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웹툰 <저무는 해, 시린 눈>의 중/후반부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1. 강함과 약함, 파괴와 돌봄 - 힐데가르와 에르킨
<저무는 해, 시린 눈>의 남자주인공 에르킨. 그는 로맨스 장르에서 전통적으로 여자 주인공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속성을 가진 인물이다. 치유의 힘과 온화하고 다정한 성품, 무력보다는 지력으로 승부하는 캐릭터다.
네이버의 유명 로판 작품인 <마른 가지에 바람처럼>의 캐릭터들과 비교하면 성별이 반전된 에르킨이라는 인물의 특징은 더욱 두드러진다. <마른 가지>에서 남자 주인공은 영지를 가진 성주이자 기사이고 여자 주인공은 치유의 능력을 가진 평민이다.
반면 <저무는 해, 시린 눈>에서는 남자 주인공이 치유의 능력을 가진 고아이자 평민이고, 여자 주인공은 강력한 힘을 가진 기사이자 성주다. 이처럼 에르킨은 여성향 로맨스 남자 주인공의 기본 소양인 '재력, 무력, 권력'의 3요소 중 어느 것도 가지지 않은 가난한 캐릭터다.
또한 에르킨은 작중에서 얼음과 눈의 땅인 '북부' 출신이지만 로판 장르의 주요 클리셰인 '북부 대공' 캐릭터와는 거리가 멀다. 북부 대공은 일반적으로 출신에 걸맞게 차갑고 무감한 존재로 그려진다. 그러나 에르킨은 작중에서 가장 따뜻하고 온화한 성품을 가진 인물이다. 여타 북부 대공들처럼 부유하지도 않고 귀족도 아니다.
여기까지 살펴봤을 때 그는 요즘 여자들의 기호에 잘 맞는 성별 반전 로판 남자주인공 캐릭터에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에르킨이라는 인물이 보기 좋은 다정함만을 모아 놓은 양산형 로판식 #다정남 #대형견남 #순정남 캐릭터에 불과했다면 이 작품으로 이런 긴 후기를 쓰지 않았을 것이다.
소설가는 단순한 스토리텔러가 아니라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가치관을 드러내는 '사상가'라고 여성학자 정희진은 말한 바 있다. 사실 나는 이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막되먹은 사상을 가지고 뛰어난 작품을 썼던 작가들이 있다. 당장 생각나는 사람들만 해도 마가렛 미첼이나 키플링 등 여럿이다. 하나는 노예제 옹호론자였고 하나는 제국주의자였지만 그렇다고 두 사람이 창조하고 기록한 이야기의 가치가 훼손되지는 않는다. 그들이 대단한 이야기꾼이기 때문이다.
작가로서의 재능과 사상가로서의 재능은 어느 정도 분리되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훌륭한 이야기꾼은 자신의 가치관을 어떤 식으로든 작품 속에서 드러낼 수밖에 없다고도 생각한다. 차가운 땅에서 온 푸른 눈의 다정한 청년 에르킨이라는 인물을 통해 전쟁이 끝난 땅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아주 중요한 질문을 독자들에게 던지고 있는 이 작품처럼 말이다.
<저무는 해, 시린 눈>의 주요 배경은 전쟁이 끝난 왕국이다. 오랜 전쟁을 남부의 승리로 끝낸 주역은 이 작품의 여자 주인공이자 '저무는 해'가 상징하는 인물인 힐데가르다. 불로불사의 능력과 태양의 힘을 지닌 그녀는 이 작품에서 '강함'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힘에는 중요한 맹점이 있다. 태양의 힘은 부수고 상처 입힐 수 있을 뿐 돌보거나 치유하지 못한다. 그래서 전쟁이 끝난 왕국에서 그녀는 시한폭탄 취급을 받는다. 파괴하는 행위에만 특화된 그녀의 힘을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태양의 마녀 덕분에 전쟁은 끝났다. 남부는 승전했다. 북부는 패전했다. 남부와 북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전쟁은 왕국의 모든 사람들에게 상처를 남겼다. <저무는 해, 시린 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직, 간접적으로 전쟁을 경험했으며 주요 인물들은 모두 크고 작은 전쟁 PTSD를 가지고 있다.
힐데가르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어린 시절 우연한 사건으로 태양의 힘을 얻었다. 힘 때문에 고향 땅에서 납치당해 왕국의 무기로 잔인하게 이용되었다.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 수많은 사람의 죽음을 지켜봤다. 그런 그녀는 남은 삶에 아무런 기대와 희망을 품지 않은 무감한 상태로 오지 않는 죽음을 기다린다.
죽음의 고통은 날마다 찾아온다. 그러나 그녀는 죽을 수 없다. 매일 저녁 서쪽으로 지지만 아침에는 다시 동쪽 하늘로 떠오르는 것이 태양의 속성이니. 밤이 오면 죽음의 고통에 몸부림치지만, 동이 트면 다시 타올라야만 한다. 그것이 인간의 몸으로 태양의 힘을 담게 된 그녀의 운명이기 때문에.
그녀는 이 고통이 저주라고 생각한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전쟁터에서 죄 없는 사람들을 죽게 만든 자신에게 내려진 형벌이라고 여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힐데가르가 은거하는 '이름 없는 성'은 원래 수도원이었다고 한다. 작중에서 '이름 없는 성'은 여러 번 강조된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뛰어난 작가들은 이름 하나 허투루 짓지 않는다. 이름 없는 성에는 왜 이름이 없을까. 왜 그 성에 이름이 없다는 것이 그토록 자주 나오는 걸까.
힐데가르에게는 마지막 전투까지 함께 싸웠던 '이네스'라는 이름의 부관이 있었다. 평민 출신인 이네스의 꿈은 전쟁에서 공을 세워 자신의 이름으로 된 성을 받는 것이었다. 그러나 힐데가르를 따르면서 그 꿈은 전쟁이 끝나면 힐데가르의 성에서 함께 남을 생을 보내고 싶다는 소망으로 바뀐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지금 힐데가르의 곁에는 이네스가 없다. 마지막 전투에서 그녀는 죽었다. 힐데가르와 함께 싸우다가 먼저 세상을 떠난 수많은 동료 기사들처럼 이네스 역시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오는 모습을 지켜보지 못했다.
이름 없는 성은 이네스의 성이다. 평화를 되찾기 위해 힐데가르가 죽여야 했던 사람들의 성이다. 그녀를 위해 죽어야 했던 사람들의 성이다. 이 성에 스스로를 가둔 힐데가르는 날마다 찾아오는 죽음의 고통을 홀로 감내하면서 먼저 떠난 사람들을 추모해 왔다. 이것이 그녀가 가진 전쟁 PTSD다.
북부인인 에르킨은 그런 힐데가르를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는 '돌봄'과 '나눔'이라는 가치를 평생에 걸쳐 실천하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처음에 힐데가르는 그가 바보 같다고 생각한다.
에르킨의 다정함을 힐데가르는 이해하지 못한다. 힐데가르가 죽을 게 뻔한 말(🐎)을 왜 굳이 살려야 하냐고 질문하자 에르킨은 그 말이 소년에게 소중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힐데가르가 내 것을 왜 타인에게 나누는지 이해하지 못하자 에르킨은 그들이 자신에게 소중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힐데가르는 강하고 에르킨은 약하다. 힐데가르는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기사지만 에르킨은 싸움도, 수영도 못하는 평범한 서민일 뿐이다. 힐데가르는 웬만해선 눈물을 흘리지 않지만 에르킨은 작품에서 수없이 눈물을 흘린다. 눈이 퉁퉁 붓도록 울고 또 운다. 독자들이 기대하는 멋진 로판 남주와는 거리가 먼 모습이다. 그래서인지 에르킨은 남주치고는 압도적으로 인기가 없다(캐릭터 인기투표 결과).
아무리 저물어도 다시 떠오르는 뜨거운 태양인 힐데가르와, 한 번 녹으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차가운 눈인 에르킨. 강력한 태양과 연약한 눈송이. 이것이 둘의 관계다. 겉으로는 그렇다.
작품의 2부에서 에르킨은 마침내 부모의 죽음에 얽힌 사연을 알게 된다. 누구도 원망할 수 없는, 너무나도 잔인하고 끔찍한 과거 앞에서 그는 눈앞의 원수에게 칼을 꽂을지 고민한다. 그러나 끝내 원수를 죽이지 못한다. 대신 두 눈을 들어 진실을 마주한다. 당장 칼로 찔러 죽이고 싶은 원수 역시 실은 끔찍한 전쟁의 죄 없는 피해자이며 희생자라는 사실을.
"세상이 너무 끔찍해. 너무 끔찍해서, 어떻게 살아야 될지 모르겠어. 이런 세상에서 살아갈 자신이 없어. 난 끝까지 칼을 놓지도 못했어요. 속 시원하게 복수하지도, 완전히 용서하지도 못하겠어! 내가 너무 나약해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에르킨은 자신의 약함을 비관한다. 하지만 힐데가르는 이제 에르킨이 약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처음에 에르킨을 보며 '바보 같다'라고 생각하던 그녀는 어느 순간부터 그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었다. 죽일 수 있지만 굳이 죽이지 않는다. 나와 아무런 상관없는 사람이지만 내 것을 나눠준다. 그녀는 에르킨을 사랑하면서 점점 그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힐데가르는 에르킨에게 이렇게 말한다. 흔들리고 고통스러워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선을 향해 가는 네가 진정으로 강한 사람이라고. 그녀는 이렇게 덧붙인다.
"나는 그러지 못했으니까."
이 순간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하던 강함과 약함의 경계는 부서지고 흐트러져 뒤섞인다. 힐데가르는 강하고 에르킨은 약하다. 힐데가르는 전쟁을 끝내기 위해 선두에 서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우리 모두는 그녀가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걸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과거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에르킨은 그런 그녀를 집으로 데려와 돌보고 치료했다. 그녀는 적국의 장수였다. 이 돌봄으로 북부의 운명이 바뀌었다. 에르킨의 운명도 달라졌다. 무서운 일이다. 선의로 행한 일이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는 결과로 돌아오다니. 그러나 작중에서 에르킨이 과거 일을 후회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힐데가르가 적국의 장수라는 사실을 어린 에르킨이 알았어도 그는 그녀를 내버려 두지 않았을 것이다. 이 사실을 힐데가르가 알고, 에르킨이 알고, 독자도 안다. 에르킨은 그런 사람이니까. 돌보고 나누고 돕는 사람이니까. 힐데가르가 그를 사랑하게 된 건 그래서니까.
그녀가 더 이상 그를 약하다고 여기지 않게 된 건 에르킨의 가치관인 ‘돌봄’과 '나눔'을 인정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알지 못했던 세상의 따뜻함을 그에게서 배웠기 때문이다.
적장을 사랑하게 된 남자. 신분을 숨긴 여자. 파괴의 힘을 가진 여자, 치유의 힘을 가진 남자. 이처럼 <저무는 해, 시린 눈>은 로맨스 장르의 오랜 클리셰를 때로는 활용하고 때로는 비틀어 뒤집으며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녀는 전쟁터에서 많은 사람을 죽여 승리를 이뤄냈다. 사람들은 그녀가 영웅이라고 칭송했다. 영웅인 그녀는 강한 사람이었을까.
그는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고아였다. 전투에 나가본 적도 없고 싸울 줄도 몰랐다. 적국 사람들의 비아냥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원수 앞에서도 눈물을 흘리며 돌아섰다. 그는 약한 사람이었을까.
파괴의 힘은 강하고 돌봄의 힘은 약한 것일까. 파괴의 힘만을 추구하다 보면 모두의 인생이 전쟁터가 되어버리고 말 텐데. 그렇기에 힐데가르가 에르킨을 사랑하며 필요로 하는 것인데.
물론 에르킨도 힐데가르를 필요로 한다. 그녀에게는 그에게 없는 힘이 있다. 태양의 힘을 말함이 아니다. 인간 힐데가르가 어린 시절부터 전쟁터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책임지며 경험으로 터득한 힘이다.
전쟁터에서 그녀는 한 번 머뭇거렸다. 단 한 번일 뿐이었지만 그로 인해 많은 걸 잃었다. 돌로 얼굴을 찧으며 처절하게 후회했다. 이날 이후로 그녀는 망설이지 않는다. 주저하지 않는다. '망설임은 죽음을 부르며, 때로는 단호함이 자비가 될 때도 있는 법'이라는 배움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 법은 전쟁터의 법이며 기사의 법이다. 힐데가르의 결단력은 기사로 살아본 적 없는 에르킨이 가지지 못한 자질이다. 자신에게 결여된 힘을 가지고 있는 상대에게 그는 끌릴 수밖에 없다.
태양은 열기를 식혀줄 냉기를 원한다. 힐데가르에게 에르킨이 필요하다는 건 작품을 보는 모두가 안다. 그러나 눈에게도 냉기를 가시게 할 따뜻한 태양의 열기가 필요하다. 비록 그 열기가 눈을 녹여 사라지게 할지라도.
저무는 해와 차가운 눈의 만남은 필연적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입힌다. 그러나 전쟁은 모든 인간에게 상처를 주는 끔찍한 사건이다. 살고 싶다면 상처를 딛고 나아가야 한다.
전쟁이 끝난 땅에서 눈은 녹고 태양은 식는다. 남은 것은 언뜻 폐허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작품의 뼈대를 이루는 신화는 예고하고 있다. 태양과 눈을 상징하는 두 사람이 만나서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사랑하게 되었을 때,
“그 덕에 땅에는 온기가 돌기 시작하고,
설산은 녹아 강이 되며-
그것이 지상의 비옥한 첫 봄이 되었다.”
지상에는 비로소 평화가 찾아올 것임을.
2. 달리는 기차에 중립은 없다 - 테리온 와이드헨과 선택의 딜레마
알브레히트 와이드헨. 남부 왕국의 기사단장인 그는 8년 전 평원 대전투에서 사랑하는 세 조카를 잃었다. 부대를 지휘하는 태양의 기사가 약속된 시간에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조카들은 오지 않는 후발대를 기다리며 선두에서 싸우다가 영문도 모른 채 찢기고 밟혀 죽었다. 소중한 친구이자 가족인 그의 제수는 아이들을 한꺼번에 잃은 후 미쳐버리고 말았다.
알브레히트는 전쟁이 끝나기만을 기다린다. 마침내 평화가 찾아오자 그는 이름 없는 성에 자신의 수족인 조카 테리온을 보낸다. ‘태양의 기사’의 정체를 알아내고 그녀를 마녀로 만들기 위해서. 마녀 사냥을 시작하기 위해서.

테리온 와이드헨은 남부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의 성인 '와이드헨'은 예로부터 왕가를 보필해 온 기사 가문이다. 왕의 최측근이지만 왕위를 탐내지는 않는, 권력을 지키는 감시견과도 같은 충직한 기사.
그에게는 원래 세 명의 손위 형제자매가 있었다. 나이 차가 큰 두 형과 누나는 모두 훌륭한 기사였기에 그에게는 별다른 의무가 주어지지 않았다. 어린 테리온은 뒤뜰에서 꽃과 새를 관찰하며 그림을 그리는 조용하고 섬세한 소년으로 자라났다.

그러나 전쟁이 모든 걸 바꿔놓았다. 가문의 기둥이었던 두 형과 누이는 8년 전 평원 대전투에서 한꺼번에 전사했다. 하루아침에 장남이 된 어린 테리온은 형제들처럼 기사가 되어 북부인을 모두 처단하고 가족을 지키겠다고 결심한다. 그림을 그리던 관찰 실력으로 검술을 익힌다.
하지만 그가 기사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전쟁이 끝나버린다. 사라졌다 돌아온 태양의 기사가 압도적인 활약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어머니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멋지게 갑옷을 입고 귀향했지만 미쳐버린 어머니는 아들을 알아보지 못한다.
스무 살 테리온은 막막한 좌절감과 무력감을 가슴에 품고 '이름 없는 성'에 왔다. 한 번도 전투에 참여하지 못했기에 북부인들을 만나본 적조차 없는 그의 눈앞에 에르킨이 나타난다. 테리온은 혼란스럽다. 평생 북부인을 적으로 여겨 왔건만, 눈앞의 에르킨은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악마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작품이 진행되며 테리온은 끝없이 고뇌하고 흔들린다. 자신이 충성하는 숙부의 편에 서야 할까. 자신을 인간적으로 대우해 준 힐데가르의 편에 서야 할까. 힐데가르는 그의 원수다. 그러나 누이와 형제들을 전쟁에 내보낸 건 숙부를 비롯한 가족들이 아니었던가. 전쟁에 나간 이상 그들은 어떤 식으로든 죽을 수 있었다. 힐데가르에게 책임을 무는 게 옳을까.
뒤뜰에서 그림을 그리던 소년은 모든 것을 신중히 관찰하며 실은 이미 진실에 도달했다. 숙부는 사적인 복수심으로 명분 없는 마녀 사냥을 하고 있다. 태양의 기사는 잔인한 전쟁귀가 아니라 타의로 전쟁에 투입된 소녀일 뿐이라는 것을 그는 이미 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진실이 쉽게 보인다. 그러나 그 진실을 가지고 선택을 하는 건 여전히 어렵다.
테리온의 곁에는 ‘선택’이라는 주제가 항상 떠돈다. 테리온의 주변 사람들은 입을 모아 언젠가는 너도 선택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힐데가르도, 힐데가르의 하녀인 헤이시도, 알브레히트의 심복인 가레인도 그렇게 말한다. 다들 무언가를 선택하며 사는 거라고. 너도 다르지 않다고.
테리온은 복잡하고 입체적인 인물이다. 비현실적인 힘을 가진 힐데가르나 극적인 다정함을 가진 에르킨과는 달리 그는 이 작품에 등장하는 누구보다도 현실의 우리를 닮았다. 우물쭈물하며 망설이고, 너무 많이 고민한다. 큰 힘과 권력을 가진 인물에게 속수무책으로 휘둘리며, 책임 앞에서 겁쟁이처럼 도망친다. 그리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선택을 유보한다. 마치 우리들처럼.
‘정치적 중립’이라는 말이 가진 낭만적이고 달콤한 어감이 있다. 한국 사회에서 정치적으로 어느 한쪽에 서는 건 조심스럽고 불편한 일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어느 쪽도 편들지 않는 중립적인 사람이라는 걸 자랑스럽게 내세운다. 한국 사회가 독재냐 민주주의냐의 기로에 서 있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도 이런 태도를 유지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선택하지 않겠다는 선언조차도 선택의 일부라는 사실을 잊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출처: https://n.news.naver.com/article/047/0002461048
한 철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 같은 건 없다고. 작중 테리온은 ‘나는 아직 선택하지 않은 거야’라고 중얼거리며 어영부영 숙부의 마녀 사냥에 동참한다.
그러나 그의 의지와는 별개로 선택은 이미 이루어졌다. 테리온은 전설 속 기사도, 위대한 영웅도 아닌 평범한 청년이기 때문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역사를 선택하지 못한다. 그들은 역사에 연루된다. 역사적 사건은 그들의 의지와 관계없이 일어난다. 평범한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건 '어떤 사건에 개입할지'가 아니라 '사건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할지' 뿐이다. 오직 그뿐이다.
테리온은 운 나쁘게도 마녀 사냥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연루되고 말았다. 스무 살. 축제에서 신나게 춤을 추며 가슴 떨리는 연애를 시작할 나이. 원하는 꿈을 좇으며 희망찬 앞날을 그릴 나이. 마녀 사냥이 시작됐다. 발을 뺄 수는 없다. 가문의 앞날이 달려 있다.
기차는 달려간다. 그 끝이 아득한 절벽인지 안전한 역인지는 알 수 없다. 테리온은 기차가 싫다. 그는 걷고 싶다. 그러나 기차는 이미 역을 떠났다. 기차가 싫다고 뛰어내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간혹 그런 이들이 나타난다. 영웅이거나 미친놈이거나. 하지만 테리온은 평범한 사람이다. 내키지 않지만 기차에 계속 타있는다.
그의 눈앞에 마녀가 나타난다. 양자택일의 순간이 와버렸다. 화살을 쏠 것이냐 말 것이냐. 사실 답은 이미 내려진 지 오래다. '마음은 내키지 않지만 숙부의 결정을 따르겠다'는 입장이 테리온의 선택이었다. 그래서 그는 차갑게 식은 눈으로 힐데가르를 향해 화살을 쏜다.
화살을 쏘는 테리온의 뒤에는 가문과 숙부의 그림자가 있다.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라'는 힐데가르의 조언을 그는 결국 받아들이지 못한 걸까.
(..쓰다 보니 징하게 길고 유료분 내용도 포함돼서 다음 편으로 넘어가기로 함)
저무는 해, 시린 눈
북부를 불태운 전쟁 영웅, 태양의 마녀 '힐데가르'.마녀에게 부모를 잃은 시린 눈의 북부인, '에르킨'.정체와 복수심을 뒤로 숨긴 채 가까워지는 두 사람.신화와 전쟁, 가호와 저주, 사랑과 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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