 몰아넣지 않을 기회가 있었다. 어린 소녀에 불과했던 태양의 기사를 자유롭게 풀어줄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벌어질 일은 이미 벌어졌다. 모든 책임은 태양의 마녀에게 있다고, 알브레히트는 생각한다. 그러니까 죗값을 치러야 할 사람은 그녀라고. 그녀를 불태우고 나면 모든 게 끝날 거라고.
그런 그에게 마녀가 묻는다.
"후회하고 있나? 알브레히트 와이드헨."

마녀는 역시 마녀다. 한 마디 질문으로 그의 마음을 갈가리 찢어놓는다. 그는 후회했어야 했다. 1%의 책임이라도 자신에게 있음을 통감하며 눈물을 흘렸어야 했다. 조카들을 위해 울었어야 했다. 눈물이 마를 때까지 운 다음 가족들을 위로했어야 했다. 살아 있는 두 아이, 테리온과 린디아를 돌봤어야 했다.
그는 그렇게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하지 않았다. 모든 걸 태양의 마녀 탓으로 돌리고 그녀를 상대로 고독한 전쟁을 계속했다. 자신의 삶이 폐허가 될 때까지. 테리온의 눈에서 피눈물이 쏟아지고 린디아의 목에서 비명이 새어 나올 때까지.

그러나 힐데가르는 싸울 생각이 없다. 태양의 마녀에게 화살을 날려 형제자매의 원수를 갚은 테리온도 더는 싸울 의지가 없다. 다행스럽게도 젊은이들은 늙은이들보다 현명하다. 마음의 전쟁은 이 아이들의 손에서 마무리될 것이다. 그럴 수 있다.

알브레히트는 적어도 한 가지는 옳게 봤다. 마녀를 화형대에 올리자 모든 게 끝났다. 불길은 태양의 기사를 태워 끝장냈다. 신의 힘은 불 속에서 사라졌다. 왕이 그녀에게 억지로 떠넘긴 '힐데가르'라는 신의 이름도 함께 불타 사라졌다.

신의 힘을 잃은 그녀는 인간일 뿐이다. 한 번뿐인 생을 사는, 하나의 목숨을 가진 인간. 이제 화살에 일부러 맞아 주는 일 따위는 할 수 없다. 하고 싶지도 않다.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그런 식으로 쓸 수는 없다. 그런 일은 신만이 할 수 있다. 사람은 할 수 없는 일이다.

인간인 그녀는 살고 싶다. 행복해지고 싶다. 신의 힘을 원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원한 적 없는 힘이었다. 기사의 용기를 원하지 않는다. 이 또한 원하지 않는 용기였다. 원치 않는 힘과 용기를 가지고서도 그녀는 충분히 용감히 싸웠다. 몸의 전쟁을 앞장서서 끝냈고 마음의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도 열심히 노력했다.
지상으로 내려온 태양의 신은 자신의 모든 걸 땔감으로 삼아 활활 타올랐다. 잿더미만 남을 때까지 타올랐다. 잿더미 위에서는 새싹이 움트는 법. 겨울이 오면 농부들은 한 해 농사의 부산물을 태우기 위해 들불을 지른다. 찌꺼기가 모두 불타면 이듬해 봄에 그 재를 영양분 삼아 씨앗을 심을 수 있다. 그러니 잿더미는 폐허가 아니다. 새로운 봄을 위한 밑거름이다.

잿더미 위에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 카야에게 남은 것은 평민의 용기. 이것은 에르킨의 용기다. 에르킨은 힘없는 평민이다. 원수를 죽이지도 용서하지도 못한 채 눈물을 흘리며 돌아서는 사람이다. 모욕을 당해도 이를 깨물고 자리를 피한다. "겁쟁이 자식." 테리온의 말대로다.
그러나 이 겁쟁이는 강자 앞에서 겁을 상실한다. 권력의 손에 끌려가 목숨을 위협받아도 물러서지 않는다. 칼날 앞에서도 고개를 치켜들고 옳은 말을 한다. 언제까지나 카야의 곁에 있겠다는 약속을 끝까지 지킨다. 하나뿐인 생명을 걸고 그렇게 한다.


2차대전이 끝난 뒤 나치 전범 재판을 치켜봤던 한 철학자는 '악이란 진부한 것'이라는 통찰을 내놨다. 에르킨이 선한 인물인 이유가 악에 대한 이 정의에 있다. 그는 평범하지만 진부하지 않다. 약하지만 나약하지 않다. 겁쟁이지만 권력에 겁먹지 않는다. 가난하지만 목숨이라는 유일한 재산으로 중요한 걸 지킨다. 매 순간 스스로 사고하고 스스로 판단한다. 그 판단의 결과로 상처 입어도 고통을 겸허히 받아들인다. 기사의 용기를 가진 힐데가르가 그랬듯이. 평민의 용기와 기사의 용기는 결국 같은 본질을 공유하기에.
모두가 힐데가르를 마녀라 말하며 불태운다면, 잿더미에 자신을 묻어서라도 그녀의 곁에 있겠다던 그가 보여준 건 평민의 용기였다. 기사의 용기밖에 알지 못한 채 전쟁의 고통을 홀로 견디던 그녀에게 평민의 용기를 알려준 사람. 함께 살아가자고 말해준 사람. 카야에게는 에르킨이 있다. 그래서 그녀는 알브레히트를 남겨두고 등을 돌려 떠난다.
복수하지 않는다. 증오하지 않는다. 미안해하지 않는다. 신의 힘을 몸에 담고 왕의 전쟁에 나섰던 것이 죄라면 그녀는 모든 죗값을 치렀다. 이제는 뒤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신들의 황혼을 뒤로한 채 달려간다. 인간의 시대를 향해 달려간다. 더 이상 불타는 그녀를 식혀주는 ‘시린 눈’이 아닌,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전하는 따뜻한 체온을 느끼면서.

(쓰다 보니까 레나드 이야기를 꼭 하고 싶어져서.. 4편이 나올 예정)
저무는 해, 시린 눈
북부를 불태운 전쟁 영웅, 태양의 마녀 '힐데가르'.마녀에게 부모를 잃은 시린 눈의 북부인, '에르킨'.정체와 복수심을 뒤로 숨긴 채 가까워지는 두 사람.신화와 전쟁, 가호와 저주, 사랑과 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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