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웹툰 <저무는 해, 시린 눈>의 초반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 소년이 있다. 소년이 나고 자란 곳은 북쪽의 차가운 땅. 그 땅에는 남색 머리에 푸른 눈, 굵은 뼈대를 가진 사람들이 산다. 그러나 소년의 고향인 북부는 이웃 남부와의 오랜 전쟁 끝에 패전한 상태다. 북부 연합국은 사라지고 남부 왕국 '모르메라타'의 영토가 되었다.
전쟁으로 소년은 부모를 잃었다. 고아가 된 소년은 친숙한 고향 마을을 떠나 한때 적국이었던 남부로 떠난다.

어린 시절부터 사냥보다는 채집이 좋았던 소년은 부모에게 배운 기술로 약제사가 되어 생계를 꾸려나간다. 한때 적국이던 북부의 고아 소년에게 남부 사람들이 마냥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그러나 따뜻하고 정직한 마음씨를 가진 소년은 이웃과 친구를 사귀며 남부에 정착한다.
뛰어난 약제사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청년 '에르킨'의 앞에 어느날 정체불명의 의뢰인이 나타난다. 의뢰인은 한 환자의 병증을 대며 약 처방을 요청한다. 환자는 마을 근처에 있는 '이름 없는 성'의 성주. 얼굴도, 이름도, 나이도, 성별도,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은 미지의 인물이다. 의뢰인은 에르킨에게 수수께끼처럼 오직 증상만을 알려준다.

말도 안 되는 요구다. 환자를 직접 만나보지도 않고 약을 처방하라니. 그러나 에르킨은 이 기묘한 요구를 받아들여 성주의 의원이 되기로 한다. 부모님의 원수이자 남부의 전쟁 영웅인 '태양의 마녀'에게 가까워질 기회였기 때문이다.

에르킨은 전쟁 중 부모님을 불타 죽게 만든 태양의 마녀에게 깊은 복수심을 품고 있다. 고향 마을을 떠나 적국인 남부까지 온 것도 사실은 그녀 때문이다.
그러나 패전국의 고아인 그가 왕이 아니면 얼굴조차 볼 수 없다는 신비로운 전쟁 영웅을 직접 만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에르킨은 이름 없는 성의 성주를 치료하는 의원이 된다. 귀족의 눈에 들어 힐데가르에게 접근하겠다는 실낱 같은 희망을 품은 채로.

이름 모를 성의 성주는 3층 침실에만 기거한다. 에르킨은 약제를 처방할 수는 있지만 성주를 직접 만나서 진단을 할 수는 없다. 3층은 소수의 측근들을 제외하고는 철저하게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당연한 클리셰지만 성주의 정체는 에르킨의 원수이자 전쟁 영웅인 '힐데가르 아일리우스'가 맞다. 그녀는 상처가 나도 저절로 낫고 몸이 두 동강 나도 죽지 않는 불로불사의 존재다. 태양의 힘인 '광열'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그녀는 십 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 홀로 전장을 누비며 남부를 승리로 이끌었다.
그러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주역인 그녀는 지금 어찌 된 영문인지 시골의 작은 성에 유배당하다시피 은거하고 있다. 게다가 원인 모를 병증으로 밤마다 끔찍한 고통을 겪는다.

힐데가르의 본모습을 아는 사람은 최측근인 기사 '그리셀다'와 하녀인 '헤이시' 그리고 일부 왕족뿐이다. 대중 앞에서는 항상 가면을 착용한다. 가면은 어린 나이부터 전쟁에 투입되었던 그녀의 왜소한 몸을 감추고 대중에게 위압감을 주며 그녀를 사람이 아니라 ‘전쟁 아이콘’으로 만드는 수단이기도 했다.

힐데가르는 가면 없이 사람들 앞에 나서지 않는다. 그러나 에르킨이 '이름 없는 성'에 온 첫날 밤, 약 덕분에 오랜만에 병증 없이 잠에서 깨어난 그녀는 무심코 성을 돌아다니다가 에르킨을 마주치고 만다. 물론 맨 얼굴로 말이다.

처음에 그녀는 자신의 얼굴을 본 에르킨을 당장 죽여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모종의 이유로 살인을 잠시 유보한다.
자신의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중이라는 사실을 에르킨은 당연히 모른다. 힐데가르를 성주의 하녀로 착각한 그는 그녀에게 이름을 묻는다. 본명을 말할 수 없었던 힐데가르는 마침 눈에 띈 태양신 ‘카리야’의 조각상에서 따온 ‘카야’라는 이름을 즉석에서 지어낸다.

에르킨의 고향인 북부가 땅의 신 '누메타스'를 섬긴다면 힐데가르의 고향인 남부는 태양의 여신 '카리야'를 섬긴다. 카리야는 인간에게 불과 문명을 선사한 신이자 전쟁과 불멸의 여신이기도 하다.

자신도 모르게 원수를 치료하게 된 북부 남자 '에르킨'. 그리고 전장에서 수없이 살해했던 북부인의 손에 목숨을 맡기게 된 남부 여자 '힐데가르(카야)'. 그렇게 둘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된다.


평생 타인을 돌보며 치료사로 살아온 에르킨과 기사의 신분으로 전장을 누비며 살아온 힐데가르. 그들은 서로가 낯설다. 그러나 어쩐지 불쾌하지 않은 낯섦이다. 증오를 감춘 남자와 정체를 감춘 여자는 평화로운 변방의 성에서 함께 지내며 점점 서로에게 이끌린다.
가정사도 나누고,

소소한 모험도 함께한다.

위험에서 보호해준다는 핑계로 스킨십도 하고

야심한 밤에 따로 만나서 대화도 나눈다.


그는 그녀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고,

그녀는 그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궁금하다.

그들은 어느덧 선물을 주고받고, 약속을 나누고, 서로를 의식하는 관계가 된다. 하지만 힐데가르는 알고 있다. 자신이 '태양의 기사'라는 사실을 밝히는 그 순간 이 다정한 관계는 깨어진다는 사실을.

그렇게 아슬아슬한 평화를 이어나가던 두 사람 앞에 어느 날 젊은 기사가 나타난다.

귀족 가문의 자재인 이 남자는 왕이 태양의 기사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보냈다고 주장하며 그대로 성에 눌러앉는다. 그러나 남자의 말은 궤변이다. 불로불사의 존재는 지킬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이 기사에게는 다른 의도가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일단은 그도 불타는 청춘이기에 하녀인 척 성을 돌아다니는 카야에게 한눈에 반해버리고 만다....(?)


... 여기까지는 2020년부터 네이버에서 연재되고 있는 웹툰 <저무는 해, 시린 눈>의 초반 줄거리다. 대충 흑발남주 x 먼치킨여주 클리셰 범벅 양산형 로판 중 하나처럼 보인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기에 연재가 시작된 지 4년이 지나 거의 완결을 향해 가고 있는 지금에서야 이 작품을 접했다. 그마저도 12.3 내란이 아니었으면 읽어보지 않았을 작품이다.

2024년 12월은 참으로 심란한 한 달이었다. 원래 <위키드> 시리즈를 열심히 읽고 리뷰를 쓰려고 준비 중이었는데 내란 이후로 순문학은 도무지 눈에 들어오지 않아서(계엄시국에 파시즘에 맞서 싸우다가 결국 패배하는 민중의 이야기인 위키드? 응 스트레스 받아서 죽을게) 오랜만에 이것저것 웹툰과 웹소설을 찾아봤다. 그러다가 우연히 눈에 들어온 이 작품. 아무 기대도 하지 않고 손을 댔다. 그냥 딱 킬링타임용 로판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리고 200화를 단숨에 읽었다. 유료분을 보기 위해 웹툰 앱을 다시 깔고 탈퇴했던 아이디를 살렸다. 그렇다. 나는
계엄 시국에 그만
인생작을 찾아버리고 말았다.

좋은 작품은 잠시나마 현실을 잊게 해준다. 그러나 다 읽은 다음에는 현실을 깨닫게 해 준다. 이 작품 덕분에 고맙게도 며칠 동안 내란성 우울증을 잊을 만큼 완벽하게 행복했다(작가님 감사해요). 그러나 마지막 연재 분량을 읽었을 때 나는 이 작품이 단순히 현실도피를 위한 양산형 로판이 아님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런 식으로 가볍게 소비하기엔 너무나 진지한 주제의식을 담은 작품이었으므로.

<저무는 해, 시린 눈>은 로맨스 판타지 장르에 속하지만 '전쟁'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그것도 아주 진지하게 다룬다. 한국인이라면 어딘가 기시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방식으로 말이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남부’와 ‘북부’, 그리고 둘 사이에서 일어나는 전쟁은 자연스레 6.25를 떠올리게 만든다.
전쟁이 끝난 뒤 분열된 사회와, 사람들의 마음속에 들어차 있는 증오 역시 지금의 한국 사회를 연상시킨다. 무지에서 비롯된 혐오에 물든 아이들, 자식이 용감한 시체가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어머니, 남부와 북부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하고 떠도는 청년 등 작품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현실을 거울처럼 반영하고 있다.

작가는 모든 인물을 놀라울 만큼 신중하게 다룬다. 흐릿한 인상의 하녀부터 얼굴조차 나오지 않는 문지기까지 모두에게 자신의 입장이 있고 이해관계가 있다. 왕족, 귀족, 기사, 평민, 북부인, 남부인 모두가 자신의 자리에서 역할을 다한다. 이야기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억지로 끌려 나와 이용당하는 캐릭터는 이 작품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작품을 보는 독자는 모든 인물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다.

이해가 곧 수용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해할 수 있다고 해서 그 캐릭터를 무작정 연민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건 아니다. 여전히 악인은 악인이고 배신자는 배신자다. 그러나 그의 행보와 감정이 작품 내에서 충분히 설명된다면 독자는 그 캐릭터를 하나의 입체적인 '인물'로서 바라볼 수 있다. <저무는 해, 시린 눈>이 바로 그 일을 해내는 작품이다. 한 작가가 만들었다기에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정교하고 단단한 세계. 오랜만에 긴 후기를 쓰고 싶게 만드는 정말 좋은 작품을 만났다.

이 댓글처럼 만신은 한국에서 웹툰을 연재하고 있다. 만신의 예명은 MURO. <저무는 해 시린 눈>은 그의 데뷔작이다. 어떻게 이런 완성도 높은 작품이 데뷔작일 수 있니.... 세상에는 넘볼 수 없는 천재들이 진짜로 존재하는구나 싶고ㅜㅜ 진짜 이런 거장들이 세상 어디에 숨어있을지 모르니까 장르 가리지 말고 이것저것 찍먹해봐야 행복한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겠구나 싶고ㅠㅠ 아니 대체 무로 작가님은 대체 어디서 어떤 삶을 살아오셨길래 이런 걸 그려요....? 앞으로 죽을 때까지 만화 그려 주셔야 합니다... 단행본 꼭 내주시고....

주접은 이만 떨고 내란 시국에 찾은 나의 인생작, <저무는 해, 시린 눈>에 대한 리뷰를 시작해 보겠다. 아무래도 스포일러가 있을 수밖에 없으니 작품에 대한 정보를 얻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이 창을 끄고 바로 네이버로 넘어가서 1화부터 쭉 완독하기를 권한다. 완결 나기 전에 꼭 보길 바란다. 후회 없는 시간이 될 테니까. 이래 봬도 강풀 순정만화 시절부터 유명작들 실시간으로 달리는 것도 부족해서 네이버 베도랑 다음 리그까지 챙겨봤던 웹툰 고인물의 추천이다...진짜 꼭 보세요 왜안보냐고 이 리뷰 당장 끄라고 난 혼자서 왈왈거릴 거니까

얼른 가세요
⬇️⬇️⬇️아래 링크로 ⬇️⬇️⬇️
https://m.comic.naver.com/webtoon/list?titleId=746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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