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라미드는 그를 향해 조용히 미소 짓고 있었고,
그 역시 피라미드를 향해 미소를 보냈다.
솟아오르는 기쁨으로 가슴이 터져나가는 것 같았다.
이제 그는 자신의 보물이 어디에 있는지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파울로 코엘료, 연금술사-

 

 

쫓다 보면 닿을 것만 같았어
의심 따윈 해본 적도 없었어
상상한 널 안았지만
두 손 꽉 널 잡았지만
 
품속엔 공허함만
남은 채 헤매이다
결국 깨닫게 됐어
널 놓아야만 한다는 걸
 

'바람' 뮤직비디오는 방찬의 노래로 시작됩니다. 꿈의 밑바닥에서 날아오르고, 우주 공간을 유영해 마침내 헬리베이터의 7층이자 이야기의 시작점으로 되돌아온 방찬은 빼곡한 갈대로 뒤덮인 들판을 걸으면서 말합니다. 우리는 꿈에 닿기 위해 여기까지 걸어왔지만, 손에 쥐었다고 생각했던 순간 꿈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버리고 말았노라고.
 

 
방찬의 넋두리는 지난 장에서 엘리베이터에 탄 승민이 누군가의 손을 잡으려다가 실패한 장면과도 겹쳐집니다. 검지에 반지를 낀 것으로 보아 이 손의 주인은 한인 것 같습니다.
 

스키즈의 데뷔곡인 'District 9' 뮤직비디오 속 방찬

 
승민에게 손을 뻗은 한은 보라색 들판에 혼자 있었습니다. 허공을 향해 손을 뻗은 그는 자신을 감싸고 있는 투명한 막을 느낍니다. 세계관에서 꿈을 의미하는 인물인 한은 지금까지 콤플렉스에 너무나 깊이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은 방찬이나 현진처럼 꿈속 세상에 위화감을 느낄 마음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림보에서 도시라는 콤플렉스가 충족되어 흩어지자, 마침내 한도 투명한 막을 느끼며 자신이 꿈속에 있다는 사실을 의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승민은 한이 뻗어 올린 손을 잡으려고 합니다. 혹은, 마음의 탐구자가 꿈을 손에 쥐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순간 엘리베이터가 크게 흔들립니다. 승민은 한의 손을 잡지 못했습니다. 스키즈는 꿈을 손에 쥐지 못했습니다. 꿈이란 건 원래 그런 것이기에. 깨어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우리 마음이 만들어낸 환상에 세계이기에. 꿈을 쫓는 아이인 한조차도 결국은 꿈을 포기하고 깨어나 현실로 나가야 합니다.
 

 
저기 나무 밑에 떨어진 낙엽처럼
결국 눈 속에 묻혀 짓밟힌다 해도

이젠 너를 넘어서 봄을 찾아 떠나가
남겨진 감정은 부는 바람에 휘날려

 
이야기의 끄트머리에서 스키즈는 다시 보라색 들판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그토록 그리던 곳에 다시 찾아왔는데도 아이들의 표정은 쓸쓸하기 그지없습니다. 보라색 들판이 더 이상 이들이 원하는 진정한 자유와 인생의 공간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킥은 이미 시작되었고, 꿈의 엘리베이터는 바닥으로 추락했습니다. 온통 보라색으로 물든 갈대밭 같은 건 현실에 없습니다. 스키즈는 이제 백일몽을 완전히 놓아줘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다음 장면에서 승민과 방찬과 한은 다시 한번 꿈의 엘리베이터 앞에 섭니다. 일그러지고 붕괴하는 공간 속에서 덩그러니 서있는 엘리베이터는 낡고 부서져 스산한 모습입니다.

 
방찬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엘리베이터 문을 억지로 열고 안으로 들어갑니다.

 
엘리베이터의 층간 표시기에는 방찬이 지난 장에서 열쇠로 엘리베이터를 추락시킬 때 생긴 피라미드 표시가 여전히 나타나 있습니다.

 
하지만 엘리베이터의 내부는 깜짝 놀랄 만큼 부서지고 더러워진 모습으로 아이들을 맞이합니다. 바닥에는 낙엽이 수북하고 머리 위에는 어두컴컴한 조명 꺼질 듯 말 듯 애처롭게 깜빡입니다. 제멋대로 뒤엉킨 전선들에서는 금방이라도 합선이 일어날 것처럼 작은 불꽃이 튑니다.

 
꿈의 엘리베이터가 초라하게 망가진 모습을 보며 아이들은 혼란스럽고 슬픈 표정을 짓습니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바람이 휘몰아칩니다. 바람과 함께 허공에 흩날리는 건 하얀 종이 조각입니다.
 

 
흩날리는 종이들은 7장의 버스 정류장에서 스키즈가 들고 있었던 버스 티켓입니다. 이 티켓은 한 번 도착하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NEW WORLD'로 아이들을 데려간다고 약속했습니다.

 
장면이 전환되어, 창빈과 아이엔이 터널 안에서 서로 마주 보고 있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이들이 서있는 곳은 4장의 무대가 되었던 'MY PACE'의 터널입니다. 하지만 이제 이 곳은 폐허가 되었습니다. 스키즈를 잠의 터널로 깊숙이 데려갔던 트럭이 쓸모를 다하고 부서진 채 터널 안에 버려져 있습니다.
 

 
창빈은 손에 유리로 된 작은 피라미드를 들고 있습니다. 엘리베이터의 층 표시기에 있던 것과 비슷하게 생긴 피라미드입니다.

 
이 유리 피라미드는 '바람' 트레일러에서 터널 안에 놓여 있던 것입니다. 창빈은 트레일러에서 피라미드를 주웠습니다. 피라미드는 무엇을 의미하는 상징일까요?

'행복은 사실 가까운 곳에 있었다'는 스토리의 원형은 벨기에 작가 모리스 마테를링크의 희곡 <파랑새>다. 스키즈 세계관에서 이 이야기는 '모든 성장의 열쇠는 사실 내 마음 속에 있었다'는 설정으로 변주되어 나타난다.

 
스키즈 세계관에 모티브를 제공한 소설 <연금술사>에서 주인공인 양치기 '산티아고'는 피라미드 밑에 묻혀 있다는 보물을 찾기 위해 고향을 떠나 사막을 가로지르는 긴 여행을 합니다. 그러나 결국 그는 자신이 찾던 보물이 집 옆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음을 깨닫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연금술사는 보물을 찾아 떠난 산티아고가 여정길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그의 경험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연금술사에서 피라미드는 산티아고를 사로잡은 꿈을 의미합니다. 스키즈 세계관에서도 피라미드는 을 의미하는 상징입니다. 일반적으로 '꿈'이라는 단어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사람이 마음속에 품는 소망과 환상을 의미하는 '꿈'입니다. 두 번째 의미는 우리가 잠자면서 꾸는 '꿈'입니다. 끌레가 잠이 든 아이들의 무의식이 만들어낸 꿈의 스토리, 즉 두 번째 의미에 더 가까운 상징이라면 피라미드는 두 가지 의미를 다 가지고 있는 상징입니다. 

갑분싸가 그렇게 중요한 무비면 제목을 갑분싸로 짓지를 말았어야지

 
언뜻 느끼기에 피라미드는 '바람' 트레일러와 뮤직비디오에서 처음 등장한 듯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 피라미드를 암시하는 이미지는 한참 전에 이미 등장한 적이 있습니다. '갑분싸' 뮤직비디오의 첫 장면에 등장하는 패브릭 포스터입니다. 포스터에는 삼각형 이미지가 그려져 있습니다. 안에 글씨가 적힌 삼각형은 미국의 얼터너티브 밴드인 본 이베어(BON IVER)가 만든 'WOODS'라는 곡의 가사를 담고 있습니다. 이 곡에서 본 이베어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I'm up in the woods
나는 숲 속에 있네
I'm down on my mind
나는 내 마음속에 있네

 


'WOODS'의 가사와 아트워크를 차용해온 것은 이 곡의 주제와 피라미드 모양의 아트워크가 스키즈 세계관과 맞아떨어지기 때문일 겁니다. 스키즈는 꿈의 피라미드 안에서 YELLOW WOOD라는 이름의 무의식 속으로 들어가 자신의 마음을 탐구합니다. '갑분싸' 뮤직비디오는 패브릭 포스터를 통해 이 사실을 미리 예고했습니다.

 
또한 5장의 배경이 된 'MIROH' 뮤직비디오에서 방찬과 리노의 옷에는 뒤집어진 피라미드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5장에서 스키즈는 자신들이 피라미드의 꼭대기인 CITYV JUNGLE의 꼭대기로 올라갔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사실 그들은 점점 더 피라미드의 아래층으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뒤집어진 피라미드는 스키즈가 처한 상황을 암시하기 위한 장치였습니다.
 

 
다시 뮤비로 돌아와 보겠습니다. 리노, 현진, 아이엔은 어둠 속에서 텅 빈 도로 위를 걷고 있습니다. 이들의 얼굴에는 7장에서 입은 상처가 여전히 선명합니다.
 

 
아이들의 머리 위로 새가 지나갑니다. 리노가 가장 먼저 새를 발견하고 놀란 표정을 짓습니다.
 

 
'MIROH' 뮤직비디오에서 잠깐 등장했던 새가 다시 나타났습니다. 새는 문 위로 날아가서 앉습니다. '바람' 트레일러가 끝나기 직전, 나침반이 가리키는 남동쪽에서 붉은 조명을 받으며 생겨난 문입니다.



스키즈 세계관에서 새는 아이들의 마음이 보낸 정령이자 살아있는 나침반이라고 했습니다. 문 위에 앉은 새는 스키즈에게 꿈에서 완전히 깨어나려면 이 문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안내해줍니다.



하늘에는 두 개의 달이 걸렸습니다. 달 하나는 붉은색으로 빛나고 있습니다.
 

 
문 위에 잠시 앉아 아이들을 내려다보던 새는 힘차게 날개를 퍼덕이며 어디론가 날아가 버립니다. 새의 날갯짓이 일으킨 가벼운 바람만이 아이들의 얼굴에 내려앉습니다.
 

 
새가 바람을 일으키며 날아가는 순간, 창빈은 손에 쥔 버스 티켓에 불을 붙입니다.

 
종이로 된 티켓은 순식간에 타올라 재로 변합니다.

 
문 위에 앉아 있던 새가 날아가고, 창빈과 아이엔이 티켓을 불태운 순간, 망가진 엘리베이터에도 불이 붙습니다.
 

 
아이들은 꿈의 엘리베이터인 헬리베이터가 활활 불타는 모습을 잠시 지켜봅니다.
 

 
이윽고 불타는 엘리베이터를 뒤로 한 채 그들은 자리를 뜹니다.
 

 
티켓을 불태운 창빈. 이번에는 손에 들고 있던 유리 피라미드를 손에서 떨어트립니다. 꿈의 피라미드는 바닥에 부딪히면서 산산이 부서집니다.
 

 
그와 동시에 창빈과 아이엔이 서 있던 잠의 터널 역시 붕괴하기 시작합니다. 바닥이 쪼개지고 갈라지면서 그 안에서 우주 공간의 모습을 한 무의식의 심연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 장면에서 마침내 창빈의 정체가 밝혀집니다. 한이 보라색 들판을 의미하듯이 창빈은 터널을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즉 세계관에서 창빈은 을 뜻하는 존재입니다.
 

 
4장의 옥상에서 창빈은 샤워기 앞에 있었습니다. 샤워기에서는 안개(꿈)를 만들어내는 뜨거운 물이 계속해서 쏟아집니다. 창빈은 꿈의 원천인 샤워기 앞에서 눈을 가리는 제스처를 취했습니다.
 

 
창빈은 트램펄린 위에서 다른 아이들이 모두 잠이 들었을 때도 가장 마지막으로 눈을 가렸습니다. 그가 눈을 가리는 동작을 반복했던 것은 아이들이 잠들었음을 나타내기 위함이었습니다.
 

 
꿈이 이루어지는 배경이 마음이라면, 꿈을 꾸기 위해서 수행하는 행위는 잠입니다. 그래서 창빈은 필릭스와 함께 항상 아이들을 멀리서 지켜보거나 착용한 물건을 통해 신호를 보내는 역할을 했습니다.



'Chronosaurus' 뮤직비디오에서 창빈은 필릭스와 함께 드림캐쳐 귀걸이를 착용해 스키즈가 앞으로 YW로 들어가 악몽을 꾸게 될 것임을 알렸습니다.

 
'Astronaut' 뮤직비디오에서도 창빈은 필릭스와 함께 잠의 터널 입구를 지켰습니다.



그렇게 아이들의 잠을 수호하던 창빈이 꿈의 피라미드를 떨어트린 순간, 잠의 터널은 붕괴하고 아이들은 꿈에서 깨어납니다.
 

 
작은 유리 피라미드가 부서짐과 동시에 보라색 벌판에서도 피라미드가 붕괴합니다. 거대해 보이는 피라미드는 순식간에 무너져내려 먼지로 변해 흩날립니다. 스키즈가 지금까지 힘겹게 붙잡고 있었던 소중한 꿈이 모두 부서져 사라집니다.
 

 
피라미드가 무너짐과 동시에 하늘에서 별들이 떨어져 내립니다. 리노의 눈 속으로 떨어지는 별들이 담깁니다. 떨어지는 별들은 붕괴하는 피라미드와 함께 꿈의 소멸을 나타내는 상징입니다. <Yellow Wood> 앨범에 수록되어 있던 '별생각'이라는 곡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반짝이는 저 별처럼 되고 싶다고
다 저 별이 될 순 없으니까
떨어지는 저 별처럼
나도 떨어질까 봐 또 겁나

 

꿈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피라미드 꼭대기에 올라가고자 노력했던 스키즈는 별이 떨어지고, 꿈이 사라질까 두려워하면서 마지막 순간까지 꿈의 엘리베이터를 고쳐보려고 애썼습니다. 하지만 창빈이 피라미드를 스스로 땅에 떨어트린 지금 모든 것이 허무하게 무너지고 사라집니다. 별똥별은 결국 땅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운명입니다.

 

 
그러나 별똥별과 함께 사라지는 피라미드의 모습은 슬프기보단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긴 꼬리를 불태우며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밝은 별들은 꿈의 사라짐을 애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화려한 불꽃놀이를 펼치며 축하하는 듯 보입니다.

 
꿈의 피라미드가 사라진 자리에서, 리노는 손에 들고 있는 작은 유리병을 빤히 바라봅니다. 이제 리노의 정체를 밝힐 때가 되었습니다. 스키즈 세계관에서 리노는 사고(thingking)를 의미하는 존재입니다.

 
'District 9' 트레일러에서 리노는 의미 없는 글자들을 써 내려가던 중 처음으로 의미 있는 문장인 'I am NOT'을 쓰면서 첫 번째로 각성했습니다.

 
그 뒤 리노는 옥상 위에 놓인 스키즈의 기억과 개인적인 상징물들을 관찰하면서 천천히 깨어납니다. 리노가 수프 캔을 빤히 바라보는 아이들이 드디어 획일적이고 몰개성한 'I am NOT' 상태를 벗어나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인식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6장에서 리노는 트럭을 직접 운전하며 무의식 속으로 들어가는 여행을 주도합니다. 그러나 이미 설명했듯이, 무의식은 의식을 가진 상태로는 제대로 탐험할 수 없는 곳입니다. '사고'는 그야말로 의식의 영역입니다. 리노가 운전하는(게다가 지배자들이 소유한=의식의 영역에 속한) 트럭을 타고는 무의식 속으로 깊숙이 들어갈 수 없습니다.



결국 트럭은 고장이 나고, 아이들의 YW 탐험은 실패로 끝납니다.

 
꿈의 피라미드가 붕괴한 자리에서 리노가 바라보는 병 속에서 있는 것은 노란 나무, 즉 YELOW WOOD입니다. 우리는 현실 세계에서 YW의 존재를 느끼지 못합니다. 아주 깊은 무의식은 꿈을 통해서만 탐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꿈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가면 아이들은 YW를 여행했던 기억을 잊고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무의식은 항상 그 자리에 있습니다. 리노가 병 속에 든 노란 나무를 바라보고 있는 장면은 깊고 광활한 무의식의 들판이 - 우주가, 우리 마음속 한 구석에 항상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한편 필릭스는 투명한 유리로 된 네모난 공간 안에 홀로 있습니다.

 
유리벽에는 스키즈의 마음이 투영되어 나타납니다. 아이들의 마음이 변화함에 따라 유리벽 너머에는 꿈의 피라미드가 나타나기도 하고, 무의식의 우주를 떠도는 은하와 별들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보라색 들판에서 거대한 꿈의 피라미드가 붕괴하자 필릭스가 있는 공간의 유리벽에서 삼각형처럼 생긴 뭔가가 나타납니다. 언뜻 보면 피라미드가 다시 만들어지는 것 같지만, 사실 이 형상은 열쇠구멍입니다.

 
피라미드가 완전히 먼지로 변해 소멸된 그 순간 필릭스의 손 안에서 무언가가 만들어지기 시작합니다. 그 무언가는 바로 나침반입니다. 평범한 생김새였던 지금까지의 나침반과 달리 새로 나타난 3D 나침반은 신비로운 둥근 모습입니다. 이 나침반은 마법이라도 부리는 것처럼 필릭스의 손 위에 붕 떠 있습니다.
 

 
새로 나타난 나침반은 아이들의 성장한 마음을 의미합니다. 꿈속에서만 제대로 작동했던 구형 나침반과는 달리, 새로운 나침반은 아이들이 꿈에서 깨어나 현실 세계로 나갔을 때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습니다.
 

 
꿈의 피라미드가 부서지고 별똥별이 떨어지는 보라색 들판에 다시금 문 하나가 나타납니다. 이 문은 아까 사거리에 생겨난 문과 같습니다. 새가 이미 알려줬습니다. 현실로 가려면 이 문을 통해서 나가야 한다는 것을.



아이들은 다 함께 문을 향해 걸어갑니다.

 
리더인 방찬의 안내에 따라 스키즈는 줄지어 문 안으로 들어갑니다. 문 너머의 들판은 더 이상 신비롭고 몽환적인 보라색이 아닙니다. 그곳에 있는 것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평범한 갈색 들판입니다. 이 문을 넘어가면 스키즈의 마지막 꿈인 보라색 들판이 사라지고 아이들은 백일몽에서 깨어나 온전한 현실로 들어가게 됩니다.
 

 
문 앞에 마지막으로 선 사람은 아이엔입니다. 아이엔은 처량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봅니다. 꿈의 공간에 미련이 많이 남은 모습입니다.

 
항상 꿈 속에 남고 싶어했던 아이엔은 킥이 시작되며 터널 공간이 뒤집히고 붕괴하기 시작했을 때 그 누구보다도 슬프고 황망한 표정을 지으며 마지막까지 붕괴하는 터널을 지켰습니다. 창빈은 그런 아이엔을 도우려고 애썼지만 피라미드를 떨어트린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사라져 가는 잠과 꿈을 붙잡으려고 애쓰던 아이엔은 현실로 나가는 문 앞에서도 백일몽의 들판을 바라보면서 마지막 순간까지 망설이고 또 망설입니다.
 

 
아이엔을 뒤에서 껴안고 있는 건 필릭스입니다. 꿈에서 깨어나고 싶어 하지 않는 스키즈의 마음이 아이엔을 붙잡고 있습니다.

 

널 놓는다는 게 두려웠었지만
놓을 수밖에 없어 난

 

그러나 아이엔은 알고 있습니다. 정들었던 꿈의 공간은 이제 사라지고 없으며, 자신 역시 형들을 따라 현실로 나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래서 두렵고 슬픈 마음을 뒤로하고 마침내 아이엔은 필릭스의 손을 놓습니다.
 

 
It’s all good now

 
그런 아이엔에게 필릭스가 말합니다. '이제 다 괜찮아. 괜찮을 거야. 두려워하지 마.'
 

 
방찬의 위로를 받으면서 아이엔은 문을 나섭니다.
 

 
아이엔을 마지막으로 모든 아이들이 문 밖으로 나가는 순간, 필릭스가 앉아 있는 공간의 유리벽에 나타난 열쇠구멍이 순식간에 모두 채워집니다
 

 
최후의 아이가 꿈을 포기하고 문 밖으로 나감으로써 모든 마음의 열쇠가 제자리를 찾았습니다.


 
긴 여정의 끝에서 스키즈는 성장했습니다.

 

아직 낯설다 해도 Just don’t care
널 벗어난 순간 내가 보여
모든 게 다, 눈앞이 다

이제는 알겠어 Now I know
내게 필요했던 건 나란 걸
내 두 발이 가는 대로 걸어가

 
문 너머로 나온 스키즈를 맞이한 것은 평범한 갈색 들판입니다. 아이들의 발밑에는 거울이 있습니다.



거울 위에서 스키즈는 발을 구르는 안무 동작을 하며 춤을 춥니다. 아이들이 발을 구를 때 그 밑에 있는 건 또 다른 아이들입니다. 거울을 보며 I am YOU의 의미를 찾아 헤매던 스키즈에게 마침내 또 다른 내가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냅니다. 어떤 충격에도 사라지거나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모습입니다.
 

 
꿈에서 깨어난 아이들은 현실의 들판에서 서로 얼싸안고 기쁨에 찬 얼굴로 여행의 마무리를 축하합니다.

 
그런 그들의 눈앞에 마지막으로 두 개의 달이 나타납니다.

 
두 개의 달은 빠른 속도로 서로를 향해 가까워집니다.

 
잠시 후 완전히 겹쳐져 하나가 된 달은 밝은 빛을 내면서 사라집니다. 이제 지금까지 숨겨져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풀어볼 때가 되었습니다.

 
4장의 옥상에서 처음 나타난 달은 스키즈 세계관에서 두 가지 역할을 가진다고 설명했습니다. 하나는 소설 <1Q84>에서 빌려온 것으로 스키즈가 있는 공간이 비현실적인 꿈의 세계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역할입니다.



따라서 백일몽의 들판을 벗어나 현실의 들판으로 나온 아이들의 눈앞에서 두 개의 달이 하나로 합쳐지는 장면은 스키즈가 완전히 꿈에서 깨어났음을 알려줍니다.
 

 
한편 달의 두 번째 역할이자 가장 중요한 상징은 스키즈의 자기(self)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스키즈 세계관은 심리학자 칼 융의 이론에서 많은 부분 영감을 얻었습니다. 융은 인간이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아(ego)가 자기(self)를 인식하고 무의식과 의식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융에게 있어 인간의 성장이란 무의식과 의식이라는 상반된 영역을 마음속에서 조화시키고 통합시키며 진정한 자신을 찾아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스키즈가 처음으로 자기를 인식하던 순간 옥상 위에서 두 개의 달이 갈라졌습니다. 거울 너머에서 일렁이는 또 다른 나를 발견한 스키즈는 그 존재가 나인 것 같다고(I am YOU)라고 말합니다.

 
스키즈의 자기 인식과 성장을 계속해서 방해하는 장애물이 있습니다. 도시의 모습으로 나타난 콤플렉스입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꿈의 바닥과 무의식의 우주를 거치며 여행하는 동안 콤플렉스는 천천히 사그라들어 뼈대밖에 남지 않은 힘없는 모습으로 변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바람' 트레일러에서 더 이상 도시를 꿈꾸지 않게 된 한의 눈앞에서 꿈의 엘리베이터는 거울의 모습으로 변합니다. 한은 거울에 비친 또 다른 자신에게 손을 뻗습니다. 이는 도시라는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있던 한이 자신의 진짜 꿈을 깨닫는 장면입니다.



사실 스키즈의 진정한 꿈은 도시가 아닌 거울 너머에 있는 또 다른 나를 찾는 것이었습니다. 이 해석은 '바람' 노래의 가사와도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한결같이 너를 향해
달려가다 깨달은 건
내 모든 건 널 향해 있었어
너에게 가까이 갈수록
점점 더 날 잃어갔어

 


지금까지 아이들은 피라미드 꼭대기로 올라가고 있다고 굳게 믿으면서 도시를 정복하려고 시도하고 꿈을 손에 쥐기 위해 애썼습니다. 그러나 애쓰면 애쓸수록 도시는 힘없는 모습으로 변해갔고, 꿈은 손에 쥐었다고 생각한 순간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고 말았습니다. 스키즈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화려한 도시도, 꿈을 소유하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꿈의 막바지에서 아이들은 자신에게 필요했던 건 허망한 꿈속 세상이 아니라 거울 너머에 있는 또 다른 나를 찾는 것이었다고 노래합니다.
 

 

널 벗어난 순간 내가 보여
모든 게 다, 눈앞이 다

이제는 알겠어
내게 필요했던 건 나란 걸

 

 
엘리베이터 안에 있는 한의 손가락과 거울 너머에 있는 또 다른 한의 손가락이 맞닿는 순간, 밤거리를 달려가던 현진의 몸이 굳으면서 그의 몸 위로 둥그런 빛이 쏟아집니다. 이 빛은 달빛입니다. 현진의 몸 위로 빛을 드리운 달은 두 개가 아니라 하나입니다. 또한 이 달은 반달이 아니라 완전히 차오른 보름달입니다.



이 장면에서 세계관이 가장 마지막까지 꽁꽁 숨겨두고 있었던 가장 중요한 진실이 밝혀집니다. 보름달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은 듯한 현진.
 

 
두 개의 달이 합쳐지기 전 하늘에 떠오른 달 하나는 붉은색의 'Blood Moon'이었습니다. 붉은 보름달이 떠오르는 날에는 늑대인간이 나타난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달이 없을 때 늑대인간은 평범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완전히 차오른 보름달을 목격하면 그는 늑대가 됩니다. 꿈의 공간이 깨어지면서 하나로 합쳐진 보름달을 마주하는 순간 현진은 늑대로 변했습니다.

 

 
I feel the light, I feel the light

 


사실 스키즈는 늑대인간이었던 겁니다.


 
가장 중요한 이야기는 가장 꼭꼭 숨겨놓아야 한다고 누군가 말했던가요. '바람' 뮤직비디오는 아이들이 늑대로 각성하는 순간을 별 것 아닌 것처럼 짤막하게 보여주고 넘어가려고 합니다. 현진이 갑자기 털북숭이로 변하는 노골적인 장면 같은 건 눈을 씻고 봐도 없습니다. 늑대가 된 스키즈가 뛰어다니는 장면은 한참 후인 'EASY' 뮤비에서 잠깐 나타날 뿐입니다.



'바람' 트레일러와 뮤직비디오에서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모든 것은 암시와 상징뿐이므로 지켜보던 사람들 입장에서는 갑자기 밝혀진 진실이 뜬금없게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사실 세계관을 기획한 사람은 이미 스키즈가 늑대인간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장치를 'MIROH'와 '승전가' 뮤직비디오에 넣어놓았습니다. CITY JUNGLE에서 반란을 준비하는 아이들은 늑대 머리처럼 생긴 가면을 챙깁니다.

 
가면을 착용한 스키즈는 자신들이 진짜 늑대가 되었다고 착각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은 손을 늑대 모양으로 만들어서 얼굴을 가린 채 패기 넘치는 모습으로 가짜 도시를 정복하기 위해 빌딩 숲 속으로 뛰어듭니다.

 
그러나 'MIROH' 뮤직비디오에서 사자 갈기 같은 모피를 입고 호피무늬 목도리를 한 CITY JUNGLE의 지배자들은 쇠사슬에 묶인 커다란 개를 데리고 있습니다. 설계된 꿈의 미로에 갇힌 스키즈는 자신들이 자유로운 늑대가 되어서 도시를 정복한 줄 알았지만, 사실 쇠사슬에 묶인 처지였던 겁니다.


 
스키즈가 보름달이 뜨면 각성하는 늑대인간이었다는 사실은 아이들의 눈앞에 끊임없이 나타나는 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District 9' 뮤직비디오의 배경인 수용소에서 한은 멍한 눈빛으로 밝은 빛을 쳐다보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MY PACE' 뮤직비디오의 배경인 터널 안에서도 밝은 빛이 새어 나오며 아이들을 인도했습니다.

 
'I am YOU' 뮤직비디오의 배경이 된 옥상에서 스키즈는 보름달처럼 생긴 둥근 조명을 걸면서 놀았습니다.

 
한편 CITY JUNGLE의 화려함에 현혹되어 있었던 '승전가'와 '미로' 뮤직비디오에서 아이들은 잠깐 동안 불빛을 등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Chronosaurus' 뮤직비디오에서 무의식의 열쇠를 주운 아이들은 정신을 차리고 대합실을 뛰쳐나와 다시 빛을 쫓는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ASTRONAUT' 뮤직비디오에서 어두운 잠의 터널을 빠져나간 현진의 눈앞에 다시 밝은 빛이 나타납니다. 금방이라도 광원을 알아낼 수 있을 만큼 가까이 다가온 빛은 태양처럼 환하게 빛나면서 현진을 유혹합니다.

 
그러나 바깥으로 나온 현진을 맞이한 건 눈부신 태양빛이 아닌 은은한 달빛입니다.
 

 
달빛 아래에서 현진은 어렴풋한 미소를 지으면서 뭔가를 깨달은 표정을 짓습니다. 이 순간 현진은 자신들이 찾아 헤매던 빛이 무엇인지, 왜 자신들이 달빛을 따라왔는지 알아차린 것 같습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4장의 옥상에는 퍼즐 조각이 하나 있었습니다. 현진이 고장 난 조명을 수리해서 하늘에 둥근 빛을 쏘아 올리던 장면입니다. 베트맨 영화의 구조 신호처럼 보이기도 했던 이 빛은 꿈에서 깨어나 성장하고 싶은 현진이 보내는 구조 신호인 동시에 달빛이었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계속해서 달을 찾고 그리워하던 스키즈가 달 모양의 조명을 만들어 하늘에 쏘아 올렸던 겁니다.

 

스스로 속여가며
버텨낸 꿈을 깬 순간

꿈속에 날 가뒀던
터널을 벗어난 순간

쏟아져 내리는 빛이 느껴져

 


그리고 마침내, 꿈의 공간이 붕괴하고 두 개로 갈라져 있던 달이 합쳐지는 그 순간. 그리고 한이 거울 너머 YOU에게 손을 뻗는 순간, 현진은 보름달 아래에서 각성해서 늑대로 변합니다. 자아(ego)를 뜻하는 현진이 자기(self)를 뜻하는 달을 마주합니다. 엘리베이터 안에 있는 스키즈와 거울 너머에 일렁거리는 또 다른 스키즈가 서로를 바라보며 손가락을 마주합니다.



둘은 입을 모아 말합니다. I AM YOU. 네가 바로 나였구나.
 

'EASY' M/V

 
다시 한번 융의 이론을 빌려오겠습니다. 융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완전한 전체라고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스키즈는 마지막 장에서 갑자기 늑대로 변한 것이 아닙니다. I AM YOU라는 말이 상징하듯 아이들은 처음부터 늑대였습니다. 거울 너머에서 일렁이던 것은 다른 누군가가 아닌 스키즈 자신입니다.

 


하지만 전체로 태어난 인간의 마음에는 생각, 감정, 자아, 이드, 초자아, 의식, 무의식 등 여러 가지 서로 다른 역할을 하는 요소들이 존재합니다. 이들이 조화롭게 어울리면서 제대로 된 전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충분히 발달하고 분화해서 개성을 찾아야 합니다.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상반된 요소들이 제대로 발달하지 못하면, 이들은 제멋대로 흩어져서 YW의 입구에서 현진과 승민이 싸움을 벌였던 것처럼 갈등을 일으키며 흩어지게 됩니다.


시스템 속에서 억압당하던 아이들은 꿈을 통해 무의식 속으로 들어가는 여행을 하면서 점점 자신의 개성을 찾고 성장합니다. 자아를 뜻하는 현진은 끊임없이 꿈의 공간에서 벗어나려고 애씁니다. 이는 융의 이론에서 자아가 인간의 마음 중 의식의 영역에 더 가까운 원형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자아와 함께 인간의 마음을 이루는 또 다른 중요한 요소인 자기(self)는 전체로 태어난 인간의 마음 전체를 포괄하고 통합하는 역할을 합니다. 인간의 마음에서 의식이 차지하는 부분은 일부에 불과하며 대부분은 끝을 알 수 없는 광활한 무의식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심리학자들은 말합니다. 그래서 자기는 무의식에 훨씬 더 가깝습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들 속에서, 무의식으로 향하는 문을 열었던 건 항상 방찬이었습니다.
 

 
6장에서 방찬은 필릭스가 주운 열쇠를 이용해 YW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작동시켰습니다.

 
7장에서는 현진이 찾아낸 열쇠를 사용해서 우주로 가는 문을 열었습니다.

 
또한 방찬은 스키즈의 리더입니다. 여행이 계속되는 동안 그는 멤버들을 한데 모아 이끄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이야기의 시작점인 'Hellevator' 뮤직비디오에서 방찬은 멤버들을 이끌고 사라진 한을 찾아 헬리베이터에 탑승했습니다.

 
2장의 배경이 된 'Dsitrict 9' 뮤직비디오에서는 가장 먼저 시스템의 균열을 느끼고 빨간 쪽지를 전달해 수용소 안에서 흩어져 있던 아이들을 결집시켰습니다.
 

 
'승전가' 트레일러에서 방찬은 "너희들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우리는 스트레이키즈다. 우리는 CLE의 주인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CLE의 주인이 되기 위해 방찬은 꿈의 하이라이트가 기다리고 있는 CITY JUNGLE이라는 미로 속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뛰어들었습니다. 리더인 방찬이 가짜 도시에 속자, 다른 아이들도 모두 속았습니다.
 

 
'부작용' 뮤직비디오에서, 방찬은 창빈과 함께 무의식의 입구에서 벌어진 현진과 승민의 싸움을 말립니다.
 

 
킥에 실패해서 좌절한 현진을 일으켜 세우고 위로하는 것도 방찬입니다.

 
'ASTRONAUT' 뮤직비디오에서 방찬은 다른 아이들이 무의식의 우주를 헤매고 있을 때 유일하게 출구를 찾아냈습니다. 그가 무의식 속에서 길을 잃지 않았던 건 방찬이 상징하는 자기(self)가 아이엔이 상징하는 이드와 마찬가지로 무의식의 영역에 속한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탈출구 앞에서 끊임없이 무전을 보내던 방찬은 결국 현진의 도움을 받아서 아이들을 무의식의 우주 바깥으로 데려가는데 성공합니다.

 
'바람' 트레일러에서 방찬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꿈의 엘리베이터를 고치기 위해서 다시 한번 열쇠를 사용합니다. 하지만 그가 돌린 열쇠는 새로운 꿈의 장으로 아이들을 데려가는 대신 엘리베이터를 추락시켜 킥을 일으켰습니다.
 

 
방찬이 일으킨 킥은 꿈을 완전히 무너트렸습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지금까지 방찬은 스키즈를 이끌면서 꿈의 공간을 열심히 탐험해왔지만, 한처럼 도시에 집착하거나 아이엔처럼 꿈 자체에 미련을 두지 않습니다. 방찬이 챙기는 건 꿈이 아니라 멤버들입니다. 그가 원하는 건 아이들이 편안하고 자유롭게 여행하며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꿈의 피라미드가 무너지자 방찬은 기꺼운 마음으로 문을 열고 현실의 들판으로 스키즈를 인도합니다.


 
무의식의 문을 여는 존재, 아이들을 한데 모아 챙기고 때로는 다독이면서 이끌어 나가는 리더, 스키즈의 마음에 존재하는 다양한 요소들이 흩어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통합시키려고 애쓰는 존재. 세계관 속에서 스키즈의 자기(self)를 의미하는 인물은 방찬입니다.


 
그런 방찬의 인도를 받고, 달빛을 쫓으며 이루어진 스키즈의 꿈속 여행은 거울 너머에서 일렁이는 또 다른 나를 찾아내 마침내 진정한 늑대로 각성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늑대는 위험한 동물입니다. 인간의 마음에는 그림자(shadow)가 있습니다. 융에 따르면 그림자는 인간 무의식의 어두운 부분이자 길들여지지 않은 야성을 의미합니다. 수많은 전설과 문학 작품에서 늑대인간은 이성을 잃어버리고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며, 사람들을 잡아먹는 괴물과도 같은 존재로 그려집니다. 늑대로 각성한 스키즈가 어떤 존재가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시스템 지배자들은 위험의 싹을 잘라버리기 위해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을 수용소 안에 가둬버렸습니다.


 
시스템 지배자들이 생각했던 대로 각성한 스키즈는 위험한 괴물이 되었을까요? 이들이 늑대로 변하면서 끝이 나는 1막에서는 아직 아무것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만든 사람은 아이들이 어떤 늑대로 자라날 것인지에 대해서 힌트를 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정말이지 스포로 가득한 갑분싸 뮤비

 
그 힌트는 '갑분싸' 뮤직비디오의 썸네일에서 나타납니다. 꿈의 피라미드를 나타내는 아트워크 옆에 걸린 건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전통 패턴이 그려진 천입니다.

 
또한 'I am YOU' 뮤직비디오 티저의 엔딩 장면에서 옥상에 깔려 있는 것도 인디언 패턴이 그려진 카펫입니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고 합니다.
 

옛날에 한 노인이 어린 손자와 함께 모닥불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노인은 손자에게 두 마리 늑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얘야, 우리 마음속에는 두 마리의 늑대가 싸움을 벌이고 있단다. 한 마리는 나쁜 늑대인데, 분노와 질투, 욕심, 교만 같은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여 있단다. 다른 한 마리는 좋은 늑대야. 이 녀석은 기쁨과 사랑, 겸손과 믿음 같은 좋은 감정들로 가득 차 있지.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서는 두 마리의 늑대가 싸움을 벌인단다. 네 마음속에서도 마찬가지야."


이야기를 듣던 손자가 묻습니다. "그렇다면 두 마리 중에서 어떤 늑대가 이기나요?"


할아버지가 대답합니다. "네가 먹이를 많이 주는 쪽이 이기지."

 
세계관 속 스키즈는 데뷔 이후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꿈속을 헤매었습니다. 아이들을 꿈속으로 데려와 모든 것을 시작한 사람은 인디언의 이야기를 빌려와 이렇게 말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릅니다.



너희들을 그토록 오랫동안 꿈속에서 여행시켰던 것은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고 성장하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이제 꿈의 이야기는 끝났고, 현실이 시작된다. 감시와 통제에 순응하지 않고 자기 안의 늑대를 발견해낸 사람은 모두 위험한 존재다. 늑대가 된 너희는 위험한 존재다. 그러나 너희들이 어떤 늑대로 자라날지는 각자의 선택에 달렸다. 먹이를 주는 사람은 바로 너희 자신이니까.

 
마침내 1막의 모든 이야기가 끝났습니다.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되찾고 성장한 스키즈는 꿈에서 깨어나 현실로, 인생으로 들어갑니다.
 
GO LIFE, 그리고 IN LIFE.
 

9장(2)의 배경이 된 영상

"바람 (Levanter)" M/V - 2019.12.09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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