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은 밑바닥 낭떠러지
어두운 터널 속을 걷고 있어
내게 잔인하고 두려운 하루를
홀로 버티고 있어"
-Stray Kids, Hellevator -
떠도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누더기처럼 낡은 옷을 입고 공허한 눈을 한 채 깊은 지하세계에서 방황하고 있습니다. 마치 부랑아와 같은 모습입니다.
버려진 탄광처럼 보이는 낡은 콘크리트 구조물이 이들이 살아가는 공간입니다. 날씨는 항상 우중충하고, 폐허가 된 지 오래인 콘크리트 건물은 황량하고 싸늘합니다.
아이들이 생활하는 공간은 집이라고 부를 수 없을 만큼 모든 것이 다 엉망입니다. 벽에는 낙서가 가득하고 아무도 읽지 않는 책과 고장난 스피커가 바닥에 나뒹굽니다. 전등이 있지만 켜져 있지 않으며, 식물들은 모두 생기를 잃고 시들어 가고 있습니다.
교실처럼 보이는 공간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오래 전에 모두가 떠나가서 아무도 이용하지 않는 황량한 교실입니다. 아이들은 교실에서 더 이상 아무것도 배울 수 없습니다. 책과 책상, 공 같은 물건들이 상징하는 유소년기를 그들이 이미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이 끝났지만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아이들은 알지 못합니다. 그런 마음을 대변하듯 이들이 떠돌고 있는 지하는 어둡고 답답한 복도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말 붙이지 마
누굴 봐도 짖어 물어뜯어 찢어 찢어
말 붙이지 마
답답해 다 답답해
마주치지 마
물고 나면 질겨 씹어봐라 질겅 질겅
프리 데뷔 앨범에 '헬리베이터'와 함께 수록되어 있는 'Grr 총량의 법칙'은 이들의 이런 심리를 대변하는 곡입니다. 꿈도 목표도 없이 지하를 방황하는 아이들은 자신들이 괴물처럼 변해간다면서, 어른들은 그런 자신들을 이해하지 못한다며 날카롭게 가시를 세웁니다. 또한 아이들은 어둠 속을 얼마나 더 헤매야 하는지 몰라서 답답해 죽겠다고 소리칩니다.
그래도 아이들은 이 공간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즐겁게 지냅니다. 폐허에 있는 물건들을 던지고 휘감으며 장난치고 놀기도 하고, 밤에는 아무도 없는 길거리를 배회하며 마음껏 웃고 떠듭니다. 이들을 모르는 어른들의 눈에는 양아치나 부랑아처럼 보일 수도 있는 모습입니다.
이렇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도 가능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을 지배하는 공허함은 이 지하세계에서는 결코 채워지지 않습니다. 목적도, 의미도 잃어버린 허망한 나날일 뿐입니다.
방찬은 농구공을 가지고 있음에도 골대에 공을 넣지 않습니다. 스키즈의 리더인 방찬의 이런 모습은 아이들이 지하 공간에서 목적 의식을 모두 상실해버린 채 무기력한 상태라는 것을 암시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한은 답답한 지하세계를 벗어나 위로 올라가고 싶다는 꿈을 꾸기 시작합니다. 아이들 중 가장 먼저 꿈을 꾸기 시작하는 한은 섬세한 몽상가입니다. 한이 마음속에 품는 작은 꿈이 스키즈가 하게 될 긴 여행의 시작점입니다.
홀로 폐허를 거닐던 한은 엘리베이터를 발견합니다. 한이 꿈을 꾸기 전까지는 눈에 띄지 않았던 신비로운 엘리베이터입니다.
어서 들어오라는 듯 붉은 빛이 환하게 켜진 엘리베이터에 한은 홀로 탑승합니다.
엘리베이터는 7층까지 올라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7층으로 올라가는 버튼 자리에는 숫자가 아닌 hell이라는 글자가 있습니다. hell은 지옥을 뜻합니다. 한편 7이라는 숫자는 행운의 상징입니다.
지옥과 행운. 서로 반대되는 의미를 가진 이 두 단어는 아이들이 지상세계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상반된 감정인 두려움과 설레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또한 이 두 단어는 아이들이 앞으로 하게 될 모험을 뜻하기도 합니다. 이들이 가게 될 곳은 지옥도 천국도 아닌,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진 꿈의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hell로 가는 버튼을 누른 한은 두려움과 설렘이 뒤섞인 마음으로 눈 앞에 펼쳐질 풍경을 기다립니다.
지옥은 어떤 모습일까요? 영원한 불이 이글거리고 사람들의 비명으로 채워진 끔찍한 곳일까요? 아닙니다. 꼭대기 층에 도착한 한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아름다운 벌판입니다.
보라색 꽃이 가득 핀 들판에 두려운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이곳은 온통 조용한 가운데 새소리만 들릴 것 같은, 광활하고 고요한 야생의 공간입니다.
도무지 지옥이라고 믿을 수 없는 아름답고 몽환적인 보라색 들판. 아이들이 두려워하던 공간은 분명 이런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아이들은 지금까지 자기 안에 두려움에 갇혀 지상을 탐험해 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겁니다.
한편 지하에서는 사라진 한을 찾던 아이들도 엘리베이터를 발견합니다.
한데 모여 엘리베이터에 탑승하는 아이들은 모두들 처음에 한이 그랬던 것처럼 꼭대기 층에서 마주하게 될 것을 두려워하며 굳은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장면이 잠시 전환되어, 카메라는 한이 화염병을 던져 지하에 있는 것들을 불태우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이들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를 완전히 떠나며,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임을 암시하는 장면입니다.
불타는 것들은 아이들의 마음속에서 완전히 상실되고 마는 것들입니다. 의자는 아이들이 잠시 몸을 의탁했던 이 지하 공간, 아무것도 없지만 서로를 의지하며 즐겁게 뛰놀았던 쉼터를 의미합니다.
책과 공은 이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인 유년기와 학창 시절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분명 병을 던질 때는 불이었는데, 맞아서 깨질 때는 꽃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불과 꽃은 모두 젊음의 상징입니다.
아이들이 살던 터널은 꿈이 없는 암담한 지하세계입니다. 이제 이들은 이곳을 떠나 자신들의 청춘을 시험하기 위한 긴 여정을 시작합니다. 불이 꽃으로 바뀌는 장면은 이들의 여행이 비록 힘들고 고달플지언정 지하세계에서 꿈을 잃은 채 방황하는 것보다 훨씬 아름답고 찬란하리라는 암시를 줍니다.
한편 엘리베이터 바깥으로 나온 한은 낯선 공간을 달려가고 있습니다. 때마침 떠오르기 시작한 태양이 한을 비춰줍니다.
곧이어 다른 아이들도 한을 발견하고 함께 달리기 시작합니다. 붉은 아침 노을 아래에서 아이들은 자유로 가득한 넓은 들판을 마음껏 탐험합니다.
그런 스키즈의 눈앞에 무언가가 나타납니다. 그 무언가는 지상이 아닌 하늘에 있습니다.
아이들은 모두 멈춰서서 하늘을 바라봅니다.
아이들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거꾸로 뒤집어진 거대한 도시입니다. 떠오르는 태앙빛으로 붉게 물든 보라색 벌판에서,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거대한 도시를 마주한 스키즈 멤버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헬리베이터 뮤비는 끝이 납니다.
스키즈 세계관의 배경 '꿈'
스키즈 세계관을 이해하기 위해서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꿈입니다. 아이들의 여정이 꿈속 세계를 탐험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세계관을 제대로 해석할 수가 없습니다.
다양한 영화와 소설을 차용한 스키즈 세계관은 특히 영화 <인셉션>과 소설 <연금술사>, <1Q84>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 영화와 소설은 모두 꿈의 세계를 다루는 작품들입니다. 또한 스키즈 세계관은 꿈을 통해 인간의 무의식을 탐구하는 데 몰두했던 심리학자인 프로이트와 융의 이론에서도 많은 주제들을 빌려왔습니다.
먼저 인셉션 이야기를 해보자면, 이 영화에서 사람들은 드림머신이라는 장치를 통해 꿈을 타인과 공유하며 몽중몽과 자각몽을 꿉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교묘한 방식으로 타인의 꿈을 조종하고 꿈을 통해 타인에게 자신이 원해는 생각을 심어놓으려고 시도하기도 합니다.
스키즈가 지상으로 올라갈 때 이용하는 특별한 엘리베이터인 헬리베이터(Hellevator)는 터널 속에서 떠돌던 스키즈를 꿈의 세계로 안내하는 드림머신입니다. 처음으로 헬리베이터에 탑승하는 한은 꿈을 좇는 아이, 섬세한 몽상가입니다.
헬리베이터는 그런 한을 보라색 들판으로 데려갑니다. 꿈을 쫓는 아이의 앞에 나타난 첫 번째 꿈의 공간. 이 들판의 이름은 바로 백일몽입니다. 백일몽은 잠들어서 꾸는 꿈이 아닌, 깨어 있는 사람의 머릿속에서 펼쳐지는 꿈입니다. 즉 '보라색 들판'이라는 형태로 나타난 첫 번째 꿈은 아이들이 가진 몽상을 의미합니다.
풀어야 할 이야기가 많지만 일단 지금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아이들의 눈앞에 나타나게 될 보라색 들판이 백일몽의 공간이라는 사실만 기억해 두시길 바랍니다.
인셉션의 드림머신 개념을 차용한 헬리베이터 외에도 스키즈 세계관에는 아이들의 꿈속 여행을 나타내는 수많은 상징과 다양한 대중문화 레퍼런스가 등장합니다.
하지만 프리-데뷔 뮤직비디오인 헬리베이터 영상은 많은 걸 설명해주지 않습니다. 그저 유소년기를 떠나보낸 폐허 속에서 꿈을 잃고 방황하던 아이들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들판으로 모험을 떠나 하늘에 떠 있는 거대한 도시를 만난다는 단순한 줄거리만을 보여줄 뿐입니다.
이제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들은 결코 단순하지 않습니다. 스키즈는 데뷔 후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꿈속에서 헤매었습니다. 몽환적이며 때로는 혼란스러운 이들의 꿈속 모험담에 머리가 어지러워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아이들이 꿈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자신의 마음속을 탐험하면서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만 잊지 않는다면, 길을 잃지 않고 끝까지 1막을 함께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이제 이야기는 2장 'District 9'으로 이어집니다.
1장의 배경이 되는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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