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웹툰 <저무는 해, 시린 눈>의 중/후반부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3. 마음의 전쟁을 끝내는 방법: 기사의 용기와 평민의 용기

 
테리온이 쏜 화살은 마녀에게 명중한다 - 사실 이 말은 상황을 설명하기에 충분한 문장이 아니다. 속사정은 이렇다. "마녀가 테리온의 화살 앞에 몸을 대줬다."


한때의 친구가 그녀의 정체를 알고 적으로 돌변하는 것. 힐데가르는 그런 일에 익숙하다. 8년 전 평원 대전투에서 형제자매를 잃었다고 테리온이 말했던 순간부터 그녀는 이 순간을 예상했을지 모른다. 한 번은 테리온의 화살에 맞아줘야 한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화살에 맞으면 죽을 만큼 아프지만, 그래도 죽지는 않는다. 죽지 않는 몸을 전쟁으로 상처받은 친구의 화살 앞에 내어주는 건 신의 힘을 가진 그녀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저무는 해, 시린 눈>의 배경은 전쟁이 끝난 왕국이다. 전쟁은 왕이 일으키고 귀족이 일으킨다. 사람들을 전쟁터로 끌어들이기 위해 왕과 귀족은 이념의 씨앗을 퍼트린다. 산 너머 이웃이 어느 날 도깨비의 얼굴을 한 악마로 변한다. 평범한 소녀가 소름 끼치는 마녀가 된다. 왕과 귀족이 퍼트려 심어놓은 증오의 이념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난다. 그 씨앗이 어디에서 온 건지는 누구도 묻지 않는다.

 

가스라이팅의 귀재, 그의 이름은 모르모데스


전쟁을 시작하는 건 왕, 전쟁을 끝내는 것도 왕이다. 억울하지만 세상 일이란 게 그렇다. 어느 날 왕은 종전을 선언한다.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에 자리 잡은 증오의 싹은 사라지지 않는다. 씨를 뿌린 사람들은 결과물을 거둬갈 생각이 없다. 오히려 그들은 그 증오에서 이익만을 취해간다. 그래서 평범한 사람들은 여전히 왕과 귀족이 적이라고 명명한 자들을 증오한다.

 

 
명분 없는 증오는 아니다. 전쟁으로 사람들은 가족을 잃고 친구를 잃고 일상을 잃었다. 명분이 충분한 증오는 전염성이 짙다. 그렇게 증오가 공기 중을 떠돈다. 증오가 증오를 낳고, 복수가 복수를 낳는다. 전쟁은 끝났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속에서는 전쟁이 계속된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렇기에 더욱 끈질긴 마음의 전쟁이 계속된다.

 

 
이쯤에서 다시 처음의 질문을 던진다. 전쟁이 끝난 땅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조금 더 나아가 보자. 몸의 전쟁은 끝났지만 마음의 전쟁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땅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남부는 기사들의 땅이다. 기사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물러서지 않고 싸울 용기’다. 전투를 앞두고 겁쟁이처럼 도망치지 않을 용기. 공동체를 위해 죽음을 각오할 용기. 다수의 평화를 위해 잔인함을 감내하는 소수가 될 용기.

 


 
그러나 전쟁이 끝난 땅에서 이 용기는 효력을 잃는다. 물론 전시가 아닌 때에도 사람들은 기사의 용기를 찬양한다. 많은 이들이 기사의 용기를 원한다. 하지만 만약 모두가 기사의 용기를 가지고 서로에게 적이 되어 싸운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전쟁이 다시 시작된다. 평화는 영원히 찾아오지 않는다.
 
 
전쟁이 끝난 땅에 필요한 용기는 맞서 싸울 용기가 아니다. 그 반대다.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는 ‘싸움에서 물러설 용기’가 필요하다. 적 앞에서 등을 돌려 피할 용기, 겁쟁이라고 손가락질당할 용기.

 

 
이것은 기사의 용기가 아니라 평민의 용기다. 역사에 남지 않는 용기다. 사람들이 알아주기는커녕 무시하고 비웃는 용기다.


<저무는 해, 시린 눈>의 두 주인공이 보여주는 용기가 바로 이것이다. 알브레히트와 테리온 와이드헨이 아닌 에르킨과 힐데가르(카야)가 이 작품의 주인공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남자 주인공이지만 가난하고 울보에 고아인 에르킨. 그런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남부의 용맹한 기사인 테리온은 있는 힘껏 싸움을 건다. 야만적인 북부인이 당연히 자신에게 맞설 거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에르킨은 조용히 등을 돌려 자리를 떠난다. 테리온은 그런 그를 겁쟁이라고 비웃지만 남은 거라곤 씁쓸한 뒷맛밖에 없다. 테리온이 만들어낸 작은 전쟁터에서 에르킨이 빠져나가 버렸기 때문이다. 이렇듯 마음의 전쟁은 몸의 전쟁과는 다르다. 한쪽에서 아무리 싸움을 걸어도 상대에게 싸울 의지가 없다면 마음의 전쟁은 벌어지지 않는다. 왕과 귀족의 전쟁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전쟁이기에 그렇다.

  

 
작품의 후반부에서 알브레히트와 힐데가르가 만났을 때도 같은 일이 벌어진다. 2부 46화에는 알브레히트가 조카들의 죽음을 자세하게 묘사하는 장면이 있다.
 


8년 전에 있었던 일인데도 그는 열띤 어투로 평원 대전투에서 조카들이 얼마나 처참하게 짓밟혀 죽었는지 이야기한다. 지나치게 생생하다. 마치 어제 일어난 일이기라도 한 양. 이 장면은 알브레히트의 마음이 여전히 그 전투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준다. 8년이라는 세월이 지나 군대는 이미 모두 철수했건만 그는 여전히 평원에서 혼자만의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그렇기에 알브레히트는 힐데가르를 끌어내리는 일에 자신의 전부를 건다. 그녀의 눈에서 처참한 눈물이 흘러내리는 모습을 볼 때까지 멈추지 않고 전진한다. 눈물을 목격한 그는 마침내 만족한다. 힐데가르를 화형대에 올려 불태울 때보다 더 큰 만족감을 그 순간 느꼈음이 분명하다. 그의 전쟁은 마음의 전쟁이기 때문이다.
 

여자를 울리고 좋아하는 하남자! 우우우우👎🏻


알브레히트는 마음의 전쟁에서 1승을 거뒀다. 그래서 화형대에서 풀려난 마녀의 칼에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그는 기꺼이 운명을 받아들인다. 내심으로는 그녀가 자신을 찔러주기를 바랐을 수도 있다. 자신이 죽으면 친인척 중 누군가가 복수의 굴레를 이어받아 마녀를 사냥해 줄 테니까. 그를 대신해 마음의 전쟁을 계속해줄 테니까. 조카들을 아끼고 사랑하던 마음을 이미 오래전에 잃고 복수와 증오의 화신이 된 기사는 그런 식으로밖에 생각하지 못한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 마녀는 칼을 내리고 그에게서 등을 돌린다. 알브레히트는 절규한다. 돌아와서 자신을 죽이라고 소리친다. 전쟁을 계속하라는 외침이다. 어림없는 소리다. 힐데가르는 이 작품의 주인공이다. 알브레히트의 증오가 테리온에게 전염병처럼 옮겨간 걸 알고 일부러 그의 화살에 맞아주기까지 한 그녀가 이런 시시한 도발에 넘어갈 리 없다.
 
 
그녀는 알브레히트를 두고 가버린다. 전쟁이 끝난 줄도 모르고 혼자만의 전쟁을 치르는 중인 미친 기사가 불구덩이 속에서 괴로워하도록 내버려 둔 채.

 


"... 그것이 그녀가 그에게 행한 최고의 복수였다." 이런 뒷이야기는 필요하지 않다. 힐데가르에겐 복수할 마음이 조금도 없었으니까. 그녀가 원하는 건 오로지 전쟁을 끝내는 일이었으므로.

 
태양의 힘을 담은 그릇이던 시절, 그녀는 죽어도 죽여도 죽지 않는 몸으로 전쟁에 상처 입은 사람들의 무수한 증오를 받아냈다. 탑에서 떨어지고, 칼에 찔리고, 화살에 맞고, 화형대에서 불탔다. 그렇게라도 그녀는 온 나라를 뒤덮고 있는 전쟁의 잔해 - 증오의 굴레를 끊어내고 싶었다.
 
 
에르킨이 힐데가르를 부모의 원수로 여기며 원망을 쏟아낼 때 그녀는 자신의 결백을 호소면서도 한편으로는 인정한다. 그의 부모를 직접 죽이진 않았어도 자신은 북부인인 그의 원수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대문자 T여자를 사랑하게 된 대문자 F남자

 
모든 건 잔혹한 우연이었다. 힐데가르는 태양의 힘을 탐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사람들을 구하고 싶었다. 전쟁터를 전전하며 성장한 소녀는 세상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도 배우지 못했다. 그녀가 아는 좋은 것이라곤 기사의 용기밖에 없었다. 그 용기를 발휘해서 끝까지 싸웠다. 도망치지 않고 싸웠다. 기사답게 싸웠다.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싸웠다.

 

모든 건 잔혹한 운명이었다. 평범한 기사인 테리온과 달리 힐데가르는 난세의 영웅이다. 영웅은 역사를 선택할 수 있다. 북부와 남부, 하나가 이기면 하나는 진다. 하나가 살면 하나는 죽는다.


사람들을 구하고 싶다. 하지만 모두를 구할 수는 없다. 힐데가르는 얼굴도 모르는 북부인을 선택할 수 없었다. 그녀의 어깨에는 그리운 고향민들의 운명과 친구 레나드의 안위가 걸려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남부의 편에 섰다. 전쟁을 끝낼 수 있는 존재는 '태양의 기사'뿐이라는 모르모데스 왕의 믿음에 부응했다. 자신이 구할 수 있는 사람들을 선택했다.

 
영웅은 역사를 선택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에게 선택을 요구하다니. 그래놓고 고통은 알아서 감당하라니. 얼마나 잔인한가. 잔인함의 대가로 남부는 승리를 거뒀다. 고로 쓸모 있는 잔인함이었다고 왕국의 위정자들은 생각했을 것이다.


힐데가르는 잔인했던 선택이 남긴 상처를 받아들인다. 꼬마였던 자신이 왜 선택을 해야만 했는지에 대한 억울함은 가슴 깊숙이 밀어놓은 채. 영웅인 그녀는 묵묵히 짐을 짊어진다. 모두를 원망할 수 있지만 아무도 원망하지 않는다. 원망해 봤자 마음의 전쟁은 끝나지 않으니.


이 점이 알브레히트와 힐데가르의 근본적인 차이다. 조카들의 죽음에는 분명 알브레히트의 책임도 있었다. 비록 그에게 악의는 없었을지라도, 그 역시 용감한 기사였고 조카들도 그렇게 키우고 싶었을 뿐이라도. 아이들을 전쟁터로 몰아넣지 않을 기회가 있었다. 어린 소녀에 불과했던 태양의 기사를 자유롭게 풀어줄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런 갓캐들을 만들고....죽이는...작가란 무엇인가


벌어질 일은 이미 벌어졌다. 모든 책임은 태양의 마녀에게 있다고, 알브레히트는 생각한다. 그러니까 죗값을 치러야 할 사람은 그녀라고. 그녀를 불태우고 나면 모든 게 끝날 거라고.

 
그런 그에게 마녀가 묻는다.

"
후회하고 있나? 알브레히트 와이드헨."
 

 
마녀는 역시 마녀다. 한 마디 질문으로 그의 마음을 갈가리 찢어놓는다. 그는 후회했어야 했다. 1%의 책임이라도 자신에게 있음을 통감하며 눈물을 흘렸어야 했다. 조카들을 위해 울었어야 했다. 눈물이 마를 때까지 운 다음 가족들을 위로했어야 했다. 살아 있는 두 아이, 테리온과 린디아를 돌봤어야 했다.

 
그는 그렇게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하지 않았다. 모든 걸 태양의 마녀 탓으로 돌리고 그녀를 상대로 고독한 전쟁을 계속했다. 자신의 삶이 폐허가 될 때까지. 테리온의 눈에서 피눈물이 쏟아지고 린디아의 목에서 비명이 새어 나올 때까지.

 

 
그러나 힐데가르는 싸울 생각이 없다. 태양의 마녀에게 화살을 날려 형제자매의 원수를 갚은 테리온도 더는 싸울 의지가 없다. 다행스럽게도 젊은이들은 늙은이들보다 현명하다. 마음의 전쟁은 이 아이들의 손에서 마무리될 것이다. 그럴 수 있다.

 

알브레히트는 적어도 한 가지는 옳게 봤다. 마녀를 화형대에 올리자 모든 게 끝났다. 불길은 태양의 기사를 태워 끝장냈다. 신의 힘은 불 속에서 사라졌다. 왕이 그녀에게 억지로 떠넘긴 '힐데가르'라는 신의 이름도 함께 불타 사라졌다.

 


신의 힘을 잃은 그녀는 인간일 뿐이다. 한 번뿐인 생을 사는, 하나의 목숨을 가진 인간. 이제 화살에 일부러 맞아 주는 일 따위는 할 수 없다. 하고 싶지도 않다.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그런 식으로 쓸 수는 없다. 그런 일은 신만이 할 수 있다. 사람은 할 수 없는 일이다.

 

 

인간인 그녀는 살고 싶다. 행복해지고 싶다. 신의 힘을 원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원한 적 없는 힘이었다. 기사의 용기를 원하지 않는다. 이 또한 원하지 않는 용기였다. 원치 않는 힘과 용기를 가지고서도 그녀는 충분히 용감히 싸웠다. 몸의 전쟁을 앞장서서 끝냈고 마음의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도 열심히 노력했다.


지상으로 내려온 태양의 신은 자신의 모든 걸 땔감으로 삼아 활활 타올랐다. 잿더미만 남을 때까지 타올랐다. 잿더미 위에서는 새싹이 움트는 법. 겨울이 오면 농부들은 한 해 농사의 부산물을 태우기 위해 들불을 지른다. 찌꺼기가 모두 불타면 이듬해 봄에 그 재를 영양분 삼아 씨앗을 심을 수 있다. 그러니 잿더미는 폐허가 아니다. 새로운 봄을 위한 밑거름이다.

 

잿더미 위에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 카야에게 남은 것은 평민의 용기. 이것은 에르킨의 용기다. 에르킨은 힘없는 평민이다. 원수를 죽이지도 용서하지도 못한 채 눈물을 흘리며 돌아서는 사람이다. 모욕을 당해도 이를 깨물고 자리를 피한다. "겁쟁이 자식." 테리온의 말대로다.


그러나 이 겁쟁이는 강자 앞에서 겁을 상실한다. 권력의 손에 끌려가 목숨을 위협받아도 물러서지 않는다. 칼날 앞에서도 고개를 치켜들고 옳은 말을 한다. 언제까지나 카야의 곁에 있겠다는 약속을 끝까지 지킨다. 하나뿐인 생명을 걸고 그렇게 한다.

 

2차대전이 끝난 뒤 나치 전범 재판을 치켜봤던 한 철학자는 '악이란 진부한 것'이라는 통찰을 내놨다. 에르킨이 선한 인물인 이유가 악에 대한 이 정의에 있다. 그는 평범하지만 진부하지 않다. 약하지만 나약하지 않다. 겁쟁이지만 권력에 겁먹지 않는다. 가난하지만 목숨이라는 유일한 재산으로 중요한 걸 지킨다. 매 순간 스스로 사고하고 스스로 판단한다. 그 판단의 결과로 상처 입어도 고통을 겸허히 받아들인다. 기사의 용기를 가진 힐데가르가 그랬듯이. 평민의 용기와 기사의 용기는 결국 같은 본질을 공유하기에.


모두가 힐데가르를 마녀라 말하며 불태운다면, 잿더미에 자신을 묻어서라도 그녀의 곁에 있겠다던 그가 보여준 건 평민의 용기였다. 기사의 용기밖에 알지 못한 채 전쟁의 고통을 홀로 견디던 그녀에게 평민의 용기를 알려준 사람. 함께 살아가자고 말해준 사람. 카야에게는 에르킨이 있다. 그래서 그녀는 알브레히트를 남겨두고 등을 돌려 떠난다.


복수하지 않는다. 증오하지 않는다. 미안해하지 않는다. 신의 힘을 몸에 담고 왕의 전쟁에 나섰던 것이 죄라면 그녀는 모든 죗값을 치렀다. 이제는 뒤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신들의 황혼 뒤로한 채 달려간다. 인간의 시대를 향해 달려간다. 더 이상 불타는 그녀를 식혀주는 ‘시린 눈’이 아닌,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전하는 따뜻한 체온을 느끼면서.

이 후기를 쓰며 2025년이 된 이래로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예술은 정말 좋은 거야



(쓰다 보니까 레나드 이야기를 꼭 하고 싶어져서.. 4편이 나올 예정)

저무는 해, 시린 눈

북부를 불태운 전쟁 영웅, 태양의 마녀 '힐데가르'.마녀에게 부모를 잃은 시린 눈의 북부인, '에르킨'.정체와 복수심을 뒤로 숨긴 채 가까워지는 두 사람.신화와 전쟁, 가호와 저주, 사랑과 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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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웹툰 <저무는 해, 시린 눈>의 중/후반부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1. 강함과 약함, 파괴와 돌봄 - 힐데가르와 에르킨

 

<저무는 해, 시린 눈>의 남자주인공 에르킨. 그는 로맨스 장르에서 전통적으로 여자 주인공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속성을 가진 인물이다. 치유의 힘과 온화하고 다정한 성품, 무력보다는 지력으로 승부하는 캐릭터다.

 

"그래도 사람은 착혀~"의 대명사

 
네이버의 유명 로판 작품인 <마른 가지에 바람처럼>의 캐릭터들과 비교하면 성별이 반전된 에르킨이라는 인물의 특징은 더욱 두드러진다. <마른 가지>에서 남자 주인공은 영지를 가진 성주이자 기사이고 여자 주인공은 치유의 능력을 가진 평민이다.

 

그나마 덜 오글거리는 표지로 가져옴

 
반면 <저무는 해, 시린 눈>에서는 남자 주인공이 치유의 능력을 가진 고아이자 평민이고, 여자 주인공은 강력한 힘을 가진 기사이자 성주다. 이처럼 에르킨은 여성향 로맨스 남자 주인공의 기본 소양인 '재력, 무력, 권력'의 3요소 중 어느 것도 가지지 않은 가난한 캐릭터다.
 

또한 에르킨은 작중에서 얼음과 눈의 땅인 '북부' 출신이지만 로판 장르의 주요 클리셰인 '북부 대공' 캐릭터와는 거리가 멀다. 북부 대공은 일반적으로 출신에 걸맞게 차갑고 무감한 존재로 그려진다. 그러나 에르킨은 작중에서 가장 따뜻하고 온화한 성품을 가진 인물이다. 여타 북부 대공들처럼 부유하지도 않고 귀족도 아니다.

 

일반적인 북부대공남주 x 햇살여주 이미지(구글에서 찾은 표지일 뿐 작품과는 아무 상관 없습니다)

 
여기까지 살펴봤을 때 그는 요즘 여자들의 기호에 잘 맞는 성별 반전 로판 남자주인공 캐릭터에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에르킨이라는 인물이 보기 좋은 다정함만을 모아 놓은 양산형 로판식 #다정남 #대형견남 #순정남 캐릭터에 불과했다면 이 작품으로 이런 긴 후기를 쓰지 않았을 것이다.

 
소설가는 단순한 스토리텔러가 아니라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가치관을 드러내는 '사상가'라고 여성학자 정희진은 말한 바 있다. 사실 나는 이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막되먹은 사상을 가지고 뛰어난 작품을 썼던 작가들이 있다. 당장 생각나는 사람들만 해도 마가렛 미첼이나 키플링 등 여럿이다. 하나는 노예제 옹호론자였고 하나는 제국주의자였지만 그렇다고 두 사람이 창조하고 기록한 이야기의 가치가 훼손되지는 않는다. 그들이 대단한 이야기꾼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레트 버틀러는 스칼렛 오하라에게 신들의 황혼을 언급하지만 뇌가 청순한 스칼렛은 무슨 소린지 알아듣지 못한다. 신들의 황혼에 대해서는 다음 편 참고

 

작가로서의 재능과 사상가로서의 재능은 어느 정도 분리되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훌륭한 이야기꾼은 자신의 가치관을 어떤 식으로든 작품 속에서 드러낼 수밖에 없다고도 생각한다. 차가운 땅에서 온 푸른 눈의 다정한 청년 에르킨이라는 인물을 통해 전쟁이 끝난 땅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아주 중요한 질문을 독자들에게 던지고 있는 이 작품처럼 말이다.

 

 

<저무는 해, 시린 눈>의 주요 배경은 전쟁이 끝난 왕국이다. 오랜 전쟁을 남부의 승리로 끝낸 주역은 이 작품의 여자 주인공이자 '저무는 해'가 상징하는 인물인 힐데가르다. 불로불사의 능력과 태양의 힘을 지닌 그녀는 이 작품에서 '강함'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힘에는 중요한 맹점이 있다. 태양의 힘은 부수고 상처 입힐 수 있을 뿐 돌보거나 치유하지 못한다. 그래서 전쟁이 끝난 왕국에서 그녀는 시한폭탄 취급을 받는다. 파괴하는 행위에만 특화된 그녀의 힘을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태양의 마녀 덕분에 전쟁은 끝났다. 남부는 승전했다. 북부는 패전했다. 남부와 북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전쟁은 왕국의 모든 사람들에게 상처를 남겼다. <저무는 해, 시린 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직, 간접적으로 전쟁을 경험했으며 주요 인물들은 모두 크고 작은 전쟁 PTSD를 가지고 있다.

 

 

힐데가르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어린 시절 우연한 사건으로 태양의 힘을 얻었다. 힘 때문에 고향 땅에서 납치당해 왕국의 무기로 잔인하게 이용되었다.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 수많은 사람의 죽음을 지켜봤다. 그런 그녀는 남은 삶에 아무런 기대와 희망을 품지 않은 무감한 상태로 오지 않는 죽음을 기다린다.

 

 

죽음의 고통은 날마다 찾아온다. 그러나 그녀는 죽을 수 없다. 매일 저녁 서쪽으로 지지만 아침에는 다시 동쪽 하늘로 떠오르는 것이 태양의 속성이니. 밤이 오면 죽음의 고통에 몸부림치지만, 동이 트면 다시 타올라야만 한다. 그것이 인간의 몸으로 태양의 힘을 담게 된 그녀의 운명이기 때문에.

 
그녀는 이 고통이 저주라고 생각한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전쟁터에서 죄 없는 사람들을 죽게 만든 자신에게 내려진 형벌이라고 여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힐데가르가 은거하는 '이름 없는 성'은 원래 수도원이었다고 한다. 작중에서 '이름 없는 성'은 여러 번 강조된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뛰어난 작가들은 이름 하나 허투루 짓지 않는다. 이름 없는 성에는 왜 이름이 없을까. 왜 그 성에 이름이 없다는 것이 그토록 자주 나오는 걸까.

 

이름 없는 성 전경(이래 봬도 배산임수)

 

힐데가르에게는 마지막 전투까지 함께 싸웠던 '이네스'라는 이름의 부관이 있었다. 평민 출신인 이네스의 꿈은 전쟁에서 공을 세워 자신의 이름으로 된 성을 받는 것이었다. 그러나 힐데가르를 따르면서 그 꿈은 전쟁이 끝나면 힐데가르의 성에서 함께 남을 생을 보내고 싶다는 소망으로 바뀐다.

 

이네스 경...내 최애...가슴이 박박 찢어져요

 

하지만 전쟁이 끝난 지금 힐데가르의 곁에는 이네스가 없다. 마지막 전투에서 그녀는 죽었다. 힐데가르와 함께 싸우다가 먼저 세상을 떠난 수많은 동료 기사들처럼 이네스 역시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오는 모습을 지켜보지 못했다.

 

 
 

이름 없는 성은 이네스의 성이다. 평화를 되찾기 위해 힐데가르가 죽여야 했던 사람들의 성이다. 그녀를 위해 죽어야 했던 사람들의 성이다. 이 성에 스스로를 가둔 힐데가르는 날마다 찾아오는 죽음의 고통을 홀로 감내하면서 먼저 떠난 사람들을 추모해 왔다. 이것이 그녀가 가진 전쟁 PTSD다.

 

 

북부인인 에르킨은 그런 힐데가르를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는 '돌봄'과 '나눔'이라는 가치를 평생에 걸쳐 실천하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처음에 힐데가르는 그가 바보 같다고 생각한다.

 

 

에르킨의 다정함을 힐데가르는 이해하지 못한다. 힐데가르가 죽을 게 뻔한 말(🐎)을 왜 굳이 살려야 하냐고 질문하자 에르킨은 그 말이 소년에게 소중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힐데가르가 내 것을 왜 타인에게 나누는지 이해하지 못하자 에르킨은 그들이 자신에게 소중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힐데가르는 강하고 에르킨은 약하다. 힐데가르는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기사지만 에르킨은 싸움도, 수영도 못하는 평범한 서민일 뿐이다. 힐데가르는 웬만해선 눈물을 흘리지 않지만 에르킨은 작품에서 수없이 눈물을 흘린다. 눈이 퉁퉁 붓도록 울고 또 운다. 독자들이 기대하는 멋진 로판 남주와는 거리가 먼 모습이다. 그래서인지 에르킨은 남주치고는 압도적으로 인기가 없다(캐릭터 인기투표 결과).

 

작가님 솔직히 말해봐요 얘 울리는 거 좋아하시죠

 

아무리 저물어도 다시 떠오르는 뜨거운 태양인 힐데가르와, 한 번 녹으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차가운 눈인 에르킨. 강력한 태양과 연약한 눈송이. 이것이 둘의 관계다. 겉으로는 그렇다.

 

바로 이 구도처럼

 

작품의 2부에서 에르킨은 마침내 부모의 죽음에 얽힌 사연을 알게 된다. 누구도 원망할 수 없는, 너무나도 잔인하고 끔찍한 과거 앞에서 그는 눈앞의 원수에게 칼을 꽂을지 고민한다. 그러나 끝내 원수를 죽이지 못한다. 대신 두 눈을 들어 진실을 마주한다. 당장 칼로 찔러 죽이고 싶은 원수 역시 실은 끔찍한 전쟁의 죄 없는 피해자이며 희생자라는 사실을.

 
"세상이 너무 끔찍해. 너무 끔찍해서, 어떻게 살아야 될지 모르겠어. 이런 세상에서 살아갈 자신이 없어. 난 끝까지 칼을 놓지도 못했어요. 속 시원하게 복수하지도, 완전히 용서하지도 못하겠어! 내가 너무 나약해요!"

 

작가님...노벨상 드려야 한다...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에르킨은 자신의 약함을 비관한다. 하지만 힐데가르는 이제 에르킨이 약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처음에 에르킨을 보며 '바보 같다'라고 생각하던 그녀는 어느 순간부터 그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었다. 죽일 수 있지만 굳이 죽이지 않는다. 나와 아무런 상관없는 사람이지만 내 것을 나눠준다. 그녀는 에르킨을 사랑하면서 점점 그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힐데가르는 에르킨에게 이렇게 말한다. 흔들리고 고통스러워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선을 향해 가는 네가 진정으로 강한 사람이라고. 그녀는 이렇게 덧붙인다.

 
"나는 그러지 못했으니까."

 

 

이 순간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하던 강함과 약함의 경계는 부서지고 흐트러져 뒤섞인다. 힐데가르는 강하고 에르킨은 약하다. 힐데가르는 전쟁을 끝내기 위해 선두에 서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우리 모두는 그녀가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걸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과거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에르킨은 그런 그녀를 집으로 데려와 돌보고 치료했다. 그녀는 적국의 장수였다. 이 돌봄으로 북부의 운명이 바뀌었다. 에르킨의 운명도 달라졌다. 무서운 일이다. 선의로 행한 일이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는 결과로 돌아오다니. 그러나 작중에서 에르킨이 과거 일을 후회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힐데가르가 적국의 장수라는 사실을 어린 에르킨이 알았어도 그는 그녀를 내버려 두지 않았을 것이다. 이 사실을 힐데가르가 알고, 에르킨이 알고, 독자도 안다. 에르킨은 그런 사람이니까. 돌보고 나누고 돕는 사람이니까. 힐데가르가 그를 사랑하게 된 건 그래서니까.

 

 

그녀가 더 이상 그를 약하다고 여기지 않게 된 건 에르킨의 가치관인 ‘돌봄’과 '나눔'을 인정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알지 못했던 세상의 따뜻함을 그에게서 배웠기 때문이다.

 

 

적장을 사랑하게 된 남자. 신분을 숨긴 여자. 파괴의 힘을 가진 여자, 치유의 힘을 가진 남자. 이처럼 <저무는 해, 시린 눈>은 로맨스 장르의 오랜 클리셰를 때로는 활용하고 때로는 비틀어 뒤집으며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녀는 전쟁터에서 많은 사람을 죽여 승리를 이뤄냈다. 사람들은 그녀가 영웅이라고 칭송했다. 영웅인 그녀는 강한 사람이었을까.
 

 

그는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고아였다. 전투에 나가본 적도 없고 싸울 줄도 몰랐다. 적국 사람들의 비아냥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원수 앞에서도 눈물을 흘리며 돌아섰다. 그는 약한 사람이었을까.

 

 

파괴의 힘은 강하고 돌봄의 힘은 약한 것일까. 파괴의 힘만을 추구하다 보면 모두의 인생이 전쟁터가 되어버리고 말 텐데. 그렇기에 힐데가르가 에르킨을 사랑하며 필요로 하는 것인데.
 

물론 에르킨도 힐데가르를 필요로 한다. 그녀에게는 그에게 없는 힘이 있다. 태양의 힘을 말함이 아니다. 인간 힐데가르가 어린 시절부터 전쟁터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책임지며 경험으로 터득한 힘이다.
 

전쟁터에서 그녀는 한 번 머뭇거렸다. 단 한 번일 뿐이었지만 그로 인해 많은 걸 잃었다. 돌로 얼굴을 찧으며 처절하게 후회했다. 이날 이후로 그녀는 망설이지 않는다. 주저하지 않는다. '망설임은 죽음을 부르며, 때로는 단호함이 자비가 될 때도 있는 법'이라는 배움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 법은 전쟁터의 법이며 기사의 법이다. 힐데가르의 결단력은 기사로 살아본 적 없는 에르킨이 가지지 못한 자질이다. 자신에게 결여된 힘을 가지고 있는 상대에게 그는 끌릴 수밖에 없다.

 
태양은 열기를 식혀줄 냉기를 원한다. 힐데가르에게 에르킨이 필요하다는 건 작품을 보는 모두가 안다. 그러나 눈에게도 냉기를 가시게 할 따뜻한 태양의 열기가 필요하다. 비록 그 열기가 눈을 녹여 사라지게 할지라도.
 

작가님..에르킨 죽이진 않으실 거죠? 에이 설마

 

저무는 해와 차가운 눈의 만남은 필연적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입힌다. 그러나 전쟁은 모든 인간에게 상처를 주는 끔찍한 사건이다. 살고 싶다면 상처를 딛고 나아가야 한다.

 

2부는 진짜로 정병 안 오게 이 꽉 물고 봐야 함. 과장이 아니라 2부 30화 보고 밤새 잠을 못 이뤘음

 

전쟁이 끝난 땅에서 눈은 녹고 태양은 식는다. 남은 것은 언뜻 폐허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작품의 뼈대를 이루는 신화는 예고하고 있다. 태양과 눈을 상징하는 두 사람이 만나서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사랑하게 되었을 때,

 
“그 덕에 땅에는 온기가 돌기 시작하고,
설산은 녹아 강이 되며-
그것이 지상의 비옥한 첫 봄이 되었다.”

 

현실에도 봄이 왔으면 좋겠다!! 언제 오냐 대체!!

 

지상에는 비로소 평화가 찾아올 것임을.

 

2. 달리는 기차에 중립은 없다 - 테리온 와이드헨과 선택의 딜레마

 

 

알브레히트 와이드헨. 남부 왕국의 기사단장인 그는 8년 전 평원 대전투에서 사랑하는 세 조카를 잃었다. 부대를 지휘하는 태양의 기사가 약속된 시간에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조카들은 오지 않는 후발대를 기다리며 선두에서 싸우다가 영문도 모른 채 찢기고 밟혀 죽었다. 소중한 친구이자 가족인 그의 제수는 아이들을 한꺼번에 잃은 후 미쳐버리고 말았다.

 

 
알브레히트는 전쟁이 끝나기만을 기다린다. 마침내 평화가 찾아오자 그는 이름 없는 성에 자신의 수족인 조카 테리온을 보낸다. ‘태양의 기사’의 정체를 알아내고 그녀를 마녀로 만들기 위해서. 마녀 사냥을 시작하기 위해서.

 
 

테리온 와이드헨은 남부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의 성인 '와이드헨'은 예로부터 왕가를 보필해 온 기사 가문이다. 왕의 최측근이지만 왕위를 탐내지는 않는, 권력을 지키는 감시견과도 같은 충직한 기사.

 

 

그에게는 원래 세 명의 손위 형제자매가 있었다. 나이 차가 큰 두 형과 누나는 모두 훌륭한 기사였기에 그에게는 별다른 의무가 주어지지 않았다. 어린 테리온은 뒤뜰에서 꽃과 새를 관찰하며 그림을 그리는 조용하고 섬세한 소년으로 자라났다.

 

금손 테리온
테리온은 확신의 infp라고 생각합니다. 주변 잉뿌삐들하고 성격이 똑같음


그러나 전쟁이 모든 걸 바꿔놓았다. 가문의 기둥이었던 두 형과 누이는 8년 전 평원 대전투에서 한꺼번에 전사했다. 하루아침에 장남이 된 어린 테리온은 형제들처럼 기사가 되어 북부인을 모두 처단하고 가족을 지키겠다고 결심한다. 그림을 그리던 관찰 실력으로 검술을 익힌다.

 

애들을 무슨 와랄라 갓기천사처럼 그려놔서 더 가슴이 아파

 

하지만 그가 기사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전쟁이 끝나버린다. 사라졌다 돌아온 태양의 기사가 압도적인 활약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어머니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멋지게 갑옷을 입고 귀향했지만 미쳐버린 어머니는 아들을 알아보지 못한다.

 

 

스무 살 테리온은 막막한 좌절감과 무력감을 가슴에 품고 '이름 없는 성'에 왔다. 한 번도 전투에 참여하지 못했기에 북부인들을 만나본 적조차 없는 그의 눈앞에 에르킨이 나타난다. 테리온은 혼란스럽다. 평생 북부인을 적으로 여겨 왔건만, 눈앞의 에르킨은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악마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테리온이 상상으로 그린 북부인의 모습

 

작품이 진행되며 테리온은 끝없이 고뇌하고 흔들린다. 자신이 충성하는 숙부의 편에 서야 할까. 자신을 인간적으로 대우해 준 힐데가르의 편에 서야 할까. 힐데가르는 그의 원수다. 그러나 누이와 형제들을 전쟁에 내보낸 건 숙부를 비롯한 가족들이 아니었던가. 전쟁에 나간 이상 그들은 어떤 식으로든 죽을 수 있었다. 힐데가르에게 책임을 무는 게 옳을까.

 

 

뒤뜰에서 그림을 그리던 소년은 모든 것을 신중히 관찰하며 실은 이미 진실에 도달했다. 숙부는 사적인 복수심으로 명분 없는 마녀 사냥을 하고 있다. 태양의 기사는 잔인한 전쟁귀가 아니라 타의로 전쟁에 투입된 소녀일 뿐이라는 것을 그는 이미 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진실이 쉽게 보인다. 그러나 그 진실을 가지고 선택을 하는 건 여전히 어렵다.

 
테리온의 곁에는 ‘선택’이라는 주제가 항상 떠돈다. 테리온의 주변 사람들은 입을 모아 언젠가는 너도 선택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힐데가르도, 힐데가르의 하녀인 헤이시도, 알브레히트의 심복인 가레인도 그렇게 말한다. 다들 무언가를 선택하며 사는 거라고. 너도 다르지 않다고.
 

 

테리온은 복잡하고 입체적인 인물이다. 비현실적인 힘을 가진 힐데가르나 극적인 다정함을 가진 에르킨과는 달리 그는 이 작품에 등장하는 누구보다도 현실의 우리를 닮았다. 우물쭈물하며 망설이고, 너무 많이 고민한다. 큰 힘과 권력을 가진 인물에게 속수무책으로 휘둘리며, 책임 앞에서 겁쟁이처럼 도망친다. 그리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선택을 유보한다. 마치 우리들처럼.

 

 

‘정치적 중립’이라는 말이 가진 낭만적이고 달콤한 어감이 있다. 한국 사회에서 정치적으로 어느 한쪽에 서는 건 조심스럽고 불편한 일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어느 쪽도 편들지 않는 중립적인 사람이라는 걸 자랑스럽게 내세운다. 한국 사회가 독재냐 민주주의냐의 기로에 서 있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도 이런 태도를 유지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선택하지 않겠다는 선언조차도 선택의 일부라는 사실을 잊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출처: https://n.news.naver.com/article/047/0002461048
 

한 철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 같은 건 없다고. 작중 테리온은 ‘나는 아직 선택하지 않은 거야’라고 중얼거리며 어영부영 숙부의 마녀 사냥에 동참한다.


그러나 그의 의지와는 별개로 선택은 이미 이루어졌다. 테리온은 전설 속 기사도, 위대한 영웅도 아닌 평범한 청년이기 때문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역사를 선택하지 못한다. 그들은 역사에 연루된다. 역사적 사건은 그들의 의지와 관계없이 일어난다. 평범한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건 '어떤 사건에 개입할지'가 아니라 '사건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할지' 뿐이다. 오직 그뿐이다.


테리온은 운 나쁘게도 마녀 사냥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연루되고 말았다. 스무 살. 축제에서 신나게 춤을 추며 가슴 떨리는 연애를 시작할 나이. 원하는 꿈을 좇으며 희망찬 앞날을 그릴 나이. 마녀 사냥이 시작됐다. 발을 뺄 수는 없다. 가문의 앞날이 달려 있다.


기차는 달려간다. 그 끝이 아득한 절벽인지 안전한 역인지는 알 수 없다. 테리온은 기차가 싫다. 그는 걷고 싶다. 그러나 기차는 이미 역을 떠났다. 기차가 싫다고 뛰어내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간혹 그런 이들이 나타난다. 영웅이거나 미친놈이거나. 하지만 테리온은 평범한 사람이다. 내키지 않지만 기차에 계속 타있는다.

 

 
그의 눈앞에 마녀가 나타난다. 양자택일의 순간이 와버렸다. 화살을 쏠 것이냐 말 것이냐. 사실 답은 이미 내려진 지 오래다. '마음은 내키지 않지만 숙부의 결정을 따르겠다'는 입장이 테리온의 선택이었다. 그래서 그는 차갑게 식은 눈으로 힐데가르를 향해 화살을 쏜다.


화살을 쏘는 테리온의 뒤에는 가문과 숙부의 그림자가 있다.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라'는 힐데가르의 조언을 그는 결국 받아들이지 못한 걸까.

 

꽁꽁 얼어붙은 저해시눈 위로 테리온이 걸어갑니다🐈

 

(..쓰다 보니 징하게 길고 유료분 내용도 포함돼서 다음 편으로 넘어가기로 함)

저무는 해, 시린 눈

북부를 불태운 전쟁 영웅, 태양의 마녀 '힐데가르'.마녀에게 부모를 잃은 시린 눈의 북부인, '에르킨'.정체와 복수심을 뒤로 숨긴 채 가까워지는 두 사람.신화와 전쟁, 가호와 저주, 사랑과 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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