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왓챠피디아 별점 : ★★★★★
테니스공에 자신만의 의지가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한 편의 테이스 명경기와도 같은 이 영화는 두 남자와 한 여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우정과 경쟁, 복잡한 사랑을 다루고 있다. 여러모로 관전 포인트와 해석할 여지가 많은 영화이지만 몇 가지 인상 깊었던 것들만 적어보려고 한다.
1. 두 남자의 관계
타시를 처음 본 날 패트릭과 아트는 자신들의 호텔 방으로 그녀를 초대해 사춘기 시절 옆 침대에서 함께 자위했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날 처음 만난 썸녀에게 들려주기에는 다소 아스트랄한 썰이지만 타시는 둘의 이야기에 큰 흥미를 보이고, 세 사람은 급격하게 가까워진다.
이 장면은 아트와 패트릭의 관계가 우정으로 포장된 것보다 훨씬 섹슈얼하다는 인상을 준다. 그 사실을 곧바로 알아차린 타시는 두 사람을 일부러 키스하게 만들며 그 장면을 재미있다는 듯 가만히 지켜본다. 이후 패트릭이 타시와 잠자리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아트가 보인 반응도 의미심장하다. 아트는 자신의 짝사랑 상대와 섹스를 한 패트릭을 단순히 질투하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이 자신을 빼놓고 그런 일을 벌인 것이 서운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그러니까 '질투'가 아니라 '서운함'인 것이다.
구아다니노 감독의 전작은 남자들의 사랑을 그린 영화였고 나는 이 영화도 전작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본다. 이 작품 역시 남자들의 사랑 이야기지만, 타시라는 여성을 사이에 둔 두 남자의 사랑 이야기라는 점에서 전작과 구조적인 차이가 있다. 그리고 세 사람의 관계는 셋 중 하나만 빠져도 진행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테니스 경기와 닮은 점이 많다.
테니스 경기가 라켓을 든 두 선수(아트와 패트릭) 그리고 테니스공(타시)이 있어야 진행될 수 있듯이, 두 남자의 감정도 타시라는 여성을 가운데에 두고서만 진행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완벽한 이성애자로 묘사되는 젊은 스포츠맨 두 명이 과연 서로에게 우정 이상의 뭔가를 느끼고 있는지, 만약 그렇다면 두 사람이 자신들의 감정을 조금이라도 자각하고 있는지에 대해 줄기차게 모호한 관점을 제시하며 관객의 궁금증을 유발한다. 테니스 공처럼 둘 사이를 오가는 타시는 아트와 패트릭에게 우정을 넘은 우정, 경쟁심을 넘은 경쟁심, 열정을 넘은 열정을 유발하는 강력한 촉매다. 타시를 가운데 두고 경쟁하며 화학 반응처럼 감정을 불태우는 두 남자의 관계는 우정보다는 차라리 사랑에 가까워 보인다.
2. 타시의 역할
"네가 원하는 게 뭔데?"
"나는 끝내주는 테니스 경기를 보고 싶을 뿐이야"
극 중 타시는 머릿속에 테니스밖에 없는 테니스의 화신이지만 정작 자신은 리그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인물이기도 하다. 완벽한 경기력을 향한 타시의 열정은 꺼진 적이 없건만 그녀는 오직 남편을 통해서만 자신의 욕망을 현실에 구현할 수 있다. "네가 경기에서 지면 너를 떠날 거야" 라고 말하며 간접적인 방식으로 아트를 압박할 수 있어도 그가 억지로 테니스를 계속하게 만들 수는 없다.
다시 말해서 타시는 누군가가 잡고 튕겨서 코트 위로 넘겨주기를 기다리는 테니스공이다. 물론 처음 등장할 때 그녀는 공이 아니라 라켓을 들고 자신의 의지로 경기를 좌우하는 선수였다. 그러나 잔인하게도 그녀를 완벽한 테니스공으로 만들기 위해 감독은 타시의 무릎을 꺾어버리고 만다. 부상을 입고 은퇴한 그녀는 타자에게 자신을 투사하는 방식으로만 경기에 참여할 수 있게 되고, 두 남자 중에서 테니스에 좀 더 진지한 태도를 보이는 아트를 자신의 투사체로 최종 선택한다. 하지만 타시는 그녀 대신 코트 위를 뛰어줄 사람을 필요로 할 뿐이며 이 사실을 타시도 알고 아트도 알기에 결혼 후에도 둘의 관계는 작은 충격에도 깨질 듯 위태롭고 불안하다.
3. 아트의 감정
하지만 도리어 아트에게는 이렇게 연약하고 한치 앞도 모르는 관계가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아트는 타시를 숭배하고 존경하며 그녀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 원치 않는 선수 생활까지 계속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이는 아내에게 가지는 감정이라기보다는 사람들이 흔히 성모 마리아와 같은 이상적인 여성상에게 가지는 경외심에 가까워 보인다. 'love'가 아니라 'worship'인 것. 경기 전날 아트가 타시에게 잠들 때까지 자신을 안아달라고 말하며 취하는 자세도 유럽의 종교화나 조각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성모 마리아에게 안긴 예수의 자세와 비슷하다. 가장 친한 친구가 사랑하는 여자. 어쩌면 지금도 그 친구를 사랑할지도 모르는 여자. 어쩌면 자신보다 훨씬 뛰어난 선수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여자. 테니스를 그만두는 순간 자신을 떠날지도 모르는 여자. 아트는 이렇게 타시를 자신보다 한 차원 높은 곳에 있는 신비롭고 알 수 없는 존재로 끊임없이 우상화하며 결혼 후에도 타시에 대한 욕망을 잃지 않는다. 그가 그녀를 지속적으로 욕망하는 이유는 그녀가 그에게 결코 가질 수 없는 존재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어쩌면 우상화를 그만두는 순간 그는 아주 쉽게 그녀를 놓아버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4. 돌풍의 의미
극 중 광고판에 등장하는 '게임 체인저스'라는 문구는 아트와 타시를 뜻하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타시는 테니스에 의욕을 잃은 남편 아트를 승리하게 만들어 진정한 게임 체인저스가 되고자 결승전 전날 패트릭을 찾아간다. 패트릭은 다음날 경기에서 의도적으로 패배해 주겠다고 그녀에게 약속하지만, 막상 타시가 "내일 네가 져 줄 거라는 걸 어떻게 알지?"라고 묻자 "너는 알 수 없지"라고 대답한다. 두 사람이 함께 있는 차 바깥에는 엄청난 돌풍이 몰아치고 있다.
바람은 야외 테니스 경기에서 가장 큰 변수다. 그 어떤 대단한 선수 군단을 데려와도 폭풍 속에서 경기를 진행할 수는 없다. 경기 전날 몰아친 돌풍을 통해 감독은 진정한 '게임 체인저스'가 무엇인지 암시적으로 드러낸다. 패트릭을 찾아가게 만든 것은 타시의 욕망이었다. 그런 타시와 거래를 하게 만든 것도 패트릭의 욕망이었다. 욕망으로 가득 찬 인간의 복잡한 마음은 타시와 패트릭처럼 부정행위를 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사람들이 스포츠 경기에서 보고 싶어 하는 것은 이토록 불완전하고 복잡한 마음이 만들어 내는 반전의 드라마다. 구아다니노 감독은 챌린저스 리그 결승전 전날 몰아친 돌풍을 통해서 예측 불가한 자연, 즉 인간의 마음이 만들어내는 한치 앞도 모르는 승부야말로 스포츠의 본질이라고 말하고 있다.
5. 마지막 경기
챌린저스 결승전 당일. 경기의 승패를 손에 쥐고 있는 패트릭은 여유를 부리고 옛 친구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아는 아트는 그런 그의 태도에서 이상 신호를 감지하며 긴장한다. 관중석에서 둘을 지켜보는 타시 역시 불안감에 사로잡힌다. 경기가 진행될수록 팽팽해지는 두 사람 사이의 긴장감을 최고조에 이르게 만드는 건 패트릭의 핸드 사인이다. 오직 두 사람만이 알고 있는, '나는 걔랑 잤어'를 뜻하는 사인. 이 수신호를 단번에 알아본 아트는 평정심을 잃고 욕설을 내뱉는다. 한술 더 떠서 패트릭은 타시와의 약속을 암시하듯 일부러 실수를 저지르며 아트를 도발하고, 아트는 그의 도발에 휘말려 점점 더 분노한다.
하지만 둘 사이의 감정적 긴장감이 폭발하는 바로 그 순간, 아트는 네트를 넘어가 패트릭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는 대신 그를 향해 조용한 미소를 보낸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결국 우리 둘 다 걔랑 잤으니까, 다시 무승부로 돌아갔네.' 패트릭도 미소를 짓는다. 이 시점에서 둘의 전적은 테니스 식으로 말하자면 '듀스'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시간. 두 사람은 온 힘을 다해 경기에 임한다. 마치 둘 사이에 타시라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처럼. 우정과 경쟁과 승부만이 존재했던 그때 그 시절처럼. 아트와 패트릭의 거리는 예전으로 돌아가기라도 하는 듯 조금씩 가까워지고 마침내 두 사람은 코트 중앙에서 서로를 끌어안는다. 이제 둘 사이에는 거리도 없고, 타시도 없다. 오직 라켓을 든 두 남자와 땅에 떨어진 테니스공 뿐이다.
6. 타시의 환호
흥미로운 것은 이 장면이 세 사람 중에서 그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아트가 미소를 짓는 순간 패트릭과 아트 사이에는 더 이상 타시가 없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소외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는 그 순간 마침내 자신의 진짜 자리를 찾아 원하는 것을 얻는다.
타시는 테니스가 '관계'라고 믿는 인물이다. 세 사람의 사랑을 테니스 경기에 빗대어 볼 때, 처음에 타시가 반했던 건 아트 또는 패트릭이라는 유형의 인물이 아니었다. 타시가 원했던 것은 아트와 패트릭 사이에서 벌어지는 무형의 사건(=경기=관계)이었다. 그냥 관계가 아니라 아주 짜릿하고 흥미진진한 관계를 원했고 그녀의 심장을 힘껏 뛰게 만들 테니스 명경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사이가 점점 멀어지면서 타시가 매료됐던 사건은 사라져 갔고, 그녀의 불만족도 함께 커져갔다. 공허감을 채우기 위해서 그녀는 공처럼 두 사람 사이를 오가기도 했지만 사실 불만족은 사람인 그녀가 공의 역할을 하게 된 데서 왔기에 그런 식으로는 절대 채워질 수 없었다. 그녀는 공이 되고 싶지 않았다. 직접 코트 위에 설 수 없다면 차라리 관중석에 앉아서 완벽한 몰입감과 일체감을 선사하는 '끝내주는 경기'를 지켜보고 싶었다. 애초에 사람이란 관중은 될 수 있어도 공은 될 수 없는 존재다. 그래서 아트와 패트릭 사이에서 그녀가 사라지고 실제 테니스 공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 순간 타시는 진심으로 기뻐하고 만족스러워하며 두 남자를 향해 환호를 보낸다.
7. 결론
사람들은 예술을 통해 성을 향유하기를 원하지만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성의 향유는 한쪽 성의 착취를 전제로 한다. 또한 폴리아모리는 인간의 판타지를 담은 용어일 뿐 삼각관계에서는 어느 쪽이든 감정적으로 소외되는 사람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따라서 감정적, 육체적으로 섹슈얼하고 건강한 긴장감을 주는 동시에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는 작품을 만드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이 영화가 정말로 아름답고 건강하게 잘 만들어진 로맨스 영화이자 스포츠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구아다니노 감독은 남자라는 존재를 진짜 엄청 많이 무지막지하게 사랑하는 것 같기에 이 감독의 다음 작품에는 또 얼마나 멋진 남자들이 잔뜩 나올지 정말이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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