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왓챠피디아 별점 : ★★★☆
3.7 정도
뮤지컬 원작의 교과서적 해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넉넉한 예산으로 착하게 잘 만든 할리우드 오락 영화. 원작에 침 뱉는 완성도의 뮤지컬 영화들이 꽤 있다는 걸 생각하면 이 정도가 어디냐 싶다(그런데 그 넉넉한 예산으로 한글 글꼴도 하나 구매하시지 자막은 그렇다 쳐도 도입부 나레이션의 폰트 상태가)⬅️ 어떤 분이 댓글로 <오즈의 마법사> 영화 도입부 오마주라고 알려주심. 씨네필이 아님을 이렇게 또 들키네ㅎ
두 주연 배우의 연기와 노래 실력은 준수하지만 한 명은 고전적인 캐릭터 해석과 연기를 보여주고 한 명은 현대적인 캐해와 연기를 보여주다 보니 자연스럽게 어우러지지 않고 서로 약간 겉도는 느낌이 든다. 투톱 주연물에서 종종 벌어지는 일
개인적으로 위키드 캐릭터들의 매력은 엇나감과 히스테리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서 아리아나 그란데의 어딘지 모르게 어설픈 글린다 연기가 꽤나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아이돌 뮤비를 수백번 보며 춤을 마스터한 찐팬 같은 캐릭터 분석과 연기랄까ㅋㅋ 정석적인 연기는 아니지만 캐릭터와 작품을 아주아주 사랑하는 사람만이 표현할 수 있는 섬세한 부분들이 있었다. 만약 그녀의 감정이 공허하고 깊이 없게 느껴졌다면 그란데가 글린다 해석을 제대로 한 거라고 생각한다. 글린다 캐릭터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얄팍함'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글린다의 가벼움이야말로 엘파바와 그녀를 이어주는 끈이라고 할 수 있다. 두 사람이 친구가 되는 짧은 장면에서 엘파바는 글린다에게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는다. '사실 나는 어머니의 죽음의 책임이 있어.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와 세상 사람들이 나를 미워하는 건 당연한 일이야.' 엘파바는 평생 이 비밀의 무거움에 짓눌려서 살아왔고, 이런 비극적인 사연이 그녀를 외롭고 어두운 사람으로 만들었다. 사람들은 초록색 피부 때문에 엘파바가 아싸가 되었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반쪽짜리 판단이다.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동생 네사 로즈가 장애를 가졌음에도 명랑하고 밝은 성격이라는 걸 생각하면 엘파바의 성격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준 건 껍데기(외면)라기보단 사연(내면)이었다. 물론 따져보면 그 사연조차 초록색 피부가 원인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엘파바의 이야기를 들은 글린다는 이렇게 말한다. '너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건 네 잘못이 아니라 어머니가 먹은 약초 때문이야' 당연한 말이지만 아무도 엘파바에게 해주지 않았던 '팩폭', 그러니까 표면적인 현상만으로 그녀의 비극을 일축하는 이 발언이 엘파바의 마음을 얼마나 가볍게 만들어 줬는지는 그녀 자신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글린다에게 마음을 연 엘파바는 더 이상 피부색을 신경 쓰지 않고 당당한 태도로 학교 생활을 계속한다. 주변 사람들이 초록색 피부만 힐끗거리면서 그녀의 내면에는 관심이 없었을 때, '너의 피부는 초록색이구나'하고 대놓고 지적했던 한 경박하고 피상적인 인물이 의도치 않게 엘파바의 마음을 깊이 위로해줬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어쩌면 소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는 식의 그런 아이러니가 선(good)의 본질-하나가 아닌 여러 본질- 이라는 게 원작자가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말일지도 모르겠다.
엘파바와 글린다는 인간 심리의 빛과 그림자이자, 희극과 비극이고,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자아의 양면이다. 상대가 각자 자신에게 없는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두 사람은 서로에게 강하게 이끌린다. 둘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은 단순히 두 인간이 주고받는 감정의 교류가 아니라 서로 반대되는 속성의 물질이나 자석의 양극이 만났을 때 벌어지는 현상처럼 자연스럽고 강렬하며 지극히 당연하다. 그래서 엘파바와 글린다의 관계가 우정이 아니라 사랑으로 해석되곤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아리아나 그란데는 무언가가 결여된 듯한, 퍼즐의 반쪽 같은 글린다 캐릭터를 잘 표현해 냈다고 생각한다.
한편 신시아 에리보의 엘파바 연기는 분명 흠 잡을 데 없이 훌륭한데도 위키드보단 오즈의 마법사에 더 어울리는 감정선이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엘파바라는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태생적인 고독과 그로 인한 날카로운 방어기제 - 이런 요인들이 그녀의 올곧고 순수한 마음과 대립하고 화합하며 만들어지는, 자신과 타인을 해치는 공격성이라는 현대적 심리의 표현을 이 배우의 연기에는 느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런 인상을 받은 것 같다. 물론 연출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이 배우의 엘파바는 소수자의 고독과 고뇌, 투지, 그리고 비극을 대변하며 갈등하는 인물이라기보다는 그냥 착하고 노래 잘하는 모범생 디즈니 공주 같았다. 기품 있고 우아한 연기긴 했음. 다른 영화에서 봤다면 감탄했을 것임
감정적으로 줄곧 억눌려 왔던 엘파바가 자신의 감정을 끌어모아 폭발시키는 The Wizard and I나 Defying Gravity 같은 솔로곡들의 경우 분명 노래 실력만 놓고 보면 훌륭한데도 엘파바라는 캐릭터의 내면에서 억압이 충분히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에 두 곡의 드라마틱한 감정선도 그다지 뚜렷하게 두각되지 않았다. ⬅️ 근데 이 부분은 내가 뮤지컬이 아니라 원작 소설을 먼저 봤기 때문에 이렇게 느끼는 걸 수도 있음 뮤지컬 속 엘파바는 원래 이렇게 착한 캐릭터일지도 모르지 뭐. 하지만 착하기만 한 엘파바가 부르는 No Good Deed 같은 넘버는 별로 기대가 안 된단 말이야..
+
특이사항: 번역이 끔찍하다
밥맛, 까이다, 더티어메이징(??), 내전공은 파퓰러 부전공도 파퓰러, 포피(스테이씨임?), 우리 미래는 언리미티드 그 외에도 당장 기억 안 나는 수많은 의역과 음차번역..특히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상징인 '양귀비 꽃'을 당당하게 음차번역 해버리는 번역가의 패기인지 아님 윗분들의 검열인지에 감탄하고 말았음. 아니 양귀비를 양귀비라 부르면 관객들이 당장 마약에 중독되기라도 하나? 양귀비가 그렇게 무서우면 꽃양귀비라는 좋은 대체어가 있는데ㅋㅋ
++
'good' 이라는 단어의 거의 모든 용례를 들어볼 수 있는 작품이 아닌가 싶다. 진짜 온갖 장면에 다 쓰이고 재미있는 표현이 많은데 우리말로는 잘 옮겨지지 않아서 아쉽
예고편이 나왔을 때 for good이라는 표현을 배급사에서 '선을 위해'라고 잘못 번역해서(아니..어케 그래요 쳇지피티라도 돌려봐요) 관객들한테 두들겨 맞은 일화가 있었는데 보면서 참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for good은 숙어로 '영원히'가 맞지만 한편으로는 영단어를 이용한 말장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위키드는 '선' 이라는 개념을 끊임없이 탐구하는 작품이다. 그러니까 '선을 위해'는 아예 근본 없는 오역이 아니었던 거다?!
+++
에메랄드 시티 연극에 나온 두 마녀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오리지널 배우인 크리스틴 체노워스와 이디나 멘젤이라고 한다! 다른 배우로 착각했는데 댓글로 알려주신 분 감사합니다.
++++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신시아 에리보가 디파잉 그래비티를 부른 무대를 우연히 봤는데 영화에서 들은 것보다 훨씬 좋았다. 단순한 우연일까, 아니면 이 배우는 위키드의 주인공 엘파바로 분하여 이 곡을 부르는 것보다 그녀 자신으로 이 곡을 부르는 걸 더 편안하게 여겼던 걸까. 문득 궁금해졌다.
위키드 : 네이버 검색
'위키드'의 네이버 검색 결과입니다.
m.searc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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