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웹툰 <저무는 해, 시린 눈>의 중/후반부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1. 강함과 약함, 파괴와 돌봄 - 힐데가르와 에르킨

 

<저무는 해, 시린 눈>의 남자주인공 에르킨. 그는 로맨스 장르에서 전통적으로 여자 주인공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속성을 가진 인물이다. 치유의 힘과 온화하고 다정한 성품, 무력보다는 지력으로 승부하는 캐릭터다.

 

"그래도 사람은 착혀~"의 대명사

 
네이버의 유명 로판 작품인 <마른 가지에 바람처럼>의 캐릭터들과 비교하면 성별이 반전된 에르킨이라는 인물의 특징은 더욱 두드러진다. <마른 가지>에서 남자 주인공은 영지를 가진 성주이자 기사이고 여자 주인공은 치유의 능력을 가진 평민이다.

 

그나마 덜 오글거리는 표지로 가져옴

 
반면 <저무는 해, 시린 눈>에서는 남자 주인공이 치유의 능력을 가진 고아이자 평민이고, 여자 주인공은 강력한 힘을 가진 기사이자 성주다. 이처럼 에르킨은 여성향 로맨스 남자 주인공의 기본 소양인 '재력, 무력, 권력'의 3요소 중 어느 것도 가지지 않은 가난한 캐릭터다.
 

또한 에르킨은 작중에서 얼음과 눈의 땅인 '북부' 출신이지만 로판 장르의 주요 클리셰인 '북부 대공' 캐릭터와는 거리가 멀다. 북부 대공은 일반적으로 출신에 걸맞게 차갑고 무감한 존재로 그려진다. 그러나 에르킨은 작중에서 가장 따뜻하고 온화한 성품을 가진 인물이다. 여타 북부 대공들처럼 부유하지도 않고 귀족도 아니다.

 

일반적인 북부대공남주 x 햇살여주 이미지(구글에서 찾은 표지일 뿐 작품과는 아무 상관 없습니다)

 
여기까지 살펴봤을 때 그는 요즘 여자들의 기호에 잘 맞는 성별 반전 로판 남자주인공 캐릭터에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에르킨이라는 인물이 보기 좋은 다정함만을 모아 놓은 양산형 로판식 #다정남 #대형견남 #순정남 캐릭터에 불과했다면 이 작품으로 이런 긴 후기를 쓰지 않았을 것이다.

 
소설가는 단순한 스토리텔러가 아니라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가치관을 드러내는 '사상가'라고 여성학자 정희진은 말한 바 있다. 사실 나는 이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 막되먹은 사상을 가지고 뛰어난 작품을 썼던 작가들이 있다. 당장 생각나는 사람들만 해도 마가렛 미첼이나 키플링 등 여럿이다. 하나는 노예제 옹호론자였고 하나는 제국주의자였지만 그렇다고 두 사람이 창조하고 기록한 이야기의 가치가 훼손되지는 않는다. 그들이 대단한 이야기꾼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레트 버틀러는 스칼렛 오하라에게 신들의 황혼을 언급하지만 뇌가 청순한 스칼렛은 무슨 소린지 알아듣지 못한다. 신들의 황혼에 대해서는 다음 편 참고

 

작가로서의 재능과 사상가로서의 재능은 어느 정도 분리되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훌륭한 이야기꾼은 자신의 가치관을 어떤 식으로든 작품 속에서 드러낼 수밖에 없다고도 생각한다. 차가운 땅에서 온 푸른 눈의 다정한 청년 에르킨이라는 인물을 통해 전쟁이 끝난 땅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아주 중요한 질문을 독자들에게 던지고 있는 이 작품처럼 말이다.

 

 

<저무는 해, 시린 눈>의 주요 배경은 전쟁이 끝난 왕국이다. 오랜 전쟁을 남부의 승리로 끝낸 주역은 이 작품의 여자 주인공이자 '저무는 해'가 상징하는 인물인 힐데가르다. 불로불사의 능력과 태양의 힘을 지닌 그녀는 이 작품에서 '강함'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힘에는 중요한 맹점이 있다. 태양의 힘은 부수고 상처 입힐 수 있을 뿐 돌보거나 치유하지 못한다. 그래서 전쟁이 끝난 왕국에서 그녀는 시한폭탄 취급을 받는다. 파괴하는 행위에만 특화된 그녀의 힘을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태양의 마녀 덕분에 전쟁은 끝났다. 남부는 승전했다. 북부는 패전했다. 남부와 북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전쟁은 왕국의 모든 사람들에게 상처를 남겼다. <저무는 해, 시린 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직, 간접적으로 전쟁을 경험했으며 주요 인물들은 모두 크고 작은 전쟁 PTSD를 가지고 있다.

 

 

힐데가르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어린 시절 우연한 사건으로 태양의 힘을 얻었다. 힘 때문에 고향 땅에서 납치당해 왕국의 무기로 잔인하게 이용되었다.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 수많은 사람의 죽음을 지켜봤다. 그런 그녀는 남은 삶에 아무런 기대와 희망을 품지 않은 무감한 상태로 오지 않는 죽음을 기다린다.

 

 

죽음의 고통은 날마다 찾아온다. 그러나 그녀는 죽을 수 없다. 매일 저녁 서쪽으로 지지만 아침에는 다시 동쪽 하늘로 떠오르는 것이 태양의 속성이니. 밤이 오면 죽음의 고통에 몸부림치지만, 동이 트면 다시 타올라야만 한다. 그것이 인간의 몸으로 태양의 힘을 담게 된 그녀의 운명이기 때문에.

 
그녀는 이 고통이 저주라고 생각한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전쟁터에서 죄 없는 사람들을 죽게 만든 자신에게 내려진 형벌이라고 여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힐데가르가 은거하는 '이름 없는 성'은 원래 수도원이었다고 한다. 작중에서 '이름 없는 성'은 여러 번 강조된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뛰어난 작가들은 이름 하나 허투루 짓지 않는다. 이름 없는 성에는 왜 이름이 없을까. 왜 그 성에 이름이 없다는 것이 그토록 자주 나오는 걸까.

 

이름 없는 성 전경(이래 봬도 배산임수)

 

힐데가르에게는 마지막 전투까지 함께 싸웠던 '이네스'라는 이름의 부관이 있었다. 평민 출신인 이네스의 꿈은 전쟁에서 공을 세워 자신의 이름으로 된 성을 받는 것이었다. 그러나 힐데가르를 따르면서 그 꿈은 전쟁이 끝나면 힐데가르의 성에서 함께 남을 생을 보내고 싶다는 소망으로 바뀐다.

 

이네스 경...내 최애...가슴이 박박 찢어져요

 

하지만 전쟁이 끝난 지금 힐데가르의 곁에는 이네스가 없다. 마지막 전투에서 그녀는 죽었다. 힐데가르와 함께 싸우다가 먼저 세상을 떠난 수많은 동료 기사들처럼 이네스 역시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오는 모습을 지켜보지 못했다.

 

 
 

이름 없는 성은 이네스의 성이다. 평화를 되찾기 위해 힐데가르가 죽여야 했던 사람들의 성이다. 그녀를 위해 죽어야 했던 사람들의 성이다. 이 성에 스스로를 가둔 힐데가르는 날마다 찾아오는 죽음의 고통을 홀로 감내하면서 먼저 떠난 사람들을 추모해 왔다. 이것이 그녀가 가진 전쟁 PTSD다.

 

 

북부인인 에르킨은 그런 힐데가르를 치료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는 '돌봄'과 '나눔'이라는 가치를 평생에 걸쳐 실천하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처음에 힐데가르는 그가 바보 같다고 생각한다.

 

 

에르킨의 다정함을 힐데가르는 이해하지 못한다. 힐데가르가 죽을 게 뻔한 말(🐎)을 왜 굳이 살려야 하냐고 질문하자 에르킨은 그 말이 소년에게 소중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힐데가르가 내 것을 왜 타인에게 나누는지 이해하지 못하자 에르킨은 그들이 자신에게 소중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힐데가르는 강하고 에르킨은 약하다. 힐데가르는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기사지만 에르킨은 싸움도, 수영도 못하는 평범한 서민일 뿐이다. 힐데가르는 웬만해선 눈물을 흘리지 않지만 에르킨은 작품에서 수없이 눈물을 흘린다. 눈이 퉁퉁 붓도록 울고 또 운다. 독자들이 기대하는 멋진 로판 남주와는 거리가 먼 모습이다. 그래서인지 에르킨은 남주치고는 압도적으로 인기가 없다(캐릭터 인기투표 결과).

 

작가님 솔직히 말해봐요 얘 울리는 거 좋아하시죠

 

아무리 저물어도 다시 떠오르는 뜨거운 태양인 힐데가르와, 한 번 녹으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차가운 눈인 에르킨. 강력한 태양과 연약한 눈송이. 이것이 둘의 관계다. 겉으로는 그렇다.

 

바로 이 구도처럼

 

작품의 2부에서 에르킨은 마침내 부모의 죽음에 얽힌 사연을 알게 된다. 누구도 원망할 수 없는, 너무나도 잔인하고 끔찍한 과거 앞에서 그는 눈앞의 원수에게 칼을 꽂을지 고민한다. 그러나 끝내 원수를 죽이지 못한다. 대신 두 눈을 들어 진실을 마주한다. 당장 칼로 찔러 죽이고 싶은 원수 역시 실은 끔찍한 전쟁의 죄 없는 피해자이며 희생자라는 사실을.

 
"세상이 너무 끔찍해. 너무 끔찍해서, 어떻게 살아야 될지 모르겠어. 이런 세상에서 살아갈 자신이 없어. 난 끝까지 칼을 놓지도 못했어요. 속 시원하게 복수하지도, 완전히 용서하지도 못하겠어! 내가 너무 나약해요!"

 

작가님...노벨상 드려야 한다...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에르킨은 자신의 약함을 비관한다. 하지만 힐데가르는 이제 에르킨이 약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처음에 에르킨을 보며 '바보 같다'라고 생각하던 그녀는 어느 순간부터 그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었다. 죽일 수 있지만 굳이 죽이지 않는다. 나와 아무런 상관없는 사람이지만 내 것을 나눠준다. 그녀는 에르킨을 사랑하면서 점점 그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힐데가르는 에르킨에게 이렇게 말한다. 흔들리고 고통스러워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선을 향해 가는 네가 진정으로 강한 사람이라고. 그녀는 이렇게 덧붙인다.

 
"나는 그러지 못했으니까."

 

 

이 순간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하던 강함과 약함의 경계는 부서지고 흐트러져 뒤섞인다. 힐데가르는 강하고 에르킨은 약하다. 힐데가르는 전쟁을 끝내기 위해 선두에 서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우리 모두는 그녀가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걸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과거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에르킨은 그런 그녀를 집으로 데려와 돌보고 치료했다. 그녀는 적국의 장수였다. 이 돌봄으로 북부의 운명이 바뀌었다. 에르킨의 운명도 달라졌다. 무서운 일이다. 선의로 행한 일이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는 결과로 돌아오다니. 그러나 작중에서 에르킨이 과거 일을 후회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힐데가르가 적국의 장수라는 사실을 어린 에르킨이 알았어도 그는 그녀를 내버려 두지 않았을 것이다. 이 사실을 힐데가르가 알고, 에르킨이 알고, 독자도 안다. 에르킨은 그런 사람이니까. 돌보고 나누고 돕는 사람이니까. 힐데가르가 그를 사랑하게 된 건 그래서니까.

 

 

그녀가 더 이상 그를 약하다고 여기지 않게 된 건 에르킨의 가치관인 ‘돌봄’과 '나눔'을 인정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알지 못했던 세상의 따뜻함을 그에게서 배웠기 때문이다.

 

 

적장을 사랑하게 된 남자. 신분을 숨긴 여자. 파괴의 힘을 가진 여자, 치유의 힘을 가진 남자. 이처럼 <저무는 해, 시린 눈>은 로맨스 장르의 오랜 클리셰를 때로는 활용하고 때로는 비틀어 뒤집으며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녀는 전쟁터에서 많은 사람을 죽여 승리를 이뤄냈다. 사람들은 그녀가 영웅이라고 칭송했다. 영웅인 그녀는 강한 사람이었을까.
 

 

그는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고아였다. 전투에 나가본 적도 없고 싸울 줄도 몰랐다. 적국 사람들의 비아냥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원수 앞에서도 눈물을 흘리며 돌아섰다. 그는 약한 사람이었을까.

 

 

파괴의 힘은 강하고 돌봄의 힘은 약한 것일까. 파괴의 힘만을 추구하다 보면 모두의 인생이 전쟁터가 되어버리고 말 텐데. 그렇기에 힐데가르가 에르킨을 사랑하며 필요로 하는 것인데.
 

물론 에르킨도 힐데가르를 필요로 한다. 그녀에게는 그에게 없는 힘이 있다. 태양의 힘을 말함이 아니다. 인간 힐데가르가 어린 시절부터 전쟁터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책임지며 경험으로 터득한 힘이다.
 

전쟁터에서 그녀는 한 번 머뭇거렸다. 단 한 번일 뿐이었지만 그로 인해 많은 걸 잃었다. 돌로 얼굴을 찧으며 처절하게 후회했다. 이날 이후로 그녀는 망설이지 않는다. 주저하지 않는다. '망설임은 죽음을 부르며, 때로는 단호함이 자비가 될 때도 있는 법'이라는 배움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 법은 전쟁터의 법이며 기사의 법이다. 힐데가르의 결단력은 기사로 살아본 적 없는 에르킨이 가지지 못한 자질이다. 자신에게 결여된 힘을 가지고 있는 상대에게 그는 끌릴 수밖에 없다.

 
태양은 열기를 식혀줄 냉기를 원한다. 힐데가르에게 에르킨이 필요하다는 건 작품을 보는 모두가 안다. 그러나 눈에게도 냉기를 가시게 할 따뜻한 태양의 열기가 필요하다. 비록 그 열기가 눈을 녹여 사라지게 할지라도.
 

작가님..에르킨 죽이진 않으실 거죠? 에이 설마

 

저무는 해와 차가운 눈의 만남은 필연적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입힌다. 그러나 전쟁은 모든 인간에게 상처를 주는 끔찍한 사건이다. 살고 싶다면 상처를 딛고 나아가야 한다.

 

2부는 진짜로 정병 안 오게 이 꽉 물고 봐야 함. 과장이 아니라 2부 30화 보고 밤새 잠을 못 이뤘음

 

전쟁이 끝난 땅에서 눈은 녹고 태양은 식는다. 남은 것은 언뜻 폐허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작품의 뼈대를 이루는 신화는 예고하고 있다. 태양과 눈을 상징하는 두 사람이 만나서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사랑하게 되었을 때,

 
“그 덕에 땅에는 온기가 돌기 시작하고,
설산은 녹아 강이 되며-
그것이 지상의 비옥한 첫 봄이 되었다.”

 

현실에도 봄이 왔으면 좋겠다!! 언제 오냐 대체!!

 

지상에는 비로소 평화가 찾아올 것임을.

 

2. 달리는 기차에 중립은 없다 - 테리온 와이드헨과 선택의 딜레마

 

 

알브레히트 와이드헨. 남부 왕국의 기사단장인 그는 8년 전 평원 대전투에서 사랑하는 세 조카를 잃었다. 부대를 지휘하는 태양의 기사가 약속된 시간에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의 조카들은 오지 않는 후발대를 기다리며 선두에서 싸우다가 영문도 모른 채 찢기고 밟혀 죽었다. 소중한 친구이자 가족인 그의 제수는 아이들을 한꺼번에 잃은 후 미쳐버리고 말았다.

 

 
알브레히트는 전쟁이 끝나기만을 기다린다. 마침내 평화가 찾아오자 그는 이름 없는 성에 자신의 수족인 조카 테리온을 보낸다. ‘태양의 기사’의 정체를 알아내고 그녀를 마녀로 만들기 위해서. 마녀 사냥을 시작하기 위해서.

 
 

테리온 와이드헨은 남부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의 성인 '와이드헨'은 예로부터 왕가를 보필해 온 기사 가문이다. 왕의 최측근이지만 왕위를 탐내지는 않는, 권력을 지키는 감시견과도 같은 충직한 기사.

 

 

그에게는 원래 세 명의 손위 형제자매가 있었다. 나이 차가 큰 두 형과 누나는 모두 훌륭한 기사였기에 그에게는 별다른 의무가 주어지지 않았다. 어린 테리온은 뒤뜰에서 꽃과 새를 관찰하며 그림을 그리는 조용하고 섬세한 소년으로 자라났다.

 

금손 테리온
테리온은 확신의 infp라고 생각합니다. 주변 잉뿌삐들하고 성격이 똑같음


그러나 전쟁이 모든 걸 바꿔놓았다. 가문의 기둥이었던 두 형과 누이는 8년 전 평원 대전투에서 한꺼번에 전사했다. 하루아침에 장남이 된 어린 테리온은 형제들처럼 기사가 되어 북부인을 모두 처단하고 가족을 지키겠다고 결심한다. 그림을 그리던 관찰 실력으로 검술을 익힌다.

 

애들을 무슨 와랄라 갓기천사처럼 그려놔서 더 가슴이 아파

 

하지만 그가 기사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전쟁이 끝나버린다. 사라졌다 돌아온 태양의 기사가 압도적인 활약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어머니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멋지게 갑옷을 입고 귀향했지만 미쳐버린 어머니는 아들을 알아보지 못한다.

 

 

스무 살 테리온은 막막한 좌절감과 무력감을 가슴에 품고 '이름 없는 성'에 왔다. 한 번도 전투에 참여하지 못했기에 북부인들을 만나본 적조차 없는 그의 눈앞에 에르킨이 나타난다. 테리온은 혼란스럽다. 평생 북부인을 적으로 여겨 왔건만, 눈앞의 에르킨은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악마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다.

 

테리온이 상상으로 그린 북부인의 모습

 

작품이 진행되며 테리온은 끝없이 고뇌하고 흔들린다. 자신이 충성하는 숙부의 편에 서야 할까. 자신을 인간적으로 대우해 준 힐데가르의 편에 서야 할까. 힐데가르는 그의 원수다. 그러나 누이와 형제들을 전쟁에 내보낸 건 숙부를 비롯한 가족들이 아니었던가. 전쟁에 나간 이상 그들은 어떤 식으로든 죽을 수 있었다. 힐데가르에게 책임을 무는 게 옳을까.

 

 

뒤뜰에서 그림을 그리던 소년은 모든 것을 신중히 관찰하며 실은 이미 진실에 도달했다. 숙부는 사적인 복수심으로 명분 없는 마녀 사냥을 하고 있다. 태양의 기사는 잔인한 전쟁귀가 아니라 타의로 전쟁에 투입된 소녀일 뿐이라는 것을 그는 이미 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진실이 쉽게 보인다. 그러나 그 진실을 가지고 선택을 하는 건 여전히 어렵다.

 
테리온의 곁에는 ‘선택’이라는 주제가 항상 떠돈다. 테리온의 주변 사람들은 입을 모아 언젠가는 너도 선택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힐데가르도, 힐데가르의 하녀인 헤이시도, 알브레히트의 심복인 가레인도 그렇게 말한다. 다들 무언가를 선택하며 사는 거라고. 너도 다르지 않다고.
 

 

테리온은 복잡하고 입체적인 인물이다. 비현실적인 힘을 가진 힐데가르나 극적인 다정함을 가진 에르킨과는 달리 그는 이 작품에 등장하는 누구보다도 현실의 우리를 닮았다. 우물쭈물하며 망설이고, 너무 많이 고민한다. 큰 힘과 권력을 가진 인물에게 속수무책으로 휘둘리며, 책임 앞에서 겁쟁이처럼 도망친다. 그리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선택을 유보한다. 마치 우리들처럼.

 

 

‘정치적 중립’이라는 말이 가진 낭만적이고 달콤한 어감이 있다. 한국 사회에서 정치적으로 어느 한쪽에 서는 건 조심스럽고 불편한 일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어느 쪽도 편들지 않는 중립적인 사람이라는 걸 자랑스럽게 내세운다. 한국 사회가 독재냐 민주주의냐의 기로에 서 있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도 이런 태도를 유지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선택하지 않겠다는 선언조차도 선택의 일부라는 사실을 잊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출처: https://n.news.naver.com/article/047/0002461048
 

한 철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 같은 건 없다고. 작중 테리온은 ‘나는 아직 선택하지 않은 거야’라고 중얼거리며 어영부영 숙부의 마녀 사냥에 동참한다.


그러나 그의 의지와는 별개로 선택은 이미 이루어졌다. 테리온은 전설 속 기사도, 위대한 영웅도 아닌 평범한 청년이기 때문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역사를 선택하지 못한다. 그들은 역사에 연루된다. 역사적 사건은 그들의 의지와 관계없이 일어난다. 평범한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건 '어떤 사건에 개입할지'가 아니라 '사건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할지' 뿐이다. 오직 그뿐이다.


테리온은 운 나쁘게도 마녀 사냥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연루되고 말았다. 스무 살. 축제에서 신나게 춤을 추며 가슴 떨리는 연애를 시작할 나이. 원하는 꿈을 좇으며 희망찬 앞날을 그릴 나이. 마녀 사냥이 시작됐다. 발을 뺄 수는 없다. 가문의 앞날이 달려 있다.


기차는 달려간다. 그 끝이 아득한 절벽인지 안전한 역인지는 알 수 없다. 테리온은 기차가 싫다. 그는 걷고 싶다. 그러나 기차는 이미 역을 떠났다. 기차가 싫다고 뛰어내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간혹 그런 이들이 나타난다. 영웅이거나 미친놈이거나. 하지만 테리온은 평범한 사람이다. 내키지 않지만 기차에 계속 타있는다.

 

 
그의 눈앞에 마녀가 나타난다. 양자택일의 순간이 와버렸다. 화살을 쏠 것이냐 말 것이냐. 사실 답은 이미 내려진 지 오래다. '마음은 내키지 않지만 숙부의 결정을 따르겠다'는 입장이 테리온의 선택이었다. 그래서 그는 차갑게 식은 눈으로 힐데가르를 향해 화살을 쏜다.


화살을 쏘는 테리온의 뒤에는 가문과 숙부의 그림자가 있다.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라'는 힐데가르의 조언을 그는 결국 받아들이지 못한 걸까.

 

꽁꽁 얼어붙은 저해시눈 위로 테리온이 걸어갑니다🐈

 

(..쓰다 보니 징하게 길고 유료분 내용도 포함돼서 다음 편으로 넘어가기로 함)

저무는 해, 시린 눈

북부를 불태운 전쟁 영웅, 태양의 마녀 '힐데가르'.마녀에게 부모를 잃은 시린 눈의 북부인, '에르킨'.정체와 복수심을 뒤로 숨긴 채 가까워지는 두 사람.신화와 전쟁, 가호와 저주, 사랑과 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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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웹툰 <저무는 해, 시린 눈>의 초반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 소년이 있다. 소년이 나고 자란 곳은 북쪽의 차가운 땅. 그 땅에는 남색 머리에 푸른 눈, 굵은 뼈대를 가진 사람들이 산다. 그러나 소년의 고향인 북부는 이웃 남부와의 오랜 전쟁 끝에 패전한 상태다. 북부 연합국은 사라지고 남부 왕국 '모르메라타'의 영토가 되었다.
 

전쟁으로 소년은 부모를 잃었다. 고아가 된 소년은 친숙한 고향 마을을 떠나 한때 적국이었던 남부로 떠난다.
 

 
어린 시절부터 사냥보다는 채집이 좋았던 소년은 부모에게 배운 기술로 약제사가 되어 생계를 꾸려나간다. 한때 적국이던 북부의 고아 소년에게 남부 사람들이 마냥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그러나 따뜻하고 정직한 마음씨를 가진 소년은 이웃과 친구를 사귀며 남부에 정착한다.


뛰어난 약제사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청년 '에르킨'의 앞에 어느날 정체불명의 의뢰인이 나타난다. 의뢰인은 한 환자의 병증을 대며 약 처방을 요청한다. 환자는 마을 근처에 있는 '이름 없는 성'의 성주. 얼굴도, 이름도, 나이도, 성별도,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은 미지의 인물이다. 의뢰인은 에르킨에게 수수께끼처럼 오직 증상만을 알려준다.

 

 
말도 안 되는 요구다. 환자를 직접 만나보지도 않고 약을 처방하라니. 그러나 에르킨은 이 기묘한 요구를 받아들여 성주의 의원이 되기로 한다. 부모님의 원수이자 남부의 전쟁 영웅인 '태양의 마녀'에게 가까워질 기회였기 때문이다.
 

 
에르킨은 전쟁 중 부모님을 불타 죽게 만든 태양의 마녀에게 깊은 복수심을 품고 있다. 고향 마을을 떠나 적국인 남부까지 온 것도 사실은 그녀 때문이다.

 
그러나 패전국의 고아인 그가 왕이 아니면 얼굴조차 볼 수 없다는 신비로운 전쟁 영웅을 직접 만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에르킨은 이름 없는 성의 성주를 치료하는 의원이 된다. 귀족의 눈에 들어 힐데가르에게 접근하겠다는 실낱 같은 희망을 품은 채로.
 

 
이름 모를 성의 성주는 3층 침실에만 기거한다. 에르킨은 약제를 처방할 수는 있지만 성주를 직접 만나서 진단을 할 수는 없다. 3층은 소수의 측근들을 제외하고는 철저하게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당연한 클리셰지만 성주의 정체는 에르킨의 원수이자 전쟁 영웅인 '힐데가르 아일리우스'가 맞다. 그녀는 상처가 나도 저절로 낫고 몸이 두 동강 나도 죽지 않는 불로불사의 존재다. 태양의 힘인 '광열'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그녀는 십 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 홀로 전장을 누비며 남부를 승리로 이끌었다.

 
그러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주역인 그녀는 지금 어찌 된 영문인지 시골의 작은 성에 유배당하다시피 은거하고 있다. 게다가 원인 모를 병증으로 밤마다 끔찍한 고통을 겪는다.

 

 
힐데가르의 본모습을 아는 사람은 최측근인 기사 '그리셀다'와 하녀인 '헤이시' 그리고 일부 왕족뿐이다. 대중 앞에서는 항상 가면을 착용한다. 가면은 어린 나이부터 전쟁에 투입되었던 그녀의 왜소한 몸을 감추고 대중에게 위압감을 주며 그녀를 사람이 아니라 ‘전쟁 아이콘’으로 만드는 수단이기도 했다.  
 

 
힐데가르는 가면 없이 사람들 앞에 나서지 않는다. 그러나 에르킨이 '이름 없는 성'에 온 첫날 밤, 약 덕분에 오랜만에 병증 없이 잠에서 깨어난 그녀는 무심코 성을 돌아다니다가 에르킨을 마주치고 만다. 물론 맨 얼굴로 말이다.


 
처음에 그녀는 자신의 얼굴을 본 에르킨을 당장 죽여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모종의 이유로 살인을 잠시 유보한다.

 
자신의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중이라는 사실을 에르킨은 당연히 모른다. 힐데가르를 성주의 하녀로 착각한 그는 그녀에게 이름을 묻는다. 본명을 말할 수 없었던 힐데가르는 마침 눈에 띈 태양신 ‘카리야’의 조각상에서 따온 ‘카야’라는 이름을 즉석에서 지어낸다.

 
에르킨의 고향인 북부가 땅의 신 '누메타스'를 섬긴다면 힐데가르의 고향인 남부는 태양의 여신 '카리야'를 섬긴다. 카리야는 인간에게 불과 문명을 선사한 신이자 전쟁과 불멸의 여신이기도 하다.
 

 
자신도 모르게 원수를 치료하게 된 북부 남자 '에르킨'. 그리고 전장에서 수없이 살해했던 북부인의 손에 목숨을 맡기게 된 남부 여자 '힐데가르(카야)'. 그렇게 둘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된다.
 

남주라 그런지 감이 좋구나

 
평생 타인을 돌보며 치료사로 살아온 에르킨과 기사의 신분으로 전장을 누비며 살아온 힐데가르. 그들은 서로가 낯설다. 그러나 어쩐지 불쾌하지 않은 낯섦이다. 증오를 감춘 남자와 정체를 감춘 여자는 평화로운 변방의 성에서 함께 지내며 점점 서로에게 이끌린다.

 
가정사도 나누고,

소소한 모험도 함께한다.

 
위험에서 보호해준다는 핑계로 스킨십도 하고

 
야심한 밤에 따로 만나서 대화도 나눈다.

 

 
그는 그녀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고,

 

 
그녀는 그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궁금하다.

 

죽이려고 도끼 든 거 아님; 장작 패려고 든거임

 
그들은 어느덧 선물을 주고받고, 약속을 나누고, 서로를 의식하는 관계가 된다. 하지만 힐데가르는 알고 있다. 자신이 '태양의 기사'라는 사실을 밝히는 그 순간 이 다정한 관계는 깨어진다는 사실을.

 

 
그렇게 아슬아슬한 평화를 이어나가던 두 사람 앞에 어느 날 젊은 기사가 나타난다.


 
귀족 가문의 자재인 이 남자는 왕이 태양의 기사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보냈다고 주장하며 그대로 성에 눌러앉는다. 그러나 남자의 말은 궤변이다. 불로불사의 존재는 지킬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이 기사에게는 다른 의도가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일단은 그도 불타는 청춘이기에 하녀인 척 성을 돌아다니는 카야에게 한눈에 반해버리고 만다....(?)
 

 
... 여기까지는 2020년부터 네이버에서 연재되고 있는 웹툰 <저무는 해, 시린 눈>의 초반 줄거리다. 대충 흑발남주 x 먼치킨여주 클리셰 범벅 양산형 로판 중 하나처럼 보인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기에 연재가 시작된 지 4년이 지나 거의 완결을 향해 가고 있는 지금에서야 이 작품을 접했다. 그마저도 12.3 내란이 아니었으면 읽어보지 않았을 작품이다.
 

탄핵 가결 안했음 수괴 임기 800일 넘게 남음 ㅁㅊ

 
2024년 12월은 참으로 심란한 한 달이었다. 원래 <위키드> 시리즈를 열심히 읽고 리뷰를 쓰려고 준비 중이었는데 내란 이후로 순문학은 도무지 눈에 들어오지 않아서(계엄시국에 파시즘에 맞서 싸우다가 결국 패배하는 민중의 이야기인 위키드? 응 스트레스 받아서 죽을게) 오랜만에 이것저것 웹툰과 웹소설을 찾아봤다. 그러다가 우연히 눈에 들어온 이 작품. 아무 기대도 하지 않고 손을 댔다. 그냥 딱 킬링타임용 로판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리고 200화를 단숨에 읽었다. 유료분을 보기 위해 웹툰 앱을 다시 깔고 탈퇴했던 아이디를 살렸다. 그렇다. 나는
 
계엄 시국에 그만
 
인생작을 찾아버리고 말았다.
 

내란수괴야 너도 내 인생에 0.000000000001%나마 도움을 주는구나? 하나도 안 고마워

 
좋은 작품은 잠시나마 현실을 잊게 해준다. 그러나 다 읽은 다음에는 현실을 깨닫게 해 준다. 이 작품 덕분에 고맙게도 며칠 동안 내란성 우울증을 잊을 만큼 완벽하게 행복했다(작가님 감사해요). 그러나 마지막 연재 분량을 읽었을 때 나는 이 작품이 단순히 현실도피를 위한 양산형 로판이 아님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런 식으로 가볍게 소비하기엔 너무나 진지한 주제의식을 담은 작품이었으므로.
 

헤이시랑 레나드랑 먼 친척이라서 얘네 둘이 묘하게 닮은 걸 볼때마다 작가님이 존나 천재 같아 이 정도면 그림의 신 아니냐고

 
<저무는 해, 시린 눈>은 로맨스 판타지 장르에 속하지만 '전쟁'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그것도 아주 진지하게 다룬다. 한국인이라면 어딘가 기시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방식으로 말이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남부’와 ‘북부’, 그리고 둘 사이에서 일어나는 전쟁은 자연스레 6.25를 떠올리게 만든다.

 
전쟁이 끝난 뒤 분열된 사회와, 사람들의 마음속에 들어차 있는 증오 역시 지금의 한국 사회를 연상시킨다. 무지에서 비롯된 혐오에 물든 아이들, 자식이 용감한 시체가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어머니, 남부와 북부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하고 떠도는 청년 등 작품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현실을 거울처럼 반영하고 있다.
 

가레인이 주인공인 스핀오프를 보고 싶다

 
작가는 모든 인물을  놀라울 만큼 신중하게 다룬다. 흐릿한 인상의 하녀부터 얼굴조차 나오지 않는 문지기까지 모두에게 자신의 입장이 있고 이해관계가 있다. 왕족, 귀족, 기사, 평민, 북부인, 남부인 모두가 자신의 자리에서 역할을 다한다. 이야기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억지로 끌려 나와 이용당하는 캐릭터는 이 작품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작품을 보는 독자는 모든 인물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다.

 

 
이해가 곧 수용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해할 수 있다고 해서 그 캐릭터를 무작정 연민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건 아니다. 여전히 악인은 악인이고 배신자는 배신자다. 그러나 그의 행보와 감정이 작품 내에서 충분히 설명된다면 독자는 그 캐릭터를 하나의 입체적인 '인물'로서 바라볼 수 있다. <저무는 해, 시린 눈>이 바로 그 일을 해내는 작품이다. 한 작가가 만들었다기에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정교하고 단단한 세계. 오랜만에 긴 후기를 쓰고 싶게 만드는 정말 좋은 작품을 만났다.
 

잇츠 주접타임

 
이 댓글처럼 만신은 한국에서 웹툰을 연재하고 있다. 만신의 예명은 MURO. <저무는 해 시린 눈>은 그의 데뷔작이다. 어떻게 이런 완성도 높은 작품이 데뷔작일 수 있니.... 세상에는 넘볼 수 없는 천재들이 진짜로 존재하는구나 싶고ㅜㅜ 진짜 이런 거장들이 세상 어디에 숨어있을지 모르니까 장르 가리지 말고 이것저것 찍먹해봐야 행복한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겠구나 싶고ㅠㅠ 아니 대체 무로 작가님은 대체 어디서 어떤 삶을 살아오셨길래 이런 걸 그려요....? 앞으로 죽을 때까지 만화 그려 주셔야 합니다... 단행본 꼭 내주시고....
 

무덤에 들어갈 때 끌어안고 갈거야....단행본...

 
주접은 이만 떨고 내란 시국에 찾은 나의 인생작, <저무는 해, 시린 눈>에 대한 리뷰를 시작해 보겠다. 아무래도 스포일러가 있을 수밖에 없으니 작품에 대한 정보를 얻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이 창을 끄고 바로 네이버로 넘어가서 1화부터 쭉 완독하기를 권한다. 완결 나기 전에 꼭 보길 바란다. 후회 없는 시간이 될 테니까. 이래 봬도 강풀 순정만화 시절부터 유명작들 실시간으로 달리는 것도 부족해서 네이버 베도랑 다음 리그까지 챙겨봤던 웹툰 고인물의 추천이다...진짜 꼭 보세요 왜안보냐고 이 리뷰 당장 끄라고 난 혼자서 왈왈거릴 거니까

 

얼른 가세요
⬇️⬇️⬇️아래 링크로 ⬇️⬇️⬇️ 

https://m.comic.naver.com/webtoon/list?titleId=746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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