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미하게 빛나던 빛이
선명해져 가네
You know we go up up yeah
we don't stop
나의 꿈이 내 손끝에 닿을 때까지
You know we go up up
till we touch the sky
내게 보이지 않아도 저 끝까지 가
This is our start line

Our start line"

 

-Stray Kids, 0325-

 

 
터널 입구에서만 머무르라는 시스템 지배자들의 메시지를 무시하고 밝은 빛을 쫓아 터널 깊숙한 곳으로 들어간 스키즈. 

 
이들이 어떤 건물로 들어가는 모습이 여전히 CCTV 카메라에 녹화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순간 화면에 기이한 잡음이 생기더니 스키즈가 입은 옷이 순식간에 MY PACE의 스포츠웨어에서 평범한 일상복으로 바뀝니다.


이 장면은 아이들이 MY PACE라는 조작된 꿈의 공간을 벗어나 I am YOU라는 새로운 공간으로 이동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MY PACE에서와 마찬가지로 I am YOU의 공간에서도 무의식의 피사체들이 나타나고, 그들은 여전히 어딘가를 향해 분주하게 달려가고 있습니다. MY PACE에서 스키즈는 이들을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I am YOU의 공간에서 현진과 필릭스는 달려가는 피사체들의 모습을 이상하다는 듯이 힐끔거립니다.
 

 
또한 앞장서서 걸어가던 한은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는 CCTV를 발견하고 떼어내서 버려버립니다. 이는 스키즈가 누군가가 자신들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인식하는 순간입니다. 
 

 
한이 CCTV를 떼어내는 장면은 아이들이 앞으로 가게 될 곳이 시스템의 감시에서 조금이나마 자유로운 장소라는 사실을 암시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지나가고 나서도 CCTV의 불빛은 여전히 깜빡거립니다. 시스템은 여전히 스키즈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도착한 새로운 장소는 허름한 옥상입니다. 잡다한 물건들이 옥상을 채우고 있습니다. 이번 이야기의 무대인 옥상은 아이들의 전의식(preconscious)이자 얕은 잠을 의미합니다.

 
얕은 잠에 대해서 먼저 말해보겠습니다. 수면 연구에 따르면 숙면을 취할 때 우리는 깊은 잠과 얕은 잠을 일정한 주기로 반복한다고 합니다. 처음 잠들 때는 얕은 잠에서 시작해 시간이 가면서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가, 잠시 뒤척이면서 다시 얕은 잠을 자는 식입니다.


앞서 시스템 지배자들이  꿈을 이용해 아이들을 지배하려고 한다고 설명했지요. 아이들이 더 깊은 꿈속으로 빠져들기 직전에 잠시 뒤척이면서 쉬어갈 수 있는 비몽사몽한 공간인 이곳은 지배자들의 감시에서 조금이나마 자유롭습니다.

 
다음은 전의식입니다. 옥상에는 스키즈의 기억과 생각, 감정들이 저장되어 있습니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의식과 무의식의 중간쯤에 있는 이 영역을 전의식이라고 부릅니다. 무한하고 신비로운 무의식과는 달리 전의식은 우리가 평소에 의식하지는 않지만 원하면 끄집어낼 수 있는 기억과 생각들이 들어있는 창고와 같은 곳입니다.

 
지배자들이 주입하는 혼란스럽고 조잡한 슬로건으로 가득했던 MY PACE의 터널 입구와는 달리, 옥상은 조작되지도 감시당하지도 않는, 온전한 아이들의 공간입니다. 그렇기에 옥상에는 스키즈의 개인적인 물건들이 가득합니다.


작은 들판, 스피커, 트램펄린, 필름 걸개, 농구대, 스탠드 조명, 빙빙이(marry go around), 카트, 낡은 소파 등등. 비록 낡은 옥상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사실 스키즈가 꾸는 모든 꿈은 모두 이 물건들을 재료로 삼아 펼쳐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스키즈의 개인적인 상징들로 채워진 옥상은 모험의 베이스캠프이자, 꿈을 이용해 아이들을 지배하고 감시하는 존재들로부터 도망쳐 잠시나마 숨을 고를 수 있는 피난처입니다. 앞으로도 스키즈는 깊은 꿈 속에서 모험을 한 뒤에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위-헬리베이터, 아래-I am YOU

 
기억과 생각의 조각들로 채워진 옥상에서 아이들은 낡은 핑크색 줄무늬 소파를 발견합니다. 이 소파는 그들이 헬리베이터의 부랑아 시절에 사용하던 것과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아이들은 마치 옛날로 돌아간 것처럼 즐거운 표정으로 소파에 앉아서 장난을 칩니다.

 
친숙한 물건들이 가득한 옥상에서 스키즈는 어둠이 내려앉을 때까지 스피커를 옮기고, 농구를 하고, 난간에 빨래를 널고, 작은 조명을 밝히고, 음식을 해 먹고, 직접 발전기를 돌려서 TV를 보고, 카트에 올라타 장난을 치기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MY PACE의 불안한 지직거림과 기이하게 고조된 분위기는 이제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일상적인 일들을 하면서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마치 에 돌아온 것처럼 편안하고 안락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있는 곳은 현실의 쉼터가 아닙니다. 스키즈는 지금 자신들의 기억과 관념으로 이루어진 옅은 잠의 공간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방찬이 앉아 있는 의자와 그 옆에 자리한 식물이 진짜가 아니라 벽에 분필로 그려놓은 그림일 뿐이라는 사실이 이를 암시합니다.

 
아이들의 관념에 의자가 존재하지 않는 이유는 헬리베이터 뮤비 속에서 불타버렸기 때문입니다. 불타버린 의자는 부랑아 시절 사용했던 숙소인 콘크리트 터널을 의미합니다. 그곳은 이제 다신 돌아갈 수 없게 되었지만, 스키즈의 리더 방찬은 존재하지 않는 의자에 앉아 자신들이 STAY 할 수 있는 진정한 안식처를 꿈꿉니다.

 
한편 리노 뒤에 있는 오븐과 냉장고에는 커다란 글씨로 오븐, 냉장고라고 쓰여 있습니다.

 
또한 리노가 바라보고 있는 건 캠벨 사에서 만든 유명한 통조림 수프입니다. 우리가 캔 안에 수프가 들어있다는 사실을 아는 건 캔에 '수프'라고 쓰여 있기 때문이죠. 이름이 적힌 냉장고와 오븐, 그리고 통조림은 아이들이 머무는 옥상이 이름을 적어놓아야 사물의 정체를 알 수 있는 몽롱한 잠의 세계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장치입니다.
 

또한 이 장면은 시스템 속에서 칠판에 의미 없는 문자들을 적었던 리노가 옥상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주변의 사물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창빈은 간이 샤워박스처럼 보이는 공간에 서서 노래를 부릅니다. 샤워기에서는 끊임없이 물이 쏟아져 나오고, 뜨거운 물이 만들어내는 수증기가 화면을 뿌옇게 뒤덮습니다. 2장에서도 강조했지만 안개는 을 의미합니다. 앞서 이 옥상이 전의식이며 이 공간에 있는 물건들은 아이들이 꾸는 꿈의 재료라고 설명했습니다. 옥상 위에 있는 샤워기는 안개의 출처이자 꿈의 원천입니다.
 

샤워기 앞에서 창빈은 눈을 가립니다. 수용소 안에서 시스템의 균열을 깨달았을 때도 창빈은 눈을 가렸습니다. 창빈은 왜 자꾸 이런 동작을 하는 걸까요.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

 
아이엔은 옥상 위 작은 갈대밭 앞에 쓸쓸한 표정으로 서있습니다. 이 갈대밭은 아이들의 소중한 '보라색 들판'에 대한 기억이 만들어낸 장소입니다. 이곳 역시 샤워기에서 나온 뿌연 안개에 온통 뒤덮여 있습니다.

 
카메라는 물에 비쳐 일렁이면서 두 사람으로 쪼개지는 듯한 아이엔의 모습을 담습니다. 아이엔의 머리 위에 있는 달도 물 위에서 흔들리며 둘로 갈라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처음으로 두 개의 달이 등장하는 겁니다. 두 개의 달은 스키즈 세계관에서 가장 중요한 상징으로, 두 가지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첫째. 달은 아이들의 자기(self)를 의미합니다. I am YOU의 옥상에서 처음으로 달이 나타난다는 것은 수용소 안에 갇힌 채 억압당하던 또 다른 나, 스키즈의 '자기'가 MY PACE의 조작된 꿈을 거쳐 옥상이라는 개인적인 공간으로 들어오면서 서서히 움트기 시작했음을 뜻합니다. 이 상징에 대해서는 뒤에서 좀 더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둘째. 두 개의 달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에서 가져온 상징으로, 비현실적인 꿈의 세계를 뜻합니다. 1Q84의 배경은 두 개로 갈라진 세계입니다. 1984의 세계에 하나의 달이 있다면, 1Q84의 세계에는 두 개의 달이 있습니다. 소설 속에서 사람들은 달을 보고 두 세계를 구별합니다.

 
‘달이 두 개 떠 있어. 그것이 선로가 바뀌었다는 징표야. 그것으로 두 개의 세계를 구별할 수 있어. 하지만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두 개의 달이 보이는 건 아니지. 아니, 오히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해.’ 

무라카미 하루키, 1Q84

 

스키즈 세계관에서도 두 개의 달은 아이들이 꿈의 세계에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장치입니다.


얕은 잠의 공간인 옥상에서 두 개의 달은 마치 물에 비쳐 일렁거리는 그림자처럼 흐릿하게 분리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앞으로 점점 더 깊은 꿈속으로 빠져들면서 두 개의 달은 점차 서로 멀어지고 형태 또한 선명해질 것입니다.


 
한은 스피커들 앞에 있습니다. 뿌연 안개에 감싸인 채 쌓여 있는 스피커들은 마치 빌딩 숲을 축소해놓은 것 같은 모습입니다. 헬리베이터에 가장 먼저 탄 아이인 한은 한결같은 마음으로 도시라는 꿈을 추구해 왔습니다.


스키즈의 상념들이 온갖 사물들로 표현된 옥상 공간에서 그 도시는 스피커의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스피커는 음악을 듣는 도구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스키즈가 앞으로 해야 하는 것은 스피커가 아니라 마이크를 쥐고 자신들의 음악을 만들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스피커 앞에서 한은 창빈, 필릭스와 함께 입을 가리는 제스처를 취합니다. 아이들이 아직 자신들만의 온전한 꿈을 발견하지 못했으며, 시스템 지배자들이 주입하고 통제하는 꿈속에 갇혀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장면입니다.

 
스피커가 도시를 나타낸다는 것을 암시하는 장면은 <갑자기 분위기 싸해질 필요 없잖아요> 뮤직비디오의 여러 장면에서도 나타납니다. 뮤직비디오의 앞부분에서 한은 스피커들 위에 누워서 기타를 연주하는 포즈를 취합니다.

 
또한 뮤직비디오의 끝부분에서 아이엔은 스피커를 들고 자리를 뜨며 "(이건)제겁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떠난 자리에 놓여 있는 소파에는 'NOTHING IS FOR ME'라고 적혀 있습니다. 스피커의 모습으로 표현된 꿈속 도시가 결코 스키즈의 것이 될 수 없음을 의미하는 장면입니다. 남이 만든 음악을 듣기만 해서는 결코 자신의 음악을 만들 수 없음을 뜻하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옥상에서 승민은 카메라를 들고 아이들의 사진을 찍습니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승민이 찍은 사진을 확인하기 위해 주변으로 몰려듭니다. 언뜻 보기에는 그저 훈훈한 광경입니다. 하지만 이 장면을 제대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스키즈 세계관 내에서 승민의 역할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스키즈 세계관에서 승민은 자신도 모르게 시스템에 가장 깊게 세뇌된 인물입니다. '갑분싸' 뮤직비디오에서 승민은 공중전화를 들고 어딘가로 연락을 합니다. 감시자들에게 스키즈에 대한 정보를 알리는 듯 보이는 장면입니다.

 
지금도 그는 끊임없이 아이들의 사진을 찍어 시스템 지배자들에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승민이 카메라를 들고 있다는 건 아이들이 여전히 감시를 당하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6장에서 현진에게 카메라를 빼앗길 때까지 승민은 계속해서 아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시스템 지배자들에게 전달하게 됩니다.

멋지다 현진아

 
한편 현진은 조명을 고치고 있습니다. 2장에서 현진이 스키즈 아이들 중에서 가장 능동적이며, 적극적으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애쓰는 인물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말하자면 현진은 세계관 속에서 주인공이나 다름없는 사람입니다. 그런 현진이 부서진 조명을 열심히 수리합니다.

 
마침내 조명을 고치는데 성공한 현진은 하늘을 향해 빛을 쏘아 보냅니다.
 
 
2장의 배경이 되었던 쓸쓸한 가짜 도시에서 허공을 향해 빛을 보내는 조명들을 연상시키는 모습입니다.

위-I am YOU 뮤직비디오, 아래-영화&lt;베트맨&gt;

 
또한 베트맨 영화를 봤던 사람이라면 유명한 장면 하나가 저절로 떠오를 겁니다. 고담시에 갇힌 시민들이 베트맨에게 구조 신호를 보내는 장면입니다. 이 세계가 현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벌써 눈치챈 현진이 자신들을 구해줄 사람에게 구조 신호를 보내는 걸까요? 그렇다면 그 사람은 대체 누구일까요?


사실 현진이 조명을 쏘아올리는 장면에는 작은 퍼즐 조각이 숨겨져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퍼즐을 맞출 때가 아니므로 일단 지나가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주인공 역할을 하는 현진이 세계관 속에서 스키즈의 자아(ego)를 의미하는 인물이라는 것만 알아두시면 좋겠습니다.

 
화면은 곧 전환되어 트럭 짐칸에 실려 터널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스키즈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전편에서 말했던 것처럼 터널은 잠을 의미하는 상징입니다. 이 장면은 옥상에서 얕은 꿈을 잠을 자며 뒤척이던 아이들이 다시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지난 장까지만 해도 분명 터널 입구에서 두 발로 걷고 있었는데, 이제는 트럭 짐칸에 짐짝처럼 실린 채 빠른 속도로 안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스키즈의 꿈속 여행에 가속도가 붙고 있는 겁니다. 이제 터널 입구는 눈에 보이지도 않습니다. 아이들은 원하건 원하지 않건 잠 속으로 깊이 빠져듭니다.


 
터널 속으로 들어가는 스키즈의 모습이 지나가고, 화면이 전환되면서 방찬과 아이엔의 얼굴이 겹쳐집니다. I am YOU라는 노래의 후렴구가 흘러나오는 것도 바로 이때입니다. 
 

I am YOU, I see me in you
너와 있을 때 난 알 수 있어
같은 공간 속에서, 같은 시간 속에선
뭐든 이겨 낼 수 있어
I found YOU, I found me in you
그 안에서 나의 모습이 보여
같은 공간 속에서, 같은 시간 속에서
Let me run, let me run, let me run along with YOU

 

언뜻 보기에 이 가사는 I am WHO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처럼 느껴집니다. I am YOU라는 곡이 I AM 시리즈의 마지막 활동곡이기에 그렇게 생각하기가 더 쉽습니다.


I am NOT이라고 외치며 시스템 바깥으로 탈출한(혹은 그렇게 믿고 있는) 스키즈가 I am WHO라는 질문을 던지고, 마침내 나는 바로 너였다는 해답을 발견하는 거지요. 여기서 '너'는 대충 팬들이나 동료들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이처럼 이 문장은 스키즈가 하나의 완결된 결론을 내리고 시리즈를 완결지었다고 착각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만약 아이들이 여기서 해답을 찾았다면 얼굴이 겹쳐진 방찬과 아이엔은 뭔가 알아차린 듯 기쁜 표정을 하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내가 너고, 네가 나라는 깨달음을 얻고 여행을 마무리하면 되니까요. 하지만 서로 너무나 다르게 생긴 두 사람의 얼굴은 여전히 어둡기만 합니다.


 
이런 어두운 얼굴은 I am YOU의 티저 이미지 속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티저 이미지 속 한, 필릭스, 방찬, 리노는 어두운 표정을 한 채 어딘가 먼 곳을 응시하고 있습니다(나머지 넷은 뒤쪽에서 다루겠습니다).

 
전체 티저 이미지 속에서도 한 사람만 빼고 모두의 얼굴이 어둡습니다.

 
티저 이미지 속 스키즈의 어두운 얼굴, 서로 조금도 닮지 않은 방찬과 아이엔의 우울한 표정. I am YOU라는, 어떠한 탐구의 최종 결론이 되기에는 너무나 어색하고 이상하며 말이 안 되는 문장. 이 모든 어긋남은 I am YOU가 이야기의 마무리가 아니라 시작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지난 장에서 감시자들에게 쫓기며 조작된 꿈을 꾸던 스키즈는 자신의 기억과 관념들이 압축된 옥상이라는 개인적인 공간으로 잠시 피신합니다. 옥상에는 다양한 상징물들이 있고, 그곳에서 아이들은 현실을 모방한 다양한 행위들을 하면서 장난을 치고 놀이를 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아이들의 자아는 황폐하고 힘없는 I am NOT 상태를 지나 점점 개성과 힘을 되찾습니다. 이는 융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아의 개성화(individuation)과정을 닮아 있습니다.

 
그 후 스키즈는 달의 형태로 나타난 자기(self)를 발견합니다. 융 심리학에 등장하는 개념인 '자기'는 현진이 상징하는 자아(ego)와 함께 인격을 구성하는 개념입니다. 달을 목격한 아이들이 자신 안에 또 다른 존재가 있음을 희미하게 직감하면서 노래하는 문장이 바로 I am YOU입니다.


그러므로 스키즈 세계관에서 I AM 시리즈는 한 이야기의 완결이 아니라 꿈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탐구하는 긴 여행의 입구입니다. 물론 언젠가 이 말이 결론이 될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펼쳐진 이야기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좀 더 자세한 설명을 위해, I am YOU가 발매되기 전 앨범인 I am WHO 시리즈에 속하는 두 곡을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곡은 MIRROR입니다. 스키즈 세계관에서 미러, 즉 거울은 자기(self) 탐구에 쓰이는 장치입니다. 'District 9' 트레일러에서 필릭스는 가짜 도시의 옥상에서 거울을 바라보면서 춤을 추었지만, 곧 그 행위에 공허함을 느끼고 거울을 깨트렸습니다.

 
MIRROR 뮤직비디오에서 스키즈는 밝은 불빛이 일정한 주기로 번뜩이며 지나가는 어두컴컴한 흑백 공간에 있습니다. 지하실처럼 보이는 이 공간은 스키즈의 마음속을 나타냅니다. 이곳이 이처럼 답답하고 색이 없는 것은 수용소에서 뛰쳐나온 아이들의 마음이 황폐하고 텅 비어 있기 때문입니다.


시스템을 뜻하는 불빛에 끊임없이 쫓기면서, 아이들은 거울을 상징하는 페어 안무를 춥니다. 거울 너머에 있는 또 다른 나는 누구일까. I am WHO라는 질문을 던지는 거지요.

 

혼란 속에 갇혀 나도 아직 날 잘 몰라서
너는 아니 답이 없는 내게 또 물어
You make me cry 내 손을 잡아줘
네 앞에서 날 바라본다
거울 속에 비친 난 미로 (난 미로) eh
내 안을 비춰줄 my mirror (my mirror) no
어디서 찾아야 할까
For once I wish I could see myself
난 계속해서 찾아 헤매고 있어

 

그러나 MIRROR라는 곡은 명쾌한 해답을 내리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자신이 누군지 찾아 헤매는 중이라고 외치다가, 결국 나도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고 이제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계속 달려야겠다는 결론을 내리면서 끝을 냅니다.

 

내가 누군지 나도 모르지
시킨 대로 여기까지 왔던 memories
어디가 내가 가라는 길 걸어가
묻지 마 일단 뛰는 게 우선이야

 

 
다음 노래는 M.I.A입니다. MY PACE 와 함께 공개된 M.I.A 뮤직비디오에서, 스키즈는 온통 화면과 전선으로 둘러싸인 작은 방 안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어딘가 달라지고 있어
아무리 숨겨도 다 볼 수 있는 걸
다른 사람과 얘기를 하는 것 같아
어색해져 너와 있을 때

 

 
언뜻 보기에 아이들이 찾고 있는 M.I.A는 변해버린 친구나 연인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뮤직비디오에서 스키즈 앞에 있는 건 다른 누군가가 아닌 또 다른 나입니다.

 
그러니까 가사에서 말하는 '뭔가 좀 달라진 듯이' 보이는, '나쁘진 않은데 어색한', '다른 사람' 같은, '어두운 표정으로 쳐다'보는, '변한 모습이 적응'되지 않는 건 다른 누군가가 아닌 바로 스키즈 자신입니다. 아이들은 그런 자신을 마주하는 것이 두렵지만, 그렇다고 피하고 싶지도 않다고 노래합니다.
 


널 보는 게 두려워지기 싫어
너의 눈을 피하기도 싫어


 

 
M.I.A 뮤직비디오에서 아이들의 모습은 계속해서 카메라에 찍히고 TV에 녹화되며 CCTV를 통해 전송됩니다. 시스템 지배자들이 아이들을 계속해서 감시하고 있는 겁니다. 창빈이 CCTV 카메라를 향해 그만 좀 쳐다보라고, 제발 자신들을 그만 감시하라고 소리쳐 보지만 그들이 이 외침을 들어줄 리 없습니다.

 
이처럼 MIRROR에서 쫓기고, M.I.A에서 감시당하는 불안하고 절박한 상황에서도 스키즈는 계속해서 I am WHO라는 질문을 던지며 자신의 마음을 탐구합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하지만 결국 I AM 시리즈의 마지막 공간인 옥상에서 스키즈가 마주한 것은 속 시원한 해답이 아닌 고작 '달'입니다. 그 달조차도 확실한 형태가 아니라 물에 비친 그림자처럼 불분명한 모습입니다.


달의 모습을 한 어떤 존재가 거울 너머 어딘가에서 희미하게 일렁이고 있다. 아이들은 그 누군가가 자신이라는 것을, I am YOU라는 것을 직감합니다.

 
그러나 아직 이들의 직감은 바람이 불면 흩어져버리는 물그림자처럼 그저 희미한 느낌에 불과합니다. I am YOU라는 문장이 이 장에서 해석될 수 없는 건 바로 그래서입니다.


아직은 때가 아닙니다. 아이들이 이 문장의 의미를 온전히 알아내기 위해서는 터널 깊은 곳으로 들어가 꿈의 하이라이트를 맛보고 무의식이 창조해낸 세계를 탐험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네 명의 아이는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에서 다른 아이들과 조금 다른 역할을 맡게 될 것입니다. 티저 이미지에서 창빈과 승민 역시 먼 곳을 바라보고 있지만, 두 사람은 어딘지 모르게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아이들과 다릅니다. 승민이 어떤 사람인지는 이번 장에서 벌써 밝혀졌지만, 창빈의 역할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한편 아이엔과 현진은 다른 아이들과 달리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두 사람이 어느 시점부터 자신들이 꿈 속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각몽을 꾸게 될 것임을 암시합니다. 주인공이자 아이들의 자아를 의미하는 현진의 얼굴은 혼자 커다랗게 클로즈업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엔은 단체 티저 이미지에서 혼자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이제 다시 옥상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앞서 스키즈를 꿈속으로 빠져들게 만들고, 꿈의 층들을 여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드림머신'으로 헬리베이터와 버스를 소개했습니다. I am YOU의 옥상에서는 또 다른 드림머신이 등장합니다. 바로 옛날 놀이터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던 놀이기구인 빙빙이입니다.

 
빙빙이는 버스처럼 남이 운전하거나 엘리베이터처럼 버튼을 눌러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스키즈가 직접 돌리는 기구입니다. 즉 이 빙빙이는 피상적인 가짜 꿈을 벗어나 진정한 자신의 꿈속을 탐험해보고자 하는 아이들 스스로의 적극적인 의지가 반영된 장치입니다.
 

또한 빙빙이는 헬리베이터처럼 아이들을 꿈속 공간에서 물리적으로 이동시키는 장치가 아닌, 꿈의 가속기 역할을 하는 장치입니다. 잔뜩 신이 난 스키즈를 태운 빙빙이가 힘차게 돌아갈수록 아이들은 점점 더 깊은 꿈속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이 기구는 8장에서 다시 등장합니다.
 

 

스키즈 세계관 속 3가지 드림머신

헬리베이터 - 꿈과 꿈 사이를 이동하는 근원적인 꿈의 이동 장치. 버튼과 열쇠로 작동한다.
버스- 시스템 지배자들이 보낸, 아이들을 잠들게 만드는 장치. 지배자들이 운전해서 작동시킨다.
빙빙이- 꿈속으로 점점 더 깊게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꿈의 가속 장치. 아이들이 직접 돌려서 작동한다.

 

 
장면이 전환되어 카메라는 트램펄린에 누워있는 아이들을 비춥니다. 이른 새벽인 듯한 시간. 모두들 신나게 놀다가 지켜 곯아떨어진 와중에 창빈만 혼자 깨어 있습니다. 앞서 여러 번 말했지만 창빈은 세계관에서 다른 아이들과 결이 다른 인물입니다. 그런 창빈이 잠든 아이들 틈에서 혼자 잠들지 않은 건 어떤 의미일까요. 이 또한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창빈은 또다시 눈을 가립니다. 그런 그를 마지막으로 아이들은 모두 곤히 잠들었습니다.
 

 
날이 밝았습니다. 꿈속의 잠에서 깨어난 스키즈는 간밤에 꿀잠을 잤는지 상쾌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언뜻 보기에는 모든 것이 평화롭고 명확합니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수용소를 탈출해서 District 9이라는 그들만의 왕국을 만들고 감시자들이 지켜보는 터널을 탈출해 옥상이라는 휴식처를 찾았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옥상에서 즐겁게 노래를 부르는 스키즈의 눈앞에 다시 한번 거대한 도시가 나타납니다. 아이들은 기대감에 부풀어 안개에 싸인 도시를 바라봅니다. 보라색 들판에서부터 꿈의 도시를 찾아왔던 스키즈. 그런 아이들의 눈앞에 또다시 펼쳐진 도시는 어떤 모습일까요. 아이들은 이 곳에서 마침내 자신의 소망을 실현하고 여행을 마무리 지을 수 있을까요.

 
I AM 시리즈가 끝나고, CLE 시리즈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야기는 이제 제5장 'CITY JUNGLE'로 이어집니다.

 

4장의 배경이 되는 영상

"Mirror" Performance Video - 2018.04.23 공개
"M.I.A." Performance Video - 2018.08.19 공개
"갑자기 분위기 싸해질 필요 없잖아요" M/V - 2018.08.27 공개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