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바람에는 미지의 것들과 황금과 모험,
그리고 피라미드를 찾아 떠났던 사람들의
꿈과 땀냄새가 배어 있었다.
산티아고는 어디로든 갈 수 있는
바람의 자유가 부러웠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자신 역시 그렇게 할 수 있으리라는 사실을.
떠나지 못하게 그를 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자신 말고는.
-파울로 코엘료, 연금술사-
'바람' 트레일러는 신호등을 보여주면서 시작합니다.
차량등에 파란불이 들어와 있습니다. 보행자는 아직 길을 건널 수 없습니다.
4명으로 나뉘어 선 스키즈는 사거리를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서 서로를 마주 보면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립니다.
장면이 전환되어, 승민이 홀로 CITY JUNLE이 있었던 L층에서 엘리베이터에 탑승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승민은 왜 이제 와서 다시 L층으로 온 걸까요? 스키즈 세계관에서 멤버들은 꿈속을 탐험하는 여행자임과 동시에 각자 심리학적 상징을 가진 인물로 나타납니다. 지금까지 밝혀진 역할에 따르면 필릭스는 인간의 마음(mind)을 의미하는 인물이었고, 한은 꿈을 상징했습니다. 또한 가장 능동적으로 움직이며 주인공 역할을 했던 현진은 아이들의 자아(ego)를 의미하는 인물이었습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에서 승민은 스키즈를 쫓아오는 시스템 지배자들에게 가장 깊게 세뇌된 인물이었던 동시에, 마음의 지도를 그리는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서로 상반되어 보이는 이 두 역할이 어떻게 승민이라는 한 사람 속에 함께 있을 수 있었던 걸까요?
좀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 1장에서 스키즈 세계관이 '꿈속을 여행하며 성장하는 이야기'라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즉 뮤비 속 스토리는 단순히 나쁜 어른들이 만든 수용소에서 도망쳐 나온 아이들과 그들을 붙잡으려는 사람들이 쫓고 쫓기며 추격전을 펼치는 스릴러 영화 같은 이야기가 아닙니다.
유년기를 막 벗어났지만 아직 진정한 자신을 찾지 못한 채 어둠 속을 헤매는 인간이 꿈을 통해 무의식 속으로 들어가 자신의 마음을 탐구하고, 자기(self)를 인식하고, 콤플렉스를 극복하며 진정한 꿈(소망)을 찾고, 마침내 성장을 이루어 자유를 찾은 뒤 꿈속 공간을 벗어나는 것이 이 세계관의 진짜 스토리입니다.
디스토피아적 요소를 가진 <1Q84>와 대놓고 디스토피아 소설인 <멋진 신세계>를 오마주한 스키즈 세계관은 인간의 자기 탐구를 방해하는 것이 감시와 통제로 가득한 억압적인 사회라는 것을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 이야기의 주제는 성장입니다.
그러나 스키즈를 CCTV로 감시하며 이들의 꿈을 조작하고 설계하는 자들, 즉 'MIROH' 뮤비에서는 사자와 호랑이로, 'Chronosaurus' 뮤비에서는 톱니바퀴로 표현된 시스템 지배자들은 스키즈가 자신의 마음을 온전히 탐구하며 자기(self)를 인식하고 성장하는 것을 끊임없이 방해합니다. 사실 이들이 스키즈를 방해하는 데는 나름의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 장이자 마지막 장에서 밝혀질 예정입니다.
2장에 등장했던, 가짜 도시의 모습을 한 수용소는 스키즈의 성장을 방해하는 획일적인 사회를 묘사한 것이었습니다. 이 도시에서도 거울을 통한 자기 탐구의 시도가 이루어지고 문화, 예술, 종교, 학문처럼 보이는 활동들이 일어나지만 'I am NOT' 트레일러에 등장하는 칠판에 쓰인 단어들처럼 무의미한 가짜에 불과합니다.
도시의 모습을 한 수용소 안에서 그림을 그리며, 수용소 밖으로 나왔을 때조차 시스템 지배자들을 위해 봉사하는 승민은 세계관 속에서 초자아/이성을 의미하는 인물입니다. 6장까지 그는 끊임없이 사진을 찍으면서 다른 아이들을 감시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쉬지 않고 마음의 지도를 그려 결국은 림보에서 탈출하는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지도를 그리는 일은 탐구와 해석을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마음을 감시하기도 하고 탐구하기도 하는 승민은 인간의 자기 탐구에서 이성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 질문을 던지게 만드는 캐릭터입니다.
6장에서 승민이 아직 감시자의 역할을 하고 있었을 때, YW의 울타리 앞에서 현진은 승민이 자신들의 사진을 찍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립니다. YW는 무의식의 입구입니다. 본격적인 무의식으로 들어가 자기 탐구를 계속해 나가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사진을 찍으며 스키즈를 지켜보는 초자아의 감시와 억압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래서 현진은 승민의 카메라를 빼앗아서 땅에 버렸습니다.
그것이 시초가 되어, 현진과 승민이 다투기 시작합니다. 자아와 초자아가 무의식의 입구에서 충돌합니다.
인간의 의식을 이루는 두 가지 중요한 요소가 무의식의 입구에서 싸움을 벌이는 와중에, 필릭스의 모습을 한 마음은 혼란에 빠져듭니다. 그 결과 스키즈의 첫 번째 무의식 탐험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카메라가 없는 림보에서 승민은 더 이상 아이들을 감시하지 않습니다. 대신 승민은 마음의 탐구자가 되어 미완성 상태였던 지도를 완성합니다.
사실 승민이 정말 원했던 건 손으로 그림을 그리고, 기록하고, 발견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탐구하는 일이었습니다. 시스템이 부여한 역할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워진 승민이 마음의 감시자가 아닌 마음의 탐구자가 되었다는 사실은 인간 이성의 양면성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설정입니다. 내면의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를 감시하고 통제하는 행위를 잠시 그만두고 마음을 잘 살펴보며 탐구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세계관을 만든 사람은 말하고 싶은지도 모릅니다.
이제 승민은 다시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공간이자 의식의 밑바닥인 L층으로 돌아와 꿈의 엘리베이터에 탑승합니다. 층이 점점 더 올라갑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던, 헬리베이터의 꼭대기 층인 7층보다 더 놓은 곳에 있는, 존재하지 않는 층인 8층이 나타납니다.
승민의 얼굴에 가벼운 바람이 스치고 지나갑니다. 승민은 눈을 감고 불어오는 바람을 느낍니다.
바람이 지나가고, 누군가의 손이 승민 앞에 나타납니다. 승민은 그 손을 잡으려고 시도합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갑자기 조명이 깜빡거리고 엘리베이터가 덜컹거리기 시작합니다. 불안해진 승민은 고개를 들어 천장을 쳐다보는데 정신이 팔려 결국 자신의 앞에 내밀어진 손을 잡지 못합니다.
이윽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한이 탑승합니다. 엘리베이터는 여전히 불안하게 덜컹거립니다.
한은 엘리베이터를 고치려고 아무 버튼이나 눌러 보지만, 별 효과가 없습니다.
승민과 한이 타고 있는 엘리베이터에 마지막으로 탑승한 사람은 방찬입니다. 그러나 방찬이 탄 이후로도 엘리베이터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혹시나 싶은 마음으로 다시 열쇠를 사용해보기로 한 방찬은 4개의 도형들 중 ON이라는 글자와 함께 있는 삼각형 쪽으로 키를 돌립니다. 열쇠 구멍에는 '비상용'이라고 적혀있습니다. 물론 비상용 버튼은 함부로 누르면 안 되는 법이지만 당장이라도 엘리베이터가 고장 날 것처럼 흔들리고 조명이 깜빡거리는 지금이 바로 비상상황이니 어쩔 수가 없습니다.
방찬이 열쇠를 구멍에 넣고 돌리는 순간 엘리베이터 층 표시기에서 숫자가 사라지고 피라미드 모양이 나타납니다.
이 표시는 혹시 새로운 층을 의미하는 걸까요? 열쇠 덕분에 엘리베이터가 제대로 작동하기 시작한 걸까요?
그러나 그런 기대는 이내 공포로 변합니다. 엘리베이터가 심하게 덜컹거리더니 무서운 속도로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요동치며 추락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세 사람은 균형을 잡지 못하고 휘청거립니다.
커다란 쿵 소리와 함께, 불이 꺼진 엘리베이터는 순식간에 바닥으로 떨어집니다.
이 장면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간간이 언급되었던 '킥' 개념을 다시금 소환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영화 <인셉션>에서 드림머신을 통해 몽중몽과 자각몽을 꾸며 꿈속을 여행하는 주인공들은 킥이라는 기술을 통해 꿈에서 깨어납니다. 킥의 원리는 잠든 사람으로 하여금 '감각'을 느끼게 만드는 것입니다.
평범한 꿈속에서는 인물을 때리거나 차가운 물 속에 빠트리는 정도의 감각만으로도 충분히 킥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인셉션 영화 속의 인물들은 강력한 약물에 취해서 깊은 잠이 들어 있으며, 이들의 꾸는 꿈은 여러 층으로 겹겹이 중첩된 몽중몽입니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더 강력한 감각이 필요합니다. 꿈에서 깨어나는 공간이 또 다른 꿈이면 감각이 무뎌져 충격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최대치의 충격을 만들어내기 위해, 인셉션 작전의 기획자들은 꿈속의 건물을 무너트려 꿈을 꾸는 사람들에게 추락하는 감각을 느끼게끔 합니다. 추락은 죽음을 연상시킵니다. 죽음의 감각을 경험하게 해주는 자유낙하는 인셉션이 제시하는 가장 강력하고 성공 확률이 높은 킥의 방법입니다.
방금 방찬이 돌린 열쇠로 인해 추락해버린 엘리베이터는 꿈에서 깨어나는 과정인 킥이 시작되었음을 알려줍니다. 스키즈는 앞서 YW에서 킥의 기회를 한 번 얻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스키즈가 느꼈던 감각은 무의식이 보내는 경고인 '두통'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꿈에서 깨어나기에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자유낙하를 통해 가장 강렬한 감각을 이끌어내는 두 번째 킥은 첫 번째와 달리 실패 없이 꿈에서 깨어날 수 있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이번 킥은 단 한 번밖에 사용할 수 없습니다. 꿈의 엘리베이터를 완전히 망가트려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열쇠 구멍에 비상시에만 사용하라는 문구가 적혀있던 것입니다.
엘리베이터가 추락함과 동시에, 차량등이 빨간색으로 바뀝니다.
두 팀으로 나뉘어 서로 반대편에 서 있던 스키즈 멤버들이 신호를 받으며 걸어갑니다.
그런데 이 장면은 어딘지 모르게 위화감이 느껴집니다. 왜 카메라는 자꾸 빨간 신호등을 비추는 걸까요? 만약 스키즈가 단순히 신호등이 켜졌을 때 횡단보도를 건넌다는 것을 강조하려고 했다면, 차량등이 아니라 보행등이 초록불로 바뀌었을 때를 화면에 담았어야 합니다.
화면에 나타난 빨간 차량등은 지켜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치 스키즈가 빨간 신호등이 켜졌을 때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듭니다.
스키즈가 (차량등이) 초록불일 때 기다리고, 빨간색일 때 이동하는 장면을 굳이 넣은 것은 아이들이 따라가야 하는 것이 빨간색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로 보입니다. 이제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만, 포인세티아의 색인 빨간색은 인생을 의미하는 색깔입니다.
스키즈의 기나긴 여정은 1장에서 몽상가 한이 꿈의 엘리베이터인 헬리베이터에 탑승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헬리베이터 안에는 붉은 조명이 켜져 있었습니다. 즉 헬리베이터는 꿈의 엘리베이터인 동시에 인생으로 향하는 엘리베이터이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꿈속에서 모든 모험을 겪는 건 자신의 마음을 탐구하고 성장한 뒤 현실로 들어가 진정한 삶을 살기 위해서입니다.
그런 스키즈에게 빨간 신호등은 가면 안 된다는 사인이 아닙니다. 빨간색이 금지의 색이라는 건 꿈속의 규칙입니다. 스키즈는 꿈 속의 규칙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깨트리고 인생으로, 현실로 나아가야 합니다.
'District 9' 뮤직비디오의 마지막 장면에서 아이들이 철문을 닫고 나갈 때도 이들의 눈앞에는 빨간 신호등이 있었습니다.
'ASTRONAUT' 뮤직비디오에서 필릭스 뒤로 지나가던 이미지들 중에서도 빨간 신호등의 모습이 눈에 띱니다. 빨간 신호등은 두 개의 달과 함께 스키즈가 꿈속에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시킵니다. 이곳이 현실이 아닌 꿈의 세계이기 때문에, 아이들은 현실에서라면 금지의 상징이었을 빨간 신호등의 인도를 받으며 인생으로 나아가는 길을 찾습니다.
교차로에서 횡단보도를 건넌 아이들은 노란 선이 그려진 보행자 도로에서 서로 만납니다.
그런데 보행자 도로에 도착한 순간 아이들의 귀에 불쾌한 이명이 들리면서, 갑작스러운 두통이 찾아옵니다. 보행자 도로에 그려진 노란 선과 함께 이 장면은 7장 YELOW WOOD에서 머리가 아팠던 순간과 겹쳐집니다.
모두가 고통스러워하는 와중에 오직 아이엔만 아무것도 느끼지 못합니다. 왜 아이엔은 혼자 두통을 느끼지 못하는 걸까요? 지금까지 아이엔에 대해 '꿈에서 가장 깨어나고 싶어 하지 않은 아이' 또는 '자각몽을 꾼다는 사실을 감추는 아이' 정도로만 설명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아이엔이 계속해서 보여온 이상한 행동들을 해석하기에 부족합니다.
혼자만 두통을 느끼지 않는 아이엔을 보면서 우리는 무심코 지나쳤던 중요한 장면 하나를 소환해서 가지고 오게 됩니다.
그 장면은 7장의 배경인 'YELLOW WOOD' 트레일러 영상입니다. 무의식의 입구에 입성한 멤버들 중 아이엔은 혼자 노란 나무를 빤히 바라봅니다. 다른 멤버들은 아무도 나무를 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또한 YW에서 아이엔은 어쩐지 편안한 모습으로 무의식의 공간을 즐기는 듯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 이유를 마침내 밝힐 수 있게 되었습니다.
스키즈 세계관 속에서 아이엔은 이드(원초아)를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이드는 스키즈 세계관에 등장하는 프로이트 심리학의 세 가지 상징들 중에서 무의식과 가장 깊게 얽힌 존재입니다. 현진이 상징하는 자아와 승민이 상징하는 초자아는 모두 의식의 영역에 속하는 개념인 반면 이드는 무의식의 영역에 속합니다.
그래서 아이엔은 YW에서 두통을 느끼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다른 아이들이 모두 두려워하고 낯설어하는 누런 벌판에서 혼자 편안함을 느낍니다. 자신이 속한 곳이 바로 이곳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YW에서 아이엔은 하루라도 빨리 무의식 속에서 벗어나 꿈에서 깨어나고 싶은(성장하고 싶은) 현진을 뒤에서 붙잡습니다. 이드는 자아가 자신과 함께 이 공간에 영원히 있어주길 바랍니다.
8장에서 신나게 빙빙이를 돌리면서 무의식의 우주를 향해 스키즈 멤버들을 이끌고 데려가는 것도 아이엔입니다.
이드는 쾌락을 추구합니다. 아이엔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꿈속의 화려한 세계에 계속해서 머물기를 원합니다. 현진이 원하는 성장이나, 승민이 원하는 탐구에 그는 조금도 관심이 없습니다. 추격자들이 자신들을 계속해서 쫓아온다는 사실도 신경쓰지 않습니다. 아이엔은 그저 행복하게 놀고 싶습니다. 그래서 아이엔은 CITY JUNGLE의 가짜 반란을 누구보다 좋아하면서 즐기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분명 CITY JUNGLE은 아이엔의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아이엔에게 그런 건 상관없습니다. 자신이 꿈 속 도시의 주인이라고 믿어버리면 그만입니다. 그래서 아이엔은 도시의 상징물인 스피커를 가져가면서 이것이 자신의 것이라고 신나게 선언했습니다.
꿈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았던 의지가 얼마나 강력했던지, 아이엔은 자신이 자각몽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현진에게조차 철저하게 숨기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여행자인 척 연기를 합니다. 그리고 끝내는 모두가 떠나간 'ASTRONAUT'의 옥상에 혼자 낙오되고 맙니다.
하지만 아이엔도 결국은 알게 될 겁니다. 화려한 꿈속에서 영원히 머무르고 싶은 자신의 마음이 욕심이라는 것을. 멤버들과 함께 꿈속 세상을 벗어나 현실로, 인생으로 들어가야만 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 사실을 암시하듯 '갑분싸' 뮤직비디오에서 아이엔이 스피커를 가져가는 좁은 골목길에 놓인 잡지 가판대에는 'LIFE' 잡지가 꽂혀 있습니다. LIFE 글씨의 배경은 빨간색입니다.
다시 거리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횡단보도를 건너서 함께 모인 스키즈는 필릭스의 손안에 들린 나침반을 놀란 얼굴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여담이지만, 필릭스가 들고 있는 고풍스러운 나침반의 뒷면에는 로버트 프루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 전문이 인쇄되어 있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이렇게 나침반에 열중하는 것은 나침반의 바늘이 아무런 동력도 없는 상태에서 혼자 미친 듯이 돌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신없이 돌아가며 방향을 잡지 못하던 나침반의 바늘이 갑자기 한 곳을 가리키며 멈춥니다. 멈춰 선 바늘은 남동쪽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나침반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는 스키즈. 이들의 눈이 예상치 못했던 것을 발견한 것처럼 휘둥그레집니다.
놀랍게도 바늘이 가리킨 곳에서 새로운 문 하나가 만들어집니다. 문이 만들어지는 공간에서 붉은색 조명이 빛납니다.
열쇠 구멍 너머로 바라본 그곳에는, 스키즈가 그토록 소중히 여기던 보라색 들판이 펼쳐져 있습니다.
'바람' 트레일러를 배경으로 한 이번 장은 킥을 기다리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8층에 올라간 승민이 느낀 것은 바람이었습니다. 8층은 헬리베이터 뮤비 속에서 한이 올라갔던 7층보다 더 높은 층. 이곳은 꿈의 층이 아닌, 꿈의 공간을 무너트리고 꿈의 엘리베이터를 망가트리는 킥의 층입니다.
또한 횡단보도를 건넌 스키즈가 나침반이 가르키는 남동쪽에서 발견한 것은 들판으로 향하는 문입니다.
'바람'이라는 곡의 부제이기도 한 'Leventer'는 남동풍을 의미합니다. 세계관의 배경이 된 소설 <연금술사>에서 주인공은 남동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면서 자신이 어디로든 갈 수 있는 자유의 몸임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그는 정든 고향을 떠나 여행을 시작합니다.
반면 스키즈 세계관에서 바람은 지금까지 스키즈가 여행해 온 익숙한 꿈의 공간을 떠나게 만드며, 낯설지만 반드시 가야만 하는 현실의 세계로 아이들을 인도합니다. 즉 스키즈 세계관에서 Leventer 즉 남동풍은 꿈에서 깨어날 수 있는 킥을 의미합니다. '바람' 트레일러는 킥의 시작을 보여주며, '바람' 뮤직비디오는 킥의 과정을 다룹니다.
킥은 혼란스럽습니다. 스키즈는 보라색 들판에서 백일몽을 꾸면서 처음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잠들고, 옥상에서 잠이 들고, YW에서 또 다시 잠이 들었습니다. 인셉션의 주인공들이 꿈 속에서 잠이 들어서 몽중몽을 꾸는 것처럼 스키즈도 꿈속에서 다시 잠이 들면서 몽중몽을 꾸었습니다.
다음 장에서는 이들이 밟아온 꿈의 장들이 교차되면서 각 공간이 바람의 형태로 나타난 킥을 맞이하며 무너지고 부서지는 모습이 계속해서 나타납니다. '바람' 뮤직비디오가 유난히 혼란스럽고 불친절하게 느껴지는 건 혼란스러운 킥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야기는 9장(2) '들판'으로 이어집니다.
9장(1)의 배경이 된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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